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226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삶은 홀로 걷은 길이 아님을 길 위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거듭 확인하게 된다. 홀로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다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내가 가진 것을 갖지 않는 사람이 필요할 때 나누는 것이며 내가 갖지 않은 것이 필요할 때 가진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배낭하나씩이 가진 모든 것이지만 길 위에서 모자람 없는 여정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길 위에서 만나는 친절이라는 이름의 ‘나눔’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이 '나눔'이라는 친절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들은 부드럽고 다급하지 않다. 반면 엄격한 어조에 안절부절못한 상황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을 더 배려할 필요가 있다. 아직 스스로의 안위를 도모할 최소한의 안전을 도모하지 못한 상황인 셈이다. 설혹 그가 부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더 부드러워지고 마음의 여백을 갖도록 하는 것이 가족과 친구의 책무이고 각 개인의 이웃된 도리이다.
#1
프로빈스타운에서 '헤링 코브 비치(Herring Cove Beach)'에 도착했을 때 오후 5시 40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그 비치가 대서양과 맞닿은 석양의 황홀한 전망 때문이 아니라 흠모하는 시인, 메리 올리버가 산책하며 영감을 받은 곳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방문한 것이었다. 그 비치를 걸으면 그녀처럼 내게도 영적 성찰이 일어날 것 같은...
주차장이 닫혀있었다. 하지만 주차장 안에는 여전히 많은 차들이 있었다. 우리는 주차장입구를 지나 그 비치로 난 산책로 옆의 갓길에 차를 대고 이 상황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때 멀리서 자전거를 탄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 왔을 때 그의 자전거를 멈추게 하고 우리의 의문에 대한 답을 아는지 물었다. 그는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이곳에 온 선택을 칭찬했다.
"이곳은 너무나 멋진 곳이죠. 당신의 선택에 충분한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차장이 왜 문을 닫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차가 주차된 저곳으로 가서 이유를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시간이 아마 6~7분쯤은 소요될 것 같습니다."
그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모래언덕을 돌아 주차장으로 힘차게 페달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살짝 오르막인 그 길을 온힘을 다해 페달을 밟으며 되돌아왔습니다.
"주차하신 분들께 여쭈어보니 폐쇄된 6A도로의 출입구 말고 '프로빈스 란즈 로드(Province Lands Rd)'쪽에 출입구가 있다는 군요."
이 친절에 특별히 감격한 이유는 자신이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꺼이 편도 1km 쯤의 언덕길을 왕복하는 수고를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고맙습니다'와 '안녕히 가세요'를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했다.
"It's because I want to say in your language that I'm happy and happy to meet you.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당신을 만나서 행복하고 행복했다는 것을 당신나라 말로 하고 싶어서입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손을 높이 들어 흔들며 온 길로 다시 멀어지는 워커(Walker) 또한 뉴욕에서 온 여행자였다. 나는 뉴욕에 오기 전에 이미 이렇게 뉴욕산 친절을 맛보았다.
#2
우리가 퀸즈에서 짐을 푼 다음날 맨해튼으로 나가는 첫날, 아직 대중교통카드를 구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버스를 탔다. 우리가 준비한 것은 1달러짜리 지폐 몇 장이었다. 버스의 현금지불은 코인만 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코인만 가능합니다. 아니면 지하철역에서 버스와 지하철에 함께 통용되는 메트로카드(MetroCard)나 OMNY (One Metro New York)를 구입하면 됩니다. 이번에는 그냥 타세요."
버스기사의 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운전자의 친절에 응답하고픈 마음에 뒤돌아서서 1달러 지폐 몇 장을 쥔 손을 높이 들고 버스 속 20여명의 승객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누군가 이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주실 분이 있나요? 버스요금을 지불하고 싶어서요."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시민들은 교통카드를 소지한 만큼 동전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한 여성이 좌석에서 일어나 운전자에게 가서 자신의 메트로카드로 우리 두 사람의 버스요금을 대신 내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운전사는 그 여성의 친절도 웃으며 거절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두 사람의 요금은 지불한 것으로 처리되었습니다."
#3
우리가 머물고 있는 퀸즈에만 160개의 언어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퀸즈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퀸즈에 위치한 두 공항(John F. Kennedy International Airport (JFK), LaGuardia Airport (LGA))의 비행기 이륙소리도, 옆집 보수공사장의 기계음도 새로운 언어로 들릴 만큼 나는 퀸즈의 다양성에 흠뻑 젖어있다.
우리 집의 한 집 건너 집은 신한은행이고 그 은행의 길 건너 마주한 곳은 파리 바게뜨이고 그 옆집은 펠리카나 치킨집이다. 치킨집 맞은편은 짜장면집이고 또 몇 걸음을 가면 국밥집이 반긴다. 이 거리의 반대편으로 가면 갖은 해물까지 모두 갖추어진 중국계 슈퍼마켓이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문을 열고 그 맞은 편 코너 건물에는 수제 페이스트리와 에스프레소로 명성을 얻은 프랑스계 베이커리가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문을 열어놓고 있다.
우리 부부에게 더 놀라운 사실은 펠리카나 치킨집의 전 건물주와 그 분의 댁에서 손수 지은 아보카도 오일이 듬뿍 들어간 아침식사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다종다양한 문화로 찬란한 곳에 다양한 사원이 없을 리 없다며 아내는 근처의 종교 사원들을 찾아냈다. 기독교뿐 만아니라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대교 등 다양한 신앙의 예배처가 곳곳에 산재해있었다.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가네쉬(Ganesh) 힌두교 사원, The Hindu Temple Society of North America가, 이슬람 모스크 마스지드 알 팔라(Masjid Al-Falah)가, 유대교 회당인 영 이스라엘 오브 퀸스 밸리(Young Israel of Queens Valley)가, 로마 카톨릭 교회인 루르드 성모 교회(Our Lady of Lourdes Church)가, 큰 시크교 사원(Sikh Gurudwaras)인 뉴욕 시크 센터(Sikh Center of New York)가 있다.
아내는 홀로 불교사원으로 갔다. 한마음선원에서 참배하고 경내를 걸은 다음 이웃의 또 다른 사찰, 연국사에서 비구니 노스님과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해가 진 뒤 돌아왔다.
"전생과 후생에 대해 여쭈었더니 이리 말씀하셨어요. 그리 마음 쓸 일이 아니고 오직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구요. '나' 혹은 '내 것'에 집착할수록 더욱 그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나'와 '내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요. 어떤 생물도 나를 찾지 않는데 사람만이 ‘나’라는 것에 집중해 고통 받는 다는 거예요. 스님의 말씀 하나 하나가 우리가 어떤 스탠스로 살아야하는 지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되었어요. 스님께서 직접 지으신 밥으로 함께 공양을 하고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라며 일어서니 과일과 치즈를 챙겨주셨어요. 스님께서도 산책할 시간이라며 구태여 저를 따라오셔서 제가 찬거리를 사러 마켓에 들어가서 몇가지 집어 나오자 한사코 스님께서 계산을 하시겠데요. 머리 깎고 세계를 만행하는 제 모습이 짠하시다며..."
이 친절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들이 모두 부자여서 일까? 그 의문의 답은 분명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미국을 걸어서 여행하면서 평생 무소유를 실천한 피스 필그림(Peace Pilgrim)의 성장환경에 대해 읽으면서 그 실마리가 되는 구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놀 수 있는 숲과 수영할 수 있는 개울, 자랄 수 있는 공간(woods to play in and a creek to swim in and room to grow)'이 허락되었다.
내 마음에 사원하나 들여놓을 수 있는 여백은 친절과 선의의 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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