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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Mar 20. 2024

결혼을 반대한 분의 정체

Ray & Monica's [en route]_134

동네 식당에서의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누리는 동안 아내는 동네 골목 걷기를 즐기곤 한다. 나들이에는 작은 목적이 있다. 체육관에 가는 것, 은행의 ATM에 가는 것, 과일상에 가는 것, 생선가게에 가는 것, 종합 마켓에 가는 것... 특히 마켓의 나들이가 잦아서 라파스 마켓의 작은 차이들도 소상히 알게 되었다. 김치 담을 배추(Napa cabbage)는 Supermercado Aramburo, 과일은 Mercado de Abasto, 빵은 Chedraui Selecto, 찰진 쌀은 La Victoria, 아시아 양념은 Toyofoods... 쇠고기, 돼지고기를 사기 위해서도 Mercado de Abasto가 저렴하지만 아내는 Aramburo의 정육코너를 선호한다. 고령의 푸주한 할아버님의 발골하고 정형하는 솜씨와 매너에 반한 것 같다.

혼자 나갈 때 약간의 두려움을 감수하긴 해야 하지만 갑작스러운 불편 상황에서도 친절을 만난다. 3주 전에는 옥스나르의 자전거를 타고 마켓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체인이 벗겨져 움직이지 못할 때 한 아저씨가 가던 길을 멈추고 3번을 고쳐주었다고 했다.

간혹 귀갓길 카페에서 엠빠나다 하나와 함께 커피 한잔하는 것은 은밀한 즐거움이라고 했다. 어제는 그 기쁨을 함께 하자며 블루베리 사러 가는 나들이에 나를 불렀다.

"내가 보아둔 브런치 식당이 있어요. 당신과 함께 가보아야지 싶었던..."

아내는 집으로부터 한 블록 뒤에 있는 식당, El Comal로 향했다. 테이블 4개인 작은 식당은 'Como en tu casa(집처럼)'이라는 간판의 문구처럼 수수하지만 편안한 곳이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여성에게 메뉴 설명을 부탁하자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남성을 불러왔다.

"전 이 집의 아들, 호르헤 벤고아Jorge Bengoa입니다. 전 La Ribera에서 관광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휴가라 어머님을 방문했습니다. 주방의 저분이 어머님이세요."

칠라킬레스Chilaquiles와 오믈렛을 주문하고 몇 가지 더 질문을 했다.

"Comal이 무슨 의미인가요?"

"토르티야를 굽는 번철입니다. 저희 가족은 2년 전에 미초아칸Michoacán에서 왔습니다. 그곳에서 코로나19로 장사를 할 수 없어서 라파스로 이사 와서 여러 곳을 전전했죠. 이곳에 자리잡고부터 꼬말에 토르티야를 굽거나 퀘사디아 같은 같은 것만 팔다가 점차 메뉴를 늘여나갔죠. 원래 어머니의 요리 솜씨가 탁월했어요.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주셨고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요."

꼬말을 식당 이름으로 정한 것은 음식의 근본, 그 음식장사를 생업으로 택했던 애초의 결심에 관한 것 같았다. '가마솥'이 붙은 우리의 식당 이름처럼...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아내가 카톡문자를 보여주었다.

"지난 주말 큰언니와 형부가 오셨어. 큰외삼촌이 편찮으셔서 오빠와 나도 함께 찾아뵈었어. 중풍으로 몸의 오른쪽이 마비되어 8개월째 몸져누워계셔. 큰외숙모께서는 건강하셔. 90세, 86세라는군. 셋째 형부가 당신 제자였다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어. 아주 똑똑했다고. 언니와 멕시코 있다고 말씀드렸지. 여기에 있었으면 함께 갔으면 좋았을걸..."

처제의 메시지였다. 자리보전하신다는 고등학교 은사님은 아내와 결혼하고 나서 아내의 외삼촌임을 알았다. 그 후 우리 부부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 정신적, 물리적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은 분이다.

새삼스럽게 우리 부부가 얼마나 무심했는지에 대한 회한이 몰려왔다. 도리라는 것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일 뿐인데 너무 무겁고 엄숙한 것으로 여겼지 싶다. 평소 전화 한 통의 안부만으로도 충분한 방식일 것을...

아내는 40여 년 전의 얘기로 돌아간 것에 취해 하지 않아도 좋았을 얘기까지 꺼냈다.

"내가 당신과 결혼하겠다는 얘기를 하자 큰 언니의 반대가 심했어요."

"왜?"

"소개할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거였지."

"언니의 기준으로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었을까?"

"언니는 무조건 사업하는 사람이었어요. 자신도 사업하는 사람과 결혼했고 주변에 성공한 부자들이나 큰 부자 아들도 많은데 농부의 아들에 집 한 칸도 없는 사람과 결혼한다니 반대할 수밖에요."

큰언니는 아내보다 10살이나 많은 부모 같은 존재감을 가진 분이었다. 그럼에도 아내의 고집을 꺾지 못한 것이다.

꼬말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내 머릿속은 우리의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 고향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두 모여 몇 개의 번철에 전을 부쳐내던 풍경이 떠나지 않았다.



#은사 #도리 #라파스 #멕시코여행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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