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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Jun 29. 2024

눈물이 났고 막걸리가 그리웠다

Ray & Monica's [en route]_178


47세 가장의 장례식이 있었던 날 밤

 


 돌이켜보면 생이 내게 준 감사의 순간은 모든 순간과 함께하고 있었다. 내가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던 순간의 들숨과 날숨도 감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열대성 폭풍 알베르토가 지난 20일 새벽, 멕시코만에 접한 타마울리파스(Tamaulipas)주의 마데로시(Ciudad De Madero)에 상륙해 멕시코 동부를 휩쓰는 위력을 발휘할 때 코르테스해 건너, 멕시코 가장 서부인 이곳 라파스에 약 30분간의 약비가 내렸다. 내가 이곳에 머문 170일 만에 처음 내린 비였다. 그것만으로도 풀 죽어있던 모든 식물들이 화사해졌다. 태풍은 어느 지역에서는 삶을 붕괴시켰지만 이곳 사막에서는 생명을 살렸다. 


삶의 모든 순간은 기쁨과 고통의 양면을 함께 가졌다.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채굴하느냐는 개인에게 달렸다. 원망을 아니면 감사를... 생활 속에 감사할 수 있을 때 마음은 폭풍의 바다에서 고요의 바다로 바뀌게 된다. 누구나 부릴 수 있는 마법이다.


심야에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났다. 베수코나(Besucona) 도마뱀이 노래하는 밤, 달빛이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눈물이 났다. 그 후로도 죽 잠이 오지 않았다. 창밖에는 키가 큰 세 그루의 Neem(Azadirachta indica)나무가 낮에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밤에는 새들의 안전한 잠자리가 되고 있다. 나무 아래에서는 우리가 몰래 생선뼈를 주곤 하는 날씬한(?) 고양이가 잠을 잔다. 


밤새 간간이 이어졌던 도마뱀의 노래가 끝나면 새들이 그 노래를 이어받는다. 그때는 먼동이 터는 5시이다. 사람은 누구도 깨지 않은 시간, 집 앞 대로조차 차 한 대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정적의 시간이다. 


자동차가 서에서 동으로 지나갔다. 눈물이 났고 막걸리가 그리웠던 밤이 끝났다. 근원은 고향이 아니라 그 너머 어딘가에 있다. 


나는 계속 여행할 것이다. 탁발을 끝내고 어느 무덤가에서 저녁을 맞아 마침내 충만해진 수행자처럼...


#근원 #향수 #라파스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멕시코여행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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