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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Mar 02. 2024

18살 딸을 둔 싱글맘의 눈물

Ray & Monica's [en route]_126


새로 시작할 용기     



지난번 멕시칼리를 오가는 중에 로스카보스공항Los Cabos International Airport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멀고 마땅치 않은 만큼, 가고 오는 길에 카보 산 루카스 Cabo San Lucas에서 이틀 밤을 묵었다.     

멕시코 속의 미국이라고 할 만큼 물가가 비싼 그곳에서 조건 없이 잠자리를 내어주었던 옥스나르의 친구, Penelope(Penny)가 라파즈La Paz에 왔고 옥스나르는 당연히 그녀에게 이틀 밤을 제공해 주었다.     

Penny는 멕시코시티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1년 3개월 전에 홀로 카보 산 루카스로 이사 와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지난번 그녀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 20대 초반에 결혼했다가 딸을 하나 얻은 뒤 이혼했다고 했다. 홀로 키워온 그 딸이 18살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남편이 게으르고 무책임하다는 것을 알았다. 해서 남편을 내보내고 홀로 지금까지 키워온 딸이 자신의 꿈을 스스로 정해 그 고지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 속에서 그녀가 홀로 감당해온 싱글맘으로서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녀에 대한 한 가지 의문은 멕시칼리에서 돌아오는 날 그녀의 집에서 풀려고 남겨두었다. 그러나 그녀가 주말을 딸과 함께 보내기 위해 멕시코시티로 가버린 탓에 풀 수 없었다.     

라파스에서 2박의 주말을 마치고 카보 산 루카스로 돌아가는 날 점심을 함께하기 위해 제법 멀리 떨어진 시립시장Mercado Municipal General Agustín Olachea Aviles의 식당으로 갔다. 우리는 그녀가 먹고 싶어 했던 소고기내장탕menudo de res를 함께 주문했다. 나도 2개월 전 '산 하비에르 2023축제(Fiestas Tradicionales San Javier 2023)'에서 먹어본 뒤 다시 먹을 기회가 없었던 멕시코 전통음식이었다. 나는 맑은 국물로, 아내는 붉은 칠리 양념을 한 매콤한 국으로, 옥스나르는 맑은 국을 먹다가 다시 양념 국물을 추가해서 먹는 꾀를 발휘했다.     

일요일의 식당 앞 시장 광장은 모두가 흥에 겨워있었다. 한 아저씨 버스커(Busker)가 부르는 음악에 지팡이를 짚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할머니께서 지팡이를 흔들며 춤을 추었고 방금 식사를 마치고 나간 아저씨는 엉덩이로, 시장 보러 나온 아주머니는 팔로 리듬을 탔다. 그 흥겨운 광경에 나도 숟가락을 놓고 나가 할머니의 신명을 따라 몸을 흔들었다.     

페니는 그 사이 식사를 마치고 옥스나르가 숟가락을 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가 페니에 대한 궁금증을 풀 적기였다.     

"따님과는 자주 영상통화라도 하나요?"

"딸은 프로댄서가 되고 싶어 하는데 엄마와는 통화할 시간조차도 없다는 고집쟁이에요."

"혹시 로스카보스Los Cabos에 친척이나 지인이라도 있으세요?"

"아니요. 전혀 없어요."

"그런데 그 고집쟁이 딸을 두고 왜 홀로 바다를 건너 이 먼 곳까지 오셨나요? 그렇게 딸을 보고 싶어 애타하시면서..."     

그녀는 잠시 숨 고르기를 했다.     

"좋아요. 삶이 자신이 감수해야 할 어떤 특별한 환경에 직면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이 계속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직면한 두려움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바로 그런 상황이 닥쳤나요?"

"저는 한 대기업의 마케팅을 책임진 책임자로서 일해오고 있었죠. 그런데 그런 일이 제게 생긴 거예요. 저는 그 상황에 저를 계속 두고 싶지 않았어요. 마침내 결심했죠. 저의 심신이 편안할 곳을 찾았어요. 그곳이 바로 이곳이에요.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일로 저의 커리어를 새롭게 시작한거죠."     

밝고 자신감 넘치는 그녀에게 아주 뜻밖의 얘기였다.     

"42살 나이에 당신의 딸인 18살 소녀처럼 용기를 내어 미답지에서 홀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 당신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그 용기 덕분에 오늘 우리가 함께 만나 이 밝은 날을 즐길 수 있는 거예요. 저희 부부도 한국에서 편안히 안주하면서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오는 노년을 맞는 것보다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원하는 삶을 찾아나섯죠. 많은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보면서 말합니다. 부럽다고요. 하지만 그분들은 우리보다 떠나기에 더 좋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편안한 거실의 TV 앞에 앉아 계시죠. 중요한 것은 당신처럼 행동하는 것이죠. 행동하는 당신의 용기를 축하드립니다."     

그녀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몇 장의 냅킨을 적시고 다시 진정이 되었을 때 못다 한 말을 이었다.     

"당신은 당신 딸에게 더 멋진 엄마가 되셨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더 멋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https://youtu.be/pePGV_eRd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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