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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Ray & Monica's [en route]_223

by motif


그와 함께한 2,400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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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 이안수ᐧ강민지



#1


2003년 새해 벽두, 우리는 함께 디트로이트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와 나는 한국에서의 인생1막을 내리고 어떤 2막을 살 것인가의 번민으로 머릿속이 꽉 차있었다. 비행기 속에서 나의 전두엽은 마치 뺏고 뺏기기를 거듭하는 전장의 격전지 같았다. 희망과 절망이 번갈아 전두엽에 깃발을 꽂았다.

나보다 가진 것이 훨씬 적은 그는 나보다 여유로운 입장이었다. 나이도 훨씬 많고 아내고 있고 자식도 3명이나 있는 나는 그보다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스스로를, 나는 다섯 명의 안위를 도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적을 둔 대학에서는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았다.

방학을 맞아 기숙사의 모든 짐을 지인의 지하창고에 맡기고 배낭 하나만 꾸려서 길로 나섰다. 130일간, 미국과 캐나다의 길 위에서 유목을 살아볼 참이었다. 다른 유학생들이 서머스쿨에 등록해 패스트 트랙을 도모할 때였다.

나는 배낭과 함께 몇 가지 유목의 기준을 챙겼다.

-패스(Amtrak의 North America Rail Pass, Greyhound의 North America Discovery Pass 등)를 이용하지 않는다. 패스 유효기간에 얽매이다 보면 한 지역이 주마간상일 수밖에 없을 것이 염려되었다.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과 섞이기 위해 떠난 여행이다. 승용차 문화의 북미 지역이지만 렌터카를 이용한다면 현지인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기 어렵다.

-사람과 교류가 가능한 숙소를 이용한다. 유스호스텔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모든 여행정보가 집결되는 곳이다. 하지만 호스텔이 없는 소도시나 오지에서의 대책은 노숙을 결심했다.

-대면하는 모두와 대화한다. 그 여정이 적어도 삶과 가슴속 탐사나 탐험에 가까운 일정이 되길 바랐다.

-환상(環狀)의 코스를 택한다.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루트 대신 출발지까지 되돌아오는 시간까지 계속 새로운 길이 기를 원했다.

-예약을 하지 않는다. 우연성에 의존하기로 했다. 예약을 하지 않은 일로 벌어지는 불편과 황당함을 해결하는 과정을 수련하기로 했다.

-교민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 일찍 한국을 떠나 Korean-American이나 Canadian으로 살고 있는 그들의 현재의 변화된 삶을 이해하고 싶었다.

미리 마련해둔 코펠 하나와 수저 한 벌, 쌀 한 봉지를 배낭에 담고 디트로이트의 버스터미널에서 미국 동부를 향해 그레이하운드에 몸을 실었다.

130일 뒤, 학교로 돌아온 나는 다음 학기를 등록하지 않았다. 북미 대륙의 다양한 삶을 탐험한 나는 이미 떠날 때의 내가 아니었다. 그 여정은 내속 욕망의 불덩이를 식혀주었고 널뛰던 감정을 추스르는 법을 깨닫게 했으며 욕심을 버리고 겸손해지도록 일깨워 주었다. 길 위에서 만난 또 다른 여행자들의 따뜻한 마음 씀이 내 가슴속에 중첩되어 쌓였다. 세상은 넘쳐나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로 인해 살맛 나는 곳이라는 확인의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절망과 마주했을 때,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일 수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은 사람들……. 사람이야말로 가장 중독성이 강한 치명적인 약물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중독됐다.

내게 부드러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혜 갚는 마음으로, 어떤 낯선 이가 나로 인해 세상은 아름다운 곳임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결심만을 챙겨서 철없는 방종과 대책 없는 유배를 허락해 준 아내에게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삶의 판을 바꾸는 대신 방법을 바꾸는 것으로 결론을 낸 것이다.


