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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Apr 11. 2024

멕시코의 폭력 남편

Ray & Monica's [en route]_142


'시어머니의 혀'와 '며느리의 혀'



어둠이 내린 시간에 옥스나르 어머니, 재클린Jacqueline이 오셨다. 인스타그램에서 민지가 고장 난 배낭의 지퍼를 고쳤다는 내용을 읽었다며 솜씨 좋은 그분을 소개받고 싶어 했다.


재클린은 고쳐 쓰고 재활용하는 것을 즐긴다. 그의 감각이 가미되면 버려진 것도 보물이 된다.


지난번 그녀의 집 방문에서 전에 없던 정원용 의자 2개가 놓여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투박한 맛이 정원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내 관심을 눈치 챈 재클린이 말했다.


"어제 옆집에서 분리수거를 위해 집 밖에 내놓으셨더라고요. 사와로선인장의 마른 목재(Saguaro cactus skeleton)와 테코마 스탠스(Tecoma stans) 나무로 만든 의자예요. 버리기에는 너무 귀한 나무이고 손으로 만들어 하나뿐인 의자이잖아요. 방석만 놓으면 정원 의자로 이보다 더 멋진 의자가 없어요.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고 가져왔지요. 사와로선인장나무는 구하기도 힘들고 테코마 스탠스는 바하레크(bahareque)건축에 사용하는 소중한 나무예요."


내일 수리할 가방을 가져오기로 한 그녀가 내 책상 옆의 산세베리아를 가리키면서 다시 물었다.


"저 식물을 멕시코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는지 아나요?"


"'며느리의 혀(daughter-in-law's tongue)' 혹은 '시어머니의 혀(mother-in-law's tongue)'라고 부르지요. 맞나요? 저도 공부 좀 했습니다."


고부간의 긴장관계를 은근히 드러내는 그런 정서를 알면 멕시코 사람이라고 했다.


옥스나르가 민지는 오늘 무엇을 했는지를 물었다.


"동네를 걸었지. 중남미 대륙의 여정이 끝나는 1, 2년 뒤에는 폴리네시아Polynesia, 멜라네시아Melanesia, 미크로네시아Micronesia 등 태평양 도서국들을 찾아가 볼 예정인데 먼저는 뉴질랜드의 테아라로아(Te Araroa)라는, 북섬의 최북단 '레잉가 곶(Cape Reinga)'에서 남섬의 최남단인 '블러프(Bluff)'까지 약 3,000km에 도전해 보고 싶은 욕망이 있어. 그러려면 체력을 키워야 해서 걷는 연습을 한다고 무턱대고 걷다보니 배가 고파서 햄버거 가게를 쳐다보다가 인도의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고 말았어. 안경테가 왼쪽 눈을 눌러서 이렇게 눈 주위에 멍이 들었어."


재클린이 놀라서 아내의 눈을 살폈다. 병원을 함께 가자는 재클린을 진정시켰다.


"다행히 안경 유리도 깨지지 않아서 치명상은 아니에요. 멍만 빠지면 될듯한데 이것은 기다리는 수 밖에요."

아내의 안전을 확인한 재클린이 내게로 눈길을 돌렸다.


"혹시~"


그녀는 나를 가해자로 의심하고 있었다.


"멕시코 부인들도 민지처럼 간혹 얼굴에 멍이 들곤 하는데 대부분 민지처럼 말해요. 넘어져서 다쳤다고... 사실은 남편의 폭력이 원인인 경우가 많거든요."


재클린의 얘기를 듣고 보니 라파스의 인기 트레킹 코스인 '세로 아트라베사도Cerro Atravesado'와 '세로 데 라 칼라베라Cerro de La Calavera'의 트레일을 걸으면서 보았던 캠페인 간판들이 생각났다. 극심한 폭력 상황에 처한 여성과 자녀들을 위한 보호소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멕시코에는 여전히 폭력 남편이 많은가요?"


내 물음에 재클린이 침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아내가 즉시 옥스나를 향해 물었다.


"혹시 너, 멕시칼리의 세 아이의 엄마들과 헤어진 것이 너의 폭력 때문 아니야?"


옥스나르가 조금 전의 나처럼 양손을 휘저었다. 내가 양손을 휘젓는 것으로 재클린의 의구심을 완전히 풀지 못한 것처럼 옥스나르도 아내의 의구심을 완전히 풀지는 못한 것 같았다.


#폭력남편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라파스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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