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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Feb 27. 2024

모티프원 대표 이안수, 길 위에서 배우는 삶과 답

the new chapter | 주부생활 2024년 3월호(59th)

 

모티프원 대표 이안수

길 위에서 배우는 삶과 답     

25년간 잡지계에 몸담은 기자이자 세 권의 책을 펴낸 작가, 북스테이 모티프원 대표 등의 호칭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그저 ‘나’로서의 인생 여정.     


Editor 전혜라 사진 제공 이안수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의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을 만든 이안수 대표는 60대 중반에 아내와 함께 10년간의 세계여행을 떠났다. 일명 ‘글로벌 인생 학교’라 불리는 ‘모티프원(motif#1)’은 전 세계 예술가와 여행자가 모여드는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다. 이곳에서 삶의 답을 찾아 여행 중인 사람들을 맞던 이안수 대표는 이제 다시 여행자가 되어 세상이라는 학교에서 인생이라는 과목을 배워나간다.      


-지난해 5월부터 아내와 함께 세계를 여행 중이에요. 60대 중반에 10년이라는 긴 시간의 ‘나라 밖 유랑’을 떠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오랫동안 간절히 원했던 문화와 문명의 산책자로서의 삶이에요. 거대한 서사보다는 삶의 작은 부분을 들여다보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또 다른 날을 맞는 마음으로 떠났어요. 새로운 문화의 맨살을 만나는 일은 직접 가지 않는 한 불가능하잖아요. 달콤한 것보다 쓴맛이 오히려 개운하고 좋은 지금의 나이가 각기 다른 삶의 상반된 모습조차 공감하기 좋은 때 같더라고요. 초연한 호기심만 배낭에 담은 채 경계 너머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중이에요.     


-지금까지 10여 개월 동안 어떤 나라를 다녔나요?      


가장 먼저 영국으로 향했어요. 아들이 10여 년간 영화를 공부하고 작업한 영국을 떠나려 할 때였죠. 아내가 먼저 아들에게 갔고, 뒤이어 제가 합류해 영국과 아일랜드, 아이슬란드를 함께 여행한 다음 미국으로 넘어갔어요.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살뜰히 챙겨준 미국인 가족과 한동안 지내보고 싶었거든요. 이후 아들은 떠나고 아내와 둘이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내려왔고, 지금은 멕시코 아열대 사막에 있어요. 멕시코의 짙은 매력에 빠져 발걸음이 절로 더뎌졌듯 앞으로의 여정도 늘 가변적이겠죠. 바람이 낙엽의 행로를 이끌 듯 우리의 여정은 인연이 이끌 거예요.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 가는 곳이 더욱 오지라는 것이고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 자리한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을 이끌었죠?    

  

직업으로도 개인적인 욕구로도 국내외 곳곳을 떠돌았어요. 그러던 중 어딘가에서 영혼이 새롭게 깨어나는 것 같더라고요. 쭉 뻗은 지평선, 밤의 짙은 어둠, 그곳에 머무는 사람에게서 개운하고 충만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때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해봐야겠다 생각했죠. 물리적 여건으로만 보면 불가능하다 싶었지만, 죽기 직전 ‘왜 더 많이 모험해보지 못했는가?’ 하며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는 보고서가 떠올랐어요. 사실 모험이라기보다 무모함에 가까웠지만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최고의 이유, ‘삶의 제1동기’를 뜻하는 모티프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어느새 18년이 흘렀네요. 그간 90여 개 나라에서 4만 명이 넘는 여행자가 찾아왔어요. 풀리지 않는 인생의 답을 찾아 삶의 여행을 떠난 그들이 모티프원에서 자기 자신에게 다가가는 시간을 경험하길 바라요.     


-그간 한자리에서 찾아오는 이들을 맞았다면 이제는 직접 움직이며 사람들을 만나는 셈이네요.      


사실 모티프원을 찾는 사람들 대다수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영감을 얻고 싶거나 인생의 진중한 문제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숨 고르기를 하는 중이었어요. 제 역할은 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죠.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문제의 답을 얻을 수 있도록요. 누군가의 게스트로 처지가 바뀐 지금도 그 역할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어요. 여전히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질문을 던지는 일로 보내고 있으니까요. 지금도 질문은 답변만큼 중요하다고 믿어요. 질문이 없다면 어떤 답도 있을 수 없듯 질문을 품고 있는 한 언젠가는 답을 얻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여행 중 마주한 각양각색의 풍경과 이야기를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어요. 기자 생활을 해서인지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행위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유독 의미 있게 느껴져요.     

 

쓸수록 명료해지니까요. 글을 쓰다 보면 사물과 생각의 혼돈이 나름의 질서로 정돈되며 머릿속에 든든한 둑이 만들어져요. 잘 돌본 제방이 있으면 갑작스러운 홍수에도 걱정이 없듯이 가치관의 혼란이나 사회적 충격에도 당황하는 일이 적어지고요. 또 나눔이 되기도 해요. 글에는 신비로운 힘이 있어요. 경험이나 사유가 담긴 글이 비슷한 상황 앞에서 고뇌하는 이들에게 닿아 웃음을 되찾아주기도 하죠. 유일한 ‘나’이자 세상의 일부로 살면서 누군가와 나누는 일은 스스로를 충만하게 만들어요.     


