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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an 12. 2024

마법 마을 토도스 산토스, 호스텔 주인의 마법 같은 삶

Ray & Monica's [en route]_99


인생의 파고를 즐기는 삶의 서퍼, Jacopo

   


이 호스텔의 분위기는 여느 숙소와 달랐다. 아침 해가 떴는데도 너무나 적막하여 뒤꿈치를 들고 정원으로 나와보면 이미 몇 사람이 각자 자신의 리추얼로 하루를 시작하고 했다. 한 여성은 파티오의 벽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뻗고 앉아 독서삼매에 빠져있다. 한 남자는 의자에 앉아 가부좌를 하고 양손을 무릎에 올리고 동쪽을 향해 눈을 감고 있다. 다른 한 여성은 소파에서 커피 한 잔의 시간을 음미하고 있고 또 다른 남자는 해먹 위에서 갓 태어난 햇살 한 모금의 아침에 헌신하고이다.     

주방에 놓이거나 걸린 액자는 귀엽거나 기묘하거나 우습다. 그러나 진심이 담긴 정보는 잊을 수 없게 전달된다. "고마워 설거지' '브루노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무료 서핑'... 자기가 사용한 접시의 설거지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한 부드러운 명령이다. 브루노는 야생동물이 아니라 이 주인의 개구쟁이 아들이고 보드 위에서 파도타기에는 필요없는 특정 근육을 단단하게 부풀린 남자의 서핑 그림은 주인이 서핑에 진심이라는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스텝들이 각자 솜씨를 발휘한 음식을 하나씩 준비해 호스텔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밤을 경쾌한 유흥에 빠지게 했다.     

텅 빈 것 같지만 에너지로 충만한 호스텔의 이 신비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나는 의구심의 범인으로 호스텔의 주인을 의심했다. 이 작은 호스텔을 이런 기운으로 채우려면 한순간에는 불가능하다. 그럼 긴 시간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주인 말고는 어렵다는 추리의 결론이었다. 그를 만났다.     

-당신이 궁금하다.

"나는 자코포 플로리올리(Jacopo Florioli )이다. 44세이며 한 여성(Laura Angeli)의 남편이자 두 아이(Bruno, Emilia)의 아버지이면서 7년 전 아내와 함께 이 호스텔을 설립한 공동창업자이다. 나는 6개월은 이곳 멕시코의 토도스 산토스에서 살고 나머지 6개월은 나의 고향 이탈리아 가르다호수 남서쪽 포르테제(Portese)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이 구테여 멕시코에, 그것도 이렇게 외진 사막지대까지 오게 되었나?

"나는 추위를 싫어한다. 내 고향은 겨울이면 춥고 바람도 세고 비까지 잦다. 그 지긋지긋한 날씨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따뜻한 곳에 가서 호스텔을 낸다면 추위도 피하면서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었다. 7년 전의 그 생각이 실현된 것이 지금의 이 호스텔이다."     

-추위를 피해서 호스텔을 할 곳은 유럽 내에도 많지 않나? 왜 이렇게 외진 곳까지 왔나?

"나는 서핑을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고 서핑 없이는 나를 얘기할 수 없다. 이곳은 서핑하기 좋은 파도를 가진 해변이 지척이다. 단지 10분만 운전하면 바로 바다로 뛰어들 수 있다. 이탈리아의 추위를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그것 없이는 인생이 흥미롭지 않은 서핑하기에 적절한 파도가 있는 곳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서핑 강습 공지도 붙어있던데 당신이 서핑도 가르치나?

"이곳이 핫 스핑 스폿이다 보니 서핑을 지도할 수 있는 로컬 자원이 많다. 서핑 클래스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근처의 세리토스 해변(Cerritos Beach)은 서핑 초심자들이 서핑을 배우기에도 너무나 좋은 조건이다."     

-나라를 이동해가면서 반년씩을 산다는 것은 날씨면에서 좋다고 해도 불편하거나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은데...

"내게는 날씨가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1년의 두 시즌 모두를 내가 좋아하는 날씨에서 산다는 것은 다른 대부분의 것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겨울에 뭔가를 한다는 것은 손이 많이 가는 반면 성과도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1년 내내 사업이 잘 되는 하이 시즌을 살 수 있다. 음식도 중요하다. 우리는 멕시코 음식과 이탈리아 음식 모두를 좋아하는데 현지 음식을 그대로 즐기는 기쁨이 있다. 또한 아이들이 2개국어를 모국어로 익힐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다양성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반면 아이들을 데리고 이주하는 일은 정말 힘들다. 온 가족이 함께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항공권 4장을 사야 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계절을 따라 이동을 계속하는 것은 단점보다 장점이 더 커다는 얘기이다."     

