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tif Nov 05. 2024

또다시 사랑에 빠졌다

Ray & Monica's [en route]_251



우리 숙박 계약을 한 달로 바꿔주세요!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성당의 종소리로 중미 첫 나라의 첫 도시,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의 첫날밤에서 눈을 떴다. 어둠 속에 대부분을 감추고 있었던 지난밤 잠깐의 산책은 좀처럼 심장의 두근거림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모든 대문은 신비로 통하는 비밀의 문 같았다. 대문 너머 깊은 정원으로 걸어들어가보고픈 욕구를 겨우 참았다. 


중앙공원(Parque Central de Antigua Guatemala)의 대성당(Catedral San José) 앞에서는 큰 스크린을 설치하고 곧 다가올 '망자의 날(Día de Muertos)에 얽힌 전설을 영상으로 들려주고 있었다. 공원의 상인들은 단지 핸드폰 조명으로 자신들의 좌판을 비추고 있었다. 어둠 속 요정들 같았다.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안티구아의 밤은 성당의 제대처럼 성스러워 보였다. 이 도시의 모든 것이 성스러워 공원을 걷는 것조차 절로 뒤꿈치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도시를 걷는 동안 푸른 밤이 검은 밤으로 바뀌었다. 이 도시는 속과 성의 경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속에서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써는 사람들의 도시. 그러므로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은 수도사일 거라는 의심이 뇌리에 자리 잡았다. 낮이 그 의문에 답해 줄 거라 믿으며 잠든 지난 밤이었다.


#2


정원의 장미가 아침 역광을 받아 빛났다. 그 꽃이 이 도시가 사계절 꽃이 피는 곳임을 상기시켰다.


종소리가 난 곳을 향해 모퉁이를 돌았다. 불과 150m 정도의 거리였다. Iglesia Escuela de Cristo. 숙소가 이 성당의 영역 내에 있는 듯 가까운 거리이다. 돌벽의 성당은 지붕 양쪽의 종탑만 흰색이었다. 매일 아침 이 성당의 종소리에 맞추어 눈을 뜨리라, 마음 먹었다.


몇 걸음을 더 걸어 산 아래의 공원, Parque de Belén에서 심호흡을 하고 Calle de los Pasos와 7a Calle Oriente, 2 Avenida Sur의 거리를 걸었다.


이 몇백 미터의 거리를 걷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연도의 눈이 닿는 모든 것들이 발목을 잡는다. 결국 아침 산책이 한낮으로 이어졌다.


수백 년 동안 몇 번을 덧칠했는지 모를 벽의 상처 난 색들, 돌과 돌 사이의 회반죽은 모두 사라진 채 돌만 남은 검은 자갈길 도로, 작은 글자로 벽의 일부가 되어버린 속삭임의 간판들, 몇 번의 화산과 지진으로 골조만 남은 성당과 수도원들, 여전히 연기를 뿜고 있는 활화산... 나는 또 사랑에 빠졌다. 이 도시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랑에 빠진 것을 알아챈 순간, 나는 발걸음 재촉했다. 급히 해야 할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집으로 들어서자 마자 호스텔의 주인 Mauricio Moreno를 찾았다. 그는 본래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나타났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나요?"


그렇다. 생각해 보니 아주 큰 일이다. 그에게 애원을 담아 말했다.


"우리 숙박 계약을 한 달로 바꿔주세요!"

#안티구아 #과테말라 #모티프원

작가의 이전글 수백 년 전 역사 속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