-미국에서 경험한 시니어 대우와 관련한 글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나라와 타국의 노인을 대하는 태도나 시선, 문화가 어떻게 다른가요?      


과거와 K-콘텐츠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의 한국을 대하는 외국인들의 시선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도 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자 배려와 약자 지원, 개성의 존중, 시니어에 대한 보장, 다양성에 대한 무한한 고양 같은 것들은 조금 욕심이 나요. 시니어와 관련한 제도만 해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죠.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메디케어나 시니어 아파트 등 저소득층의 노후를 국가가 책임지는 장치를 비롯해 사기업에서도 시니어에게 제공하는 혜택이 너무나 많아요. 더 감격한 건 이러한 제도적 장치보다도 시니어들의 삶의 태도였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마리노 지역의 헌팅턴 도서관에서 13년째 도슨트로 일하는 83세의 샌드러 메이더는 언제까지 봉사를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하나님이 부를 때까지”라고 답하더군요. 그제는 멕시코 최북단 도시인 멕시칼리에 다녀오느라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는데, 한 할아버지가 7살 소녀에게 자리를 내어주더라고요. 이런 사람들을 거의 매일 만나고 있어요.     


-개인적인 기록 외에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해 기고 중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나 큰 영감을 준 인물이 있나요?      


귀신고래로 알려진 회색고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최대 출산지인 멕시코 바하 칼리포르니아 반도의 라구나 산 이그나시오를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만난 제라르도 선장은 고래에 대한 인식을 바꿔줬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태도가 남달랐어요. 그는 30대 중반에 도시에서 안전하게만 살아와 한 번도 죽음에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다는 걸 깨닫고 배낭 하나만 메고 1300km에 달하는 아열대 사막을 종주했대요. “죽음의 상황에 처했을 때의 반응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었다. 나라마다 남자가 성인이 되면 일정한 관문을 통과하는 의식을 거치는 문화가 존재하지만, 나는 그런 의식을 스스로 만들어 통과해보려 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지금은 모험 전보다 편안한 삶을 살지는 않지만 더 행복하게 살고 있대요.     


-살면서 부딪히는 많은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독특해 보여요. 단순한 감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큰 틀에서 가르침을 얻는 느낌이에요.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받아들이는 나름의 자세가 있다면요?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각별하게 공경심이 드는 이들이 있어요. 공감 능력과 연민을 지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 문화적 다양성에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 환경·인권·불평등 등 사회적 이슈의 당사자로 행동하는 사람, 좋은 리더가 되는 것만큼이나 좋은 팔로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 자발적이고도 호혜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 돈 없이도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 돈이 많지 않아도 크게 행복할 수 있는 사람, 남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태도를 지닌 사람,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사람이에요. 저도 이런 자세를 지니려 노력해요.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간 지나온 시간과 지금의 나를 돌아보자면요?  

    

20대는 모든 것이 혼돈이라 고통스러웠고, 30대는 그 고통을 책임지느라 빠듯했고, 40대는 다시 막을 바꾸느라 혼란스러웠고, 50대는 그것을 혼신으로 구현하느라 정중동의 시간을 보냈어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급변하는 삶의 문법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고 있어요. 다행스러운 건 사색의 속도에 맞출 수 있을 만큼 고독할 시간이 마침내 나에게 주어졌다는 거예요. 차 없이 느리게 여행해도 되는, 걸어야만 보이는 것들에 눈 맞출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그렇다면 노마드 생활을 마친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요?    

  

너무 나이가 들어 여행도 사색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는 느낌이에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젊기 때문인가 봐요. 자식 같은 젊은이들이 “안수!” “민지!”라고 불러주니 정말 우리가 그들의 세대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곤 하더라고요. 그러니 10년 뒤에는 다시 10년의 만행을 연장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삶의 이유는 무엇이고 그 삶을 지탱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나요?      


아버지는 농부로서 평생 하늘과 땅의 이치를 배우고 그 배움에 따라 씨를 뿌리고 거뒀어요. 제 삶의 이유도 배움이에요. 새로운 맥락과 이치를 깨우칠 때마다 전율이 찾아와요.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힘 중 하나가 결핍이에요. 무언가가 없이도 살아온 건 결국 모두가 보이지 않는 탯줄로 연결돼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요?     


caption | 이안수 대표는 ‘삶의 제1동기’를 의미하는 이름의 모티프원에서 풀리지 않는 인생의 답을 찾아 삶의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다가가는 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Styler Magazine, 주부생활은 3040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매달 하나의 주제 아래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여성종합매거진입니다. 이번 3월호에서는 '시니어'라는 큰 주제 아래 다양한 이야기를 인터뷰, 화보, 구성 기사 등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2024년 3월호(59th)는 현재 전국의 모든 서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출중한 편집자들이 가독성 높은 아름다운 편집과 내용으로 담아낸 실물잡지를 통해 더 큰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부생활 #모티프원 #이안수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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