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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Mar 22. 2024

마음을 싼 브리또

Ray & Monica's [en route]_135


옥스나르표 부리또



옥스나르는 닭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가 2년 전 멕시칼리에서 돌아온 직후 아버지 농장에서 가져온 청계알 10개를 부화기에 넣었는데 6개가 성공적으로 부화했지만 병아리 시절 반려견 Kani가 3마리를 물어 죽이고 수컷 2마리와 암컷 한 마리가 어른 닭이 되었다. 나는 두 마리의 장닭과 한 마리의 암탉이라는 일처다부혼(polyandry)관계의 권력구조를 살피면서 수시로 변하는 역학관계에 대해 관찰한다. 아내는 식재료를 다듬고 나온 과일 껍질이나 채소들을 쓰레기로 내기보다 이들을 먹이려고 애쓴다. 이들의 취향이 분명해서 과일은 사과 껍질 같은 당도가 높은 것을, 채소는 배춧잎처럼 싱싱한 것은 서로 다투어 먹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외면한다.

한 달 전쯤 옥스나르가 푸른 계란 하나를 가져왔다.

"오늘 처음으로 알을 낳았어요. 두 분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청계를 받아 살펴만 보고 다시 되돌려주었다.

"오늘은 마음만 받을게. 네가 그렇게 아끼는 닭의 첫 선물을 우리가 먹을 수는 없지."

며칠 뒤 그 계란을 어떻게 먹었는지 물었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여동생이 프라이해서 먹었어요."

2주 전에 다시 청계 하나를 가져왔다.

"두 번째 계란이에요. 드세요."

이번에도 거절했다. 지난번에는 미셸이 먹었다니 이번에는 옥스나르가 먹도록 권했다.

어제 다시 계란을 가지고 왔다.

"세 번째 계란입니다. 이번에는 두 분이 드세요."

이번에는 순순히 받았다. 생계란으로 먹을지 익혀서 먹을지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우리는 계란을 날로 먹지 않아요."

나도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이 주는 갓낳은 날달걀을 먹기도 했지만 그것은 좋은 섭취방법이 아니라고 들었다. 옥스나르가 돌아서면서 말했다.

"내일 브런치로 함께 브리또 만들어 먹어요!"

옥스나르의 부리또 만드는 실력은 각별해서 언제나 기다려지는 맛이다.

오늘 아침 8시에 찾아왔다.

"민지! 브리또 재료 사러 가요!"

평소 마차카(Machaca : 양념한 쇠고기 또는 돼지고기를 건조해 잘게 파쇄한 것)를 이용해 금방 만들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특히 해산물이 풍부한 라파스에서는 '만타라야 마차카(Machaca de Mantarraya)'가 특화되어있다. 그러나 이번에 사 온 재료는 생물 가오리였다.

"이곳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에서 난 생선을 사용하기 위해 가오리를 사 왔어요. 일단 완성되면 지금까지 먹어보신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선 가오리를 소금을 푼 물에 삶습니다. 풍미를 더하는 향신료인 오레가노oregano 잎을 넣어주면 좋아요. 생잎을 넣어도 좋지만 지금은 건조된 잎을 넣겠습니다. 10분 정도 끓이면 충분해요. 부드러운 육질의 이 흰 고기는 아주 잘 익습니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양파를 먼저 넣고 볶다가 고추를 넣고 두어 번 뒤적여 준 다음 익혀놓은 고기를 넣어서 함께 볶으면 됩니다. 그리고 소금을 뿌려서 간을 맞춥니다. 후추도 넣고 양배추 같은 야채가 있다면 함께 넣어주어도 좋아요."

가오리를 볶는 동안 함께 사 온 밀가루 토르티야를 다른 프라이팬에 데웠다. 준비는 그것으로 끝. 토르티야에 가오리 볶음을 놓고 양 끝을 접어 말아 싸는 것으로 만타라야 부리토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먹는 방법. 각자 접시에 올린 다음 다시 쌌던 토르티야를 풀고 식초에 담가 절인 할라피뇨 고추(chiles jalapenos en vinagre)를 토핑하고 매운 살사 타테마다Salsa tatemada를 식성만큼 얹는다. 절인 고추는 속이 질펀해지지 않도록 물기를 제거하고 얹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라임Lime즙을 뿌리고 다시 싸서 먹는다. 맛은 경이의 세계. 아내가 그 모든 과정을 전수받았으니 이곳을 떠나도 옥스나르의 부리또가 그리우면 유사품을 즐길 수는 있게 되었다.

우리의 흡족한 표정을 살핀 옥스나르는 더 풍만한 자신감으로 말했다.

"다음에는 김치 부리또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청란은 여전히 냉장고 속에 있다. 행복한 감정의 용도는 무심한 상호작용을 통해 산다는 것이 신성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의심케하는 것이지 싶다. 신념과 의지 밖의 일조차도...


●'황금 피리'와 함께한 로컬의 향기

https://blog.naver.com/motif_1/223339161449


#부리또 #멕시코여행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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