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tif Jun 25. 2024

"당신은 빠세뇨(Paceño)입니다."

Ray & Monica's [en route]_174


'칠랑고' 대신 '빠세뇨'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면 10년 뒤, 혹은 20년 뒤 문득 자신을 돌아보면 자신의 내부에 난 공극들을 인식하게 된다. 한 우물을 파는 성실을 지속해야 한다는 주변의 은근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정말 한 번의 선택을 바꿔서는 안될까?"을 스스로에게 반문하는 일이 잦아진다. 조직 속에서 계속 살아오던 방식대로 조직이 우선인 시간을 계속할 것인가,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양갈래 길이 머릿속을 맴돈다. 후자의 경우는 '이기적인' 사람이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동반되기도 한다. 누구도 양쪽 길을 모두 갈 수는 없으니 결국 한쪽 길을 버려야 한다.


안전하게 걸어오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택하다 보면 결과를 모르는 세계가 기다린다. 기존의 관성을 거의 제로로 만드는 선택이므로 고생을 불평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이 선택은 합리성에 바탕한 선택은 아닌 것이다. 대신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는 흥미를 통해 쫄깃쫄깃한 긴장이 생긴다. 매 순간 스스로 문제의 솔루션을 찾아야 하는 창의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렇게 얻어진 오리지널리티는 기존의 항로를 버린 이에게 주어지는 자존이라는 보상이 주어지기도 한다.


어제 생일파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비교적 먼 길을 함께한 65세의 호세(José) 씨에게는 아마 25년 전쯤이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그는 우리의 호출에 응한 우버 운전자였다. 그의 각별한 배려가 멕시코 남자들의 투박한 친절과는 달랐다.

우리를 태우고 U턴을 한 다음 집 방향으로 향해서 500m 쯤을 갔을 때 물었다.

 

"이 도로 앞쪽이 공사 중이라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거나 좌회전을 해야 하거든요. 어느 쪽이 좋을까요? 약간 돌기는 하지만 거리는 비슷합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의 건축물 하나를 찍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속도를 줄일까요? 찍은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면 돌아갈까요?"


5분쯤 뒤에 연속해서 서너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도 룸미러를 통해 나의 표정까지 살피면서 물었다.


"차를 잠시 멈추어드릴까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찍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거리를 기억하고 이 순간의 느낌을 기억하기 위해 찍는 것이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설명을 드렸다.


그제야 좀 더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손님이 제 차 속에 계시는 동안 언제나 우선은 손님입니다. 혹시 어느 나라에서 오셨는지요?"


그의 이 질문을 계기로 나는 창밖 풍경에서 그와의 대화로 관심을 돌렸다. 그가 다시 이곳에 머문지 얼마나 되었는지 물었다. 6개월째라고 답하자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빠세뇨(Paceño)입니다. 이곳 라파스 출신을 일컸는 말입니다. 저도 45년 전에 멕시코시티에서 이곳으로 왔죠. 20살이 되던 해였죠."


-온 가족이 함께요?

"결혼 직후였어요. 전 은행원이었는데 이곳에 지점이 생겨서 제가 이곳으로 발령이 난 거예요. 20년 후에 그 지점이 문을 닫아서 다시 돌아가야 했는데 저는 멕시코시티로 가는 대신 은행을 그만두는 결정을 했죠."


-회사를 그만두면서까지 빠세뇨가 되기로 한 이유는 뭔가요?

"라파스는 메인랜드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선 공기가 좋아요. 이곳은 공해가 전혀 없어요. 그리고 안전해요. 이곳에선 치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지요. 또한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는 해산물을 좋아하는데 이곳은 질 좋은 해산물이 풍부해요. 무엇보다 사람들이 친절해요.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삶의 질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가족들도 동일한 생각인가요?

"저는 홀로 살고 있습니다. 20년 전에 이혼을 했어요."


-라파스가 당신에게 자유까지 선물한 셈이군요.

"ㅎㅎ 그런 셈이죠. 이렇게 혼자서도 잘 살고 있으니까요."


'칠랑고(Chilango : 멕시코 시티 사람 )' 대신 '빠세뇨' 혼자 사는 삶에 대해서도 궁금했지만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이곳은 공터인데요?"

"아, 길 건너 집이에요."


이번에는 내게 의사를 묻지 않고 차를 유턴했다. 문 앞에 차를 세우며 말했다.

"도로를 횡단하는 것이 생각보다 위험할 수 있어서요."


https://youtu.be/4_KiSUoXOD8 

#라파스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멕시코여행 #세계일주 #모티프원

___

●영상

라파스의 Cerro de la Calavera(Skull Hill)

세로 데 라 칼라베라는 라파스 동쪽의 두개골을 닮은 독특한 바위 산으로 라파스시와 코르테스 해(Sea of Cortez)를 포함한 주변 지역의 탁 트인 전망을 탐험하고 즐길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9살, 10살 커플의 싸우지 않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