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245
#1
아내는 오늘 점심으로 특별한 메뉴를 준비했다. 감자수제비국이다. 한국을 떠난 이래 먹은 모든 음식 중에서 혀가 기억하는 가장 친근한 식사였다.
내가 칼국수와 수제비를 좋아하는 이유를 오늘 수제비를 먹으면서 문득 알게 되었다. 수제비국 그릇을 앞에 두고 보니 어머니가 점심 끼니로 칼국수를 만들기 위해 안반 위에서 홍두깨로 허리까지 움직여 밀가루 반죽을 밀던 모습, 수제비 저녁식사를 위해 끓는 무쇠솥에 밀가루 반죽을 뜯어 넣던 손놀림이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박제되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불려 나왔다.
아내에게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만들었냐고 묻자 남은 김치 국물을 넣어서 일 것 같다고 했다. 반만 맞는 말이지 싶다. 나머지 반은 결코 복구가 불가능한 그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내게 음식 맛은 혀가 기억하는 추억이다. 그 추억은 어머니였다.
수제비를 먹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과 떨어져 지구의 반대편에서 살 때, 좋은 곳을 방문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항상 부모님과 당신 생각이 났어. 아이들이 아니라..."
아내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받았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생각났어요. 당신이 아니라... 남자는 보호받는 것에 익숙해서 자신을 보살핀 사람이 생각나고 여자는 보호할 대상을 생각하는 거예요. 모성본능이 시키는 일이니..."
아내가 수제비를 만든 뜻은 아직도 보살펴야 하는 남편을 위해 언제 수제비를 끓일 수 있는 환경이 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만찬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 오늘이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 새벽 우리는 과테말라로 간다.
#2
우리는 네 번째 미국으로 입국했다. 그 중의 3번은 멕시코에서의 체류를 연장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네 번째 방문도 같은 목적이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오래전 맺어진 인연과 함께 여행할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10개 주 약 3천8백 km의 미국 동북부 캠퍼밴 여행이었다. 21년 전 미국과 캐나다 동부를 여행하면서도 차가 없었기 때문에 미루어진 곳들을 두루 방문하는 소원이 이루어졌다. 캠퍼밴에서 내린 뒤 NYC에서의 42박 43일은 지난 방문에서 1주일밖에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씻어주었다.
그 4주간은 동으로는 몬타우크(Montauk)에서 서쪽으로 뉴저지주 패터슨까지, 남으로는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서 북쪽으로 오렌지 카운티까지 광범위한 곳을 촘촘하게 방문했다.
고마운 것은 사람들과의 연결이었다. 내가 자리를 지켰던 모티프원을 방문했던 이들부터 내 글의 독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초대로 함께하는 시간들이었다. 이들은 우리 부부를 각자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초대했고 가장 특색있는 것들을 맛보게 했으며 가장 고통스럽거나 가장 즐거웠던 순간들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 시간을 통해 인생에서 여전히 몰랐거나 불분명한 것들이 더 선명해졌다.
돌이켜보니 이분들은 우리게에 에오스(Eos)같은 이들이었다. 그리스 신화 속 여명의 여신인 에오스는 태양신 헬리오스(Helios)보다 먼저 나타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어둠의 장막을 걷고 새벽을 연다. 이분들은 불투명한 길을 누구보다 앞서 걸으며 뒤따르는 이들이 발을 헛딛지 않게 안내하는 이들이었다. 이 분들 덕분에 아름답거나 어두운 뉴욕의 이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것을 통해 지난날 벗어나고 싶었던 모든 고통의 순간들조차도 귀중해져서 마침내 삶의 의욕이 된다는 것을 증언해 주었으며 그리하여 기쁨과 슬픔, 고통과 즐거움은 한 몸의 양면임을 알게 해주었다.
#3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 빌딩 숲 사이의 군중 속은 달리듯 걷고 있는 바쁜 발걸음이 위험하고 패스트푸드를 입에 넣으며 여러 장의 서류를 읽느라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넥타이로 목을 졸라맨 와이셔츠 차림의 눈길이 애잔하다.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부둣가 마을에서 홀로 건너와 몇 개의 레스토랑을 열고 세 아이를 둔 가장이 된, 여전히 순박한 남자의 성취가 흐뭇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축제 중인 흥겨움이 즐겁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노력들이 놀랍다. 어떤 새로운 시도도 존중받는 격려들이 부럽다. 예상치 못한 일과 마주쳐도 너무 당연한 뉴욕. 이 모든 것이 뉴욕이라서 나는 여전히 뉴욕에 미련이 많다.
떠나는 것이 늘 두려운 것은 이것이 인연의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이다. 뉴욕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뉴욕의 당신에게
함께 나눈 커피향을 생각합니다.
함께 걸었던 공원을 생각합니다.
그 서점을 생각합니다.
바로 뉴욕의 당신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당신 곁을 떠납니다.
그러나 당신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묶였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하루 종일 편지를 쓰고 전화를 해도 못다한 마음이 남은
뉴욕의 시간과 당신에게 그리움을 받칩니다.
2024년 10월 24일
_강민지.이안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