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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un 27. 2024

장갑은 돌아오고 문어값은 나가고...

Ray & Monica's [en route]_176


Hi Ansoo!

 

부부간에도 달의 이면 처럼 보이지 않는 면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대로 두어야 한다. 그런데 장기간 여행하면서 단칸방을 1년 내내 함께 사용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간혹 달의 이면이 비쳐 보일 때가 있다.


매일 출근하던 삶을 살던 부부가 은퇴한 뒤 낮 시간조차 한 집에 머물러야 하는 고통을 말하는 부부의 사정과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한 처방은 은퇴전 처럼 낮 시간에는 각기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서로 눈에 띄지 않는 활동을 하면 된다.


우리 부부는 그런 면에서 다행이다. 아내의 관심사가 나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 한 가지가 좀 처럼 바뀌지않는 다는 것, 야외활동을 좋아해 낮 시간 꾸준히 자신의 활동 영역을 찾아 지속하는 것이다. 이 동네에 체류하면서 현재 몰두하고 있는 것은 산악자전거와 수영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은 수영이다. 5시부터 끝나는 시간을 알 수 없는 밤까지는 MTB 라이딩을 위해 산으로 간다. 나는 여전히 지난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수면을 줄여야 한다. 잠은 죽음의 상태. 조금 더 삶의 상태를 늘리는 것이 태어난 자의 의무'라는 지난 삶의 잔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좀 더 노력해야겠다.


아내가 수영을 마치고 올 때까지 나는 집을 지킨다. 대로변의 집이므로 문단속을 잘하라는 옥스나르의 당부 때문에 낮에도 문을 잠그고 있다. 아내는 집 밖에서 외친다. "Hi, Ansoo! I'm Minji! Please open the door." 이제 이곳 사람들처럼 서로 '안수', '민지'라고 부르게 되어버렸다. 우리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부모의 권유대로 상호 존댓말로 바꾸었는데 이제 서로 이름을 부르는 관계로 바뀌어가고 있다.


아내가 바이크 장갑을 잃어버렸다. 도무지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 그 바이크 장갑을 끼고 돌아왔다. 수영장 관리인 아저씨가 찾아주었다는 것이다.


"수영장 입구의 관리인 아저씨가 오늘 저를 유난히 반갑게 맞아주더라고요. 장갑을 서랍에서 내어놓으면서 말하는 거예요. '이거 당신 장갑 맞지?  분명히 당신 거 같아서 보관하고 있었어.'라고... 아마 입구 벤치에 벗어두고 그냥 왔던 거예요. '그래, 내 것이다.'라고 하니 자기 것을 찾은 것보다 더 기뻐하는 모습이었어요. 그리고 오는 길에 시장의 생선가게에도 들렸다 왔어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돈을 드렸더니 마치 공돈이라도 생건 것처럼 앞 가게 옆 가게에 자랑하면서 좋아하더라고요."


어제 공설시장 생선가게에서 도미를 샀다. 집에 와서 봉지를 열어보니 작은 봉지가 또 하나 들어있었다. 문어가 든 봉지였다. 상황을 알았을 때는 이미 시장의 영업이 끝난 뒤였다. 냉장고가 없는 상황에서 문어를 하루 뒤에 돌려줄 수 없어서 숙회로 먹고 그 상황을 알리러 방문했던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더욱 이런 일이 잦아 질 것이다. 어머니는 두 가지를 내게 시키곤 했다. 바늘귀에 실을 꿰는 일과 물건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50대였으니 노안, 청력상실, 기억력 감퇴가 60대의 우리를 비껴가지는 않을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기로 하자, 고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는 더 큰 것을 염려를 하고 있었다. 


"가진 것이 배낭 하나인데 모두를 잃은들 무엇이 아깝겠어요. 단지 치매 없이 떠날 수 있다면..."


치매를 의미하는 'dementia'는 라틴어 'de(떨어져 있는)'와 'mens(정신)에서 유래된 말로 '정신이 나간' 상태를 뜻한다. 누구나 '정신이 나간' 육신으로 살고 싶지 않겠지만 아내는 양가 부모를 함께 모셨고 특히 장모님께서 치매를 앓았기 때문에 자신을 경계한다. 그러나 내가 더 경계하는 것은 정신이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 나간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https://youtu.be/iu9PMMjrV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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