-이런 노매드 라이프스타일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나?

"2~3년 내에 바뀔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면 정착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은 몇 살이냐? 정착한다면 이탈리아 혹은 멕시코, 어디가 될 것 같나?

"아들 브루노는 7살, 딸 에밀리아는 4살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럽으로 돌아가지 싶다. 교육제도가 잘 되어있고 무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인척들이 가까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 멕시코에서도 학교를 보낼 수 있지만 교육비가 만만치 않다. 고향에서 4시간 정도 비행 거리에 있는, 전에 내가 2년간 살았던 아프리카 북서쪽 대서양상의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Canarias)나 아내의 형제들이 살고 있는 포르투갈도 고려해 보고 있다."     

-카나리아에는 어떤 일로 살게 되었었나? 또한 포르투갈은 처남부부가 그곳에 산다는 것 외에 다음 정착지로 좋은 점은 무엇이 있을까?

"2010년 추운 날씨를 피해 이탈리아를 떠났다. 따뜻한 기온과 서핑을 하기에 좋은 파도를 찾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남쪽을 두루 방문했다. 그러나 1월의 그곳도 여전히 추웠다. 그래서 스페인 남쪽에서 페리를 타고 더 남쪽으로 내려갔고 카나리아에 닿았을 때 마침내 내가 찾던 곳이라 느꼈다. 그곳에서 직장도 구할 수 있어서 눌러앉게 되었다. 포르투갈은 사실 카나리아보다는 기후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가 더 풍부하고 일자리가 더 많다."     

-한국 속담에 산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은 없다, 라는 말이 있다.

"맞다. 언제나 일장일단이 있다. 우리에게 위의 2가지 옵션은 날씨를 택하느냐 문화를 택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아무튼 아이들 교육 환경 때문에 유럽권으로 떠나야 한다면 이곳의 비즈니스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당신은 항상 가족들과 함께 이주하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절대 가족과 헤어져 살 마음이 없다. 그렇다면 이곳의 비즈니스가 문제인데 두 가지 옵션이 있을 수 있다. 팔거나 유지하거나. 그러나 나는 이 호스텔의 운영은 계속하고 싶다. 돈 때문이 아니라 이곳으로 돌아올 이유를 남겨두고 싶은 것이다. 나는 7년간 이곳에 살았고 이곳의 삶과 사람이 좋다. 이곳을 영영 떠난다면 그리움 때문에 병이 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경영을 맡긴다면 돌아와서 한 달 정도는 머물면서 친구관계는 유지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지난 7년 동안 당신은 1년의 6개월 동안 이곳을 떠나있었다. 그때 이 호스텔의 운영은 누가 맡았나?

"매니저인 세르지오(Sergio)가 맡아주었다. 하지만 그는 현재 새로운 일 때문에 티후아나로 떠났다. 그래서 새로운 매니저를 찾아야 한다. 내가 이곳을 떠나있을 때는 그렇게 이곳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의 신분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은 제약이 많지 않나?

"이탈리아에서 사업을 했었지만 페루에서도 사업을 했었다. 멕시코에서의 사업은 세 번째의 창업이었다. 그런데 이곳 멕시코에서의 사업이 페루보다 간단했고 심지의 이탈리아보다도 간단했다. 물론 사업 자체가 쉽다는 말은 아니지만 행정처리가 비교적 간단하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다. 이곳의 변호사는 단지 인허가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업의 전반에 대해 도움을 준다. 나를 위해 회계사를 찾아주고 전기에 문제가 있거나 급수에 문제가 있어도 내가 어디에 있건 상관없이 전화만 하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물론 비용이 적지 않지만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시간과 경비가 절약되는 선택이다. 단적인 예를 든다면 만약 당신이 전후좌우를 모른 채 1만 달러짜리 땅을 샀다면 한 달 뒤에 진짜 땅주인이 나타나 '내 땅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1만 달러를 변호사에게 주고 그를 통해서 서명한다면 그 땅은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돈을 좀 더 쓰는 것이 결국 절약이라는 얘기이다."     

-이탈리아와 페루에서는 어떤 사업을 했나?