#2


그는 미국에 남았다. 판까지 바꾸는 선택을 한 것이다. 10수 년이 흐른 뒤 그와 다시 연결되었다. 그는 사업가가 되었고 결혼을 했고 미국의 시민권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1년 전쯤 그의 부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에게 준비되지 않은 사별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던지 사업에 대한 의욕도 함께 사그라졌다. 그는 아내를 보내고 바로 상용 밴인 Ram ProMaster를 구입해 캠퍼밴으로 개조하면서 유랑할 결심을 했다. 그리고 10여개월 동안 미국 전역 4만여 마일의 길을 달렸다. 불면증으로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 밤마다 거리를 헤매듯……. 그가 택한 길은 고속도로였다. 스쳐 지나가는 속도 속에서 홀로 남은 자의 회한을 경감하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멕시코에서 11개월을 살고도 멕시코와의 사랑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해서 다시 6개월간의 체류연장을 위해 멕시코 시우다드 후아레즈(Juárez)와 접하고 있는 미국의 엘파소(El Paso)로 갔다. 단지 멕시코 재입국으로 입국 도장을 갱신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국에 온 김에 엘파소 피자집에서 피자가 구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미국에 오면 한번 연락하라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피자가 나오기 전 멕시코로 되돌아가는 것을 미루고 그에게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달라스, 시카고를 거쳐 엘파소를 떠난 지 5일만 인 지난 8월 5일, 그가 사는 인근 도시 배틀 크리크(Battle Creek) 버스터미널에서 그와 허그할 수 있었다. 21년 만이었다.

먼저 그의 아내가 잠든 이스트 르로이(East Leroy)의 세미터리(cemetery)로 가서 일생의 태반을 몽골, 중동, 아프리카에서 임상연구원으로서 의료인들을 교육하는 선교로 이타의 삶을 살다 떠난 안드레아(Andrea) 씨를 애도했다. 비문의 그녀 이름 옆에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Taehur! 그는 부인 옆에 자신의 자리도 미리 만들어 두고 있었다.

우리는 반려견 디(Dee)와 단둘이 살고 있는 그의 집에서 21일을 함께 지냈다. 매일 함께 식사하고 함께 산책했다. 정 많은 그의 처가 식구들과 교류하고 미시간의 일상에 스며 들어서 마치 우리 부부가 이스트 르로이의 주민이라도 된 것처럼 고요한 마을에 정이 들었을 때 그의 캠퍼밴에 올랐다. 그의 처형이 '디'를 돌보아 주기로 했고 처형의 딸 내외가 우리에게 캠핑 장비를 빌려주었다.

8월 24일(토요일), 이스트 르로이를 떠난 우리는 9월 13일(금요일)까지 22일 동안 미국 동북부 여정을 함께했다. 그는 집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매번 20여 일 간격으로 집으로 돌아갔었다. 디의 외로움을 헤아려야 하고 이웃이 염려하지 않게 정원 잔디도 깎아야 했다. 그와 프로비던스(Providence)의 피터팬버스터미널(Peter Pan Bus Terminal)에서 다시 허그로 작별할 시간이었다.

약 2,400마일(3,862km)에 달하는 여정 속에서 그는 내 요청을 모두 수용해 주었다. 고속도로 대신 국도와 지방도를 운전하는 것을 감수해 주었고 21년 전 내 여정에서 차가 없어서 가지 못했던 곳으로 기꺼이 운전해 주었다.

덕분에 우리 부부 후반기 삶의 준거가 되었던 세 인물, 스콧과 헬렌 니어링(Scott and Helen Nearing) 부부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삶의 루트들을 만날 수 있었고 자연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주었던 메리 올리버(Mary Oliver)의 산책길을 걸을 수 있었다.

특히 뉴욕을 떠나 자급자족의 삶을 살기 위해 들어가 20년을 산 버몬트의 마을과 메인주로 이주해 30년을 산 하버사이드는 차 없이는 갈 수 없는 곳이며 차가 있어도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다.

이번 여정에서 우리는 세 사람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분담되었다. 그는 운전을, 아내는 식사를, 나는 여정을 계획했다. 우리의 배낭을 내리고 허그를 하면서 생각했다. 우리가 언제 다시 이런 밀도 높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을까. 과묵한 그가 말했다.

"아내가 떠나고 내 주식은 맥도날드의 메뉴였는데 집밥으로 더 건강해진 것 같아요."

43일을 함께하는 동안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한결 밝아졌다. 아내의 권유에 따라 스카프도 사서 두르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몸과 마음에 다시 온기가 배었다.

캠퍼밴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도 그가 사라진 곳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운명이 답할 것이다.


●Amor fati, 모든 것을 사랑하라, 그것이 너의 운명이다

https://blog.naver.com/motif_1/22354462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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