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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May 23. 2024

모두가 나고 모든 것이 내 일이다.

Ray & Monica's [en route]_158


도마뱀의 노래



이 집으로 방을 옮긴 며칠 뒤부터 잠자리에 누우면 노랫소리가 들렸다. "짹짹~ 짹짹짹~" 어떤 새가 심야에 노래를 할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의 나뭇가지를 살피곤 했다. 때로는 밤 10시경, 자정 무렵, 간혹은 새벽 무렵에도 노랫소리가 들리곤 했다. 소리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 소리는 우리의 자장가가 되었다. 


한 달쯤 지난 날 자정 무렵, 침대 머리맡 벽의 모서리 부분에서 도마뱀을 발견했다. 일본과 동남아, 및 열대의 숙소에서 종종 동거했던 녀석이었다. 두어 시간 뒤 협탁 뒤에서 노랫소리가 났다.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협탁을 옮기자 벽에 그녀가 있었다. 비로소 가수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새소리라고 여겼던 우리의 착각을 바로잡아 주었다. 


그 후로도 방의 곳곳을 옮겨 다니며 수시로 노래를 부른다. "짝짝~", "쪽쪽~"...  때에 따라 그녀의 노랫소리는 조금씩 달리 들린다. 어떤 날은 내 발등 혹은 정강이에서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10cm 내외의 독성 없는 이 귀여운 레피도닥틸루스 로레누스(Lepidodactylus lorenus) 도마뱀은 이곳 라파스에서 '베수코나(Besucona)'라고 부른다. '쪽쪽' 사람의 키스 소리를 내는 특성을 반영해 입맞춤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여성형 단어를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복잡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물망보다도 촘촘한 연결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결국 홀로 잘 살 수는 없는 존재라는 것이 분명한다. 어떻게든 서로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이웃집의 웃음도, 울음도 내게 영향을 준다. 모두가 나고 모든 것이 내 일이다.  


반투명한 밝은 피부색을 가져서 더욱 여려 보이는 베수코나다. 우리에게 자장가를 들려주는 것은 물론, 잠이 들고도 방안의 모든 모서리를 오가며 모기와 바퀴벌레를 잡아주던 키스 도마뱀 소리가 사나흘 들리지 않는다. 그녀가 하루빨리 우리방의 천장으로 돌아와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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