"나는 바텐더이다. 지난 20년간 바텐더로 일했다. 이탈리아에서 칵테일 바를 운영했다. 20살 때부터 이탈리아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애를 썼다. 나는 이태리 사람들이 단지 좋은 자동차와 번지르르한 옷을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정신 상태가 정말로 싫었다. 마침내 나는 페루로 가서 바가 있는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곳에도 작은 바가 있다. 이곳의 6개월 생활을 끝내고 이탈리아로 돌아가 있는 6개월 동안도 바텐더로 일한다. 저택의 수영장을 빌려서 이동식 바를 차린 다음 이벤트를 개최한다. 생일이나 결혼식 등 모든 종류의 파티에서 그에 맞는 메뉴를 구성한 다음 칵테일바를 연다.     

-당신의 여정이 모두 여행같아 보인다. 당신의 여행에 대해 들려달라.

"내가 10살 때부터 부모님은 나를 1년에 한 달씩 외국으로 보내 공부하도록 했다. 10살 때 영국 남부 잉글랜드로 보냈고 그리고 다시 스코틀랜드 북부로 보냈다. 그렇게 매년 세계의 각기 다른 나라에서 혼자 머물러야 했다. 18살이 되어서부터는 내 스스로 계획을 세워 떠나도록 했다. 이렇듯 부모님은 내가 세상의 각기 다른 부분을 보도록 강제했다. 20살 때는 시드니로 가서 2년을 일했다. 그리고 이탈리아로 돌아온 뒤 바를 차렸고 그 바를 운영하는 5년 동안 여행을 자주 하지는 못했다. 바를 팔자마자 인도네시아로 갔고 다시 뉴질랜드로 갔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아르헨티나까지 태평양을 횡단하는 항해를 했고 아르헨티나에서 칠레,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를 모두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한 다음 이탈리아로 돌아갔다가 곧 카나리아로 갔다.     

-남미에서 전부 히치하이크로 여행했다면 위험한 적은 없었나?

"인도네시아와 뉴질랜드까지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했다. 안전감을 느끼긴 했지만 자유롭지 못했다. 뉴질랜드에서 세일링보트를 타기 시작하고부터는 모든 친구들로부터 떠나 홀로 여정을 헤쳐나갔다. 즉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지만 기존의 친구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선원으로 참여한 뉴질랜드부터 아르헨티나까지의 23일간 태평양 횡단 요트 항해는 몇 번 죽음의 공포를 느낄 만큼 춥고 거칠고 어려운 항해였다. 아르헨티나에 당도했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혼자 여행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항해 중에 혼자라는 사실을 점점 즐기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혼자의 여정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혼자 여행 중에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있다. 그러나 한 번도 내가 위해를 당한 적은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을 유지해야 한다. 육식동물이 식사용 사냥을 위한 대상으로 고르는 것은 새끼이거나 아프거나 문제가 있어 보이는 동물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지갑을 노리는 자들은 소녀나 노인처럼 약자이거나 불안정한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다. 내가 그들의 대상으로 선택되지 않는 강하거나 빈틈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자신이 나쁜 의도를 갖지 않는 것이다. 나쁜 의도를 갖는 순간 범죄에 연루되어 스스를 망칠 수 있다. 선한 의지가 면역기능을 한다."     

-태평양 횡단 항해는 어떻게 시작된 건가?

"뉴질랜드에서 직업을 구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당시 나는 31살이었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30살까지만 가능했다. 30살을 넘지 않았던 친구들은 모두 일자리를 구했지만 비자가 없는 나를 고용해 줄 회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터넷을 계속 뒤졌다. 마침내 선원(Crew)과 선주 (Shipowner)를 이어주는 한 사이트(www.findacrew.net)에서 뉴질랜드(Nelson, New Zealand)에서 태평양을 건너 아르헨티나(Ushuaia, Argentina)로 항해하는 세일 보트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접했다. 그 회사는 레이스용 요트였던 것을 사서 고급스러운 주방시설의 식당과 바를 넣고 TV를 비롯한 갖은 편의시설을 갖춘 호화로운 객실로 개조한 다음 유럽에 비싼 값에 되파는 회사였다. 호수에서 작은 보트들을 타고 그곳에서 살아보기도 했던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다. 궁극적으로 호수와 대양은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우리의 항해는 세계에서 가장 거친 바다로 알려진 Cape Horn를 통과해서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가는 구간으로 어렵고 위험한 구간이기도 했다. 길이 24m, 가장 넓은 부위의 너비가 5.5m인 수동 경주용 요트를 10명의 선원이 돌아가면서 항해의 책임을 져야 했는데 밤에 유빙과 충돌할 수도 있으므로 극도로 긴장을 해야 했다. 출항한지 며칠이 되지 않아 정말 가능하다면 육지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항해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일들을 직접 경험했고 그 항해의 경험들이 나를 완전히 자신감 충만한 사람으로 바꾸어놓았다."     

