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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un 26. 2024

오후 3시에 가게 문을 닫는 사람들

Ray & Monica's [en route]_175


그저 지나갈 뿐...

#1


사지 않는다. 떠날 때는 그때 그 장소에서만 필요했던 것들을 비우고 떠난다. 방법은 하루 전날 숙소 앞에서 벼룩시장을 연다. 무료라면 필요하지 않음에도 가지고 갔다가 다시 묵은 쓰레기로 남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주 적은 가격을 붙인다.


남에게도 쓰임이 없을 낡은 옷은 용도를 바꾼다. 수영장의 염소 소독제가 수영복의 색상을 바라게 하거나 섬유의 탄력을 잃게 만든다. 아내는 늘어진 수영복을 자전거무릎보호대로 사용한다.


산악자전거를 시작하고부터는 계속 잔잔한 부상에 직면한다. 선인장에 스치고 바위에 넘어지고 넘어지면서 자전거 페달이나 핸들에 다시 몸이 상처를 입는다. 온몸이 푸르고 검붉은 멍으로 가득하지만 특히 무릎이 성할 날이 없다. 이곳 사람들은 누구도 무릎보호대를 사용하지 않는다. 무릎보호대를 사더라도 이곳을 떠날 때는 필요치 않으므로 대안을 찾은 것이 못 입게 된 수영복이다. 실리콘 브라캡이 나름 보호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선인장꿀이 담겼던 공병은 물병이 되기도 하고 커피잔이 되기도 한다. 조금 더 큰 병은 음식 그릇으로 모자람이 없다.


사막기후에서 냉장고 없이 사는 것이 도전이긴 하지만 이 시도가 우리의 오랜 식습관을 바꾸어 주었다. 조리 없이도 가능한 샐러드가 하루 두 끼 중의 한 끼의 메인이 되었고 생선이나 육류를 먹어도 밥을 찾지 않게 되었다. 밥에 집착하던 습관을 버리게 된 것은 다른 문화권 여행자에게 식사에 대한 고민을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다. 주로 한 끼 분만의 재료를 구입해야 하지만 야채가게에서는 과일이나 채소를 모두 무게로 팔기 때문에 고추 2개, 당근 하나, 영파 하나만을 사도 주인의 눈총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생선가게 사람들은 우리가 냉장고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생선 한 마리를 사도 그들의 웃음 띤 얼굴이 바뀌지 않는다.


해변의 조약돌 하나 조개껍질 하나가 아무리 예뻐도 가져오지 않는다. 단지 사진으로만 추억한다.


바닥이 구멍 난 양말을 꿰매지 않고 발등을 발바닥으로 가도록 뒤집어 신었더니 양말 수명이 두 배로 늘었다.


#2


사지 않으니 후회할 일도 없어졌다. 우리는 '왜 안 샀지'로 후회하는 것보다 '왜 샀지'로 후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의 목적은 소유를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 삶이 나아지는 것이다. 소유가 적어질수록 경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니멀리스트로 사는 것은 소비보다 더 가치로운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도록한다. 식습관을 바꿈으로써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 설거지를 하는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이 마을의 가게들은 대부분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 시장은 오후 2시면 이미 파장 분위기이다. 더 많이 일하는 것보다 덜 쓰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 부자가 되는 일이다.


소유욕, 소비욕을 통제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게 되면 자신의 다른 욕구도 더 잘 다스릴 수 있게 된다. 가부좌를 틀지 않은 시간도 명상시간 같은 자신의 에센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미니멀리즘의 부대효과는 웬만한 것에 불평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욕망의 공간을 비우고 나니 마음에 여백이 생겨난 이유때문인가 싶다. 뒤돌아 보니 물건의 마름으로 살았을 때의 삶이 좀 비루해 보인다.


'바람처럼'이라는 말이 좋아졌다. 숲을 지나는 바람으로 살고 싶은 바람 때문인 것 같다. 바람은 그저 지나갈 뿐인데 나뭇잎이 흔들려 햇살을 흩어놓을 수도 있고 그늘진 곳에 볕뉘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이런 삶을 사명이 아니라 스타일로 생각한다. 도달하는 목적지는 같더라도 과정이 다르다. 사명은 굳이 해야 하는 것이라면 스타일은 마음이 절로 행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오늘, 인생의 무게 3kg 줄였다!

https://blog.naver.com/motif_1/223236358279

■Cerro Atravesado(Crossed Hill)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Baja California Sur)의 라파스의 남동쪽에 위치한 사막 산. 라파스 시를 한눙에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한다. 특히 일출과 일몰의 환상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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