https://youtu.be/2a1v7p80cQg?si=ywS-uyk9B6BDe4gF     

-당신이 어릴 적부터 당신을 집 밖으로 밀어냈던 부모님은 어떤 분이었나? 또한 그런 부모에게 당신도 부모가 된 지금 어떤 생각이 드나?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아버지는 건축가였다. 어머니에게는 3개월 여름 방학이 있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방학에 맞추어 일을 잡지 않으셨다. 그리고 두 분은 내가 네다섯 살 무렵부터 매년 남부 이탈리아를 비롯해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으로 한 달 이상씩 자동차로 함께 여행했다. 그리고 좀 더 자랐을 때는 홀로 다른 나라로 내보내기 시작하셨다. 부모님은 내가 고향을 떠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독립심이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던 같았다. 어머니는 또한 내가 항상 독서하도록 하셨다. 그래서 집에서는 몇 시간씩 독서를 했다. 집에서도 나는 책을 통해 여행하고 있었던 거다. 아프리카로, 아이슬란드로... 독서는 또 다른 여행의 방법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모국을 떠나 페루에 살아도, 멕시코에 살아도 내 나라처럼 편안하다. 어느 부모나 자식을 안전하게 키우고 싶은 본능이 있기 때문에 자식을 그렇게 내보내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알겠다. 그래서 적어도 1년에 두 번은 부모님께 편지를 써서 어디서나 나를 이토록 자유롭게 느끼게 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부모님은 내게 머뭇거리지 않고 세계의 어디에서나 구속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라는 큰 도구를 선물해 주셨다."     

-당신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노매드의 삶을 살았다. 그것이 오늘날의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나?

"나를 'great'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good'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내가 더 많이 갖지 않아도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사람들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계속 방황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적어도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지를 알게 해주었다.     

-여행은 당신에게 어떤 것이었나?

"여행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칠레의 캠프장이나 사막에서 3일쯤 홀로 있으면 자연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여행은 나를 질문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게 만들어준다."     

-그 질문들에 대해 답을 얻었나?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철학적 명제에 관해...

"이것은 관점에 따라 모두 다른 답을 얻을 수 있으므로 답이 없는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점점 더 똑똑해질수록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이 계속되어야 하는 명제다."     

-대처에서 월급을 받으면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자연 속에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부러워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우선 나는 그들보다 낫지 않다. 내가 그들보다 낫지 않은 것처럼 누구도 더 낫거나 더 나을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살 뿐이다."      

-당신 호스텔의 그래픽들이 의미심장하다? 누가 그렸고 무슨 메시지를 담았나?

"나는 인테리어나 익스테리어의 방법으로서의 그림뿐만 아니라 이 호스텔의 성격을 함께 표현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이탈리아의 시각예술가 Filippo Fiumani “Le mani”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이곳에서 나와 몇 개를 함께 생활하면서 계속 토론하면서 작업을 진행했다. 나는 항상 삼각형 모형에 끌리곤 했다. 그래서 삼각형을 기본 모형으로 삼아 다양한 그래픽으로 이 호스텔의 정체성인 자유, 휴식, 비움을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아이디어가 출중해서 심지어 샤워룸의 잘못된 배관 때문에 벽을 허물어야 했던 곳조차도 그가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당신의 성장과정과 그 후의 삶의 궤적이 보편적인 궤적하고는 많이 다르다. 그런 과정을 기록한 적도 있나?

"나는 지난 20여 년 동안 바텐더로 일하기 전에 2년 동안 광고계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한 적이 있다. 사실 내 삶에 가장 열정을 가진 분야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글을 쓰면 흐릿했던 것들이 분명해지는 점이 있다."     

멕시코 '마법의 마을(Pueblo magico)'이라 불리는 토도스 산토스. 사막과 대양 사이의 이 호스텔에서 눈을 뜨면 왜 신비한 기운이 느껴질까 하는 의문이 이 호스텔의 파운더인 Jacopo와의 긴 대화로 비로소 풀렸다. 이제는 당신이 이곳에서 크리스마스를 앞둔 아이의 마음처럼 당신의 인생에 마법을 걸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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