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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Nov 15. 2024

침묵의 도시에 불시착한 자의 선입관

Ray & Monica's [en route]_257


십자가 언덕에서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북미(멕시코 포함)를 떠나 중미의 첫 국가인 과테말라에 발을 디딘 지 20일이 지났다.

우리는 공항에서 더 가까운 이 나라의 수도, 과테말라시티로 가는 대신 외국인에게 친화적인 도시 안티구아로 왔다.

나는 이 안티구아의 숙소에 단 이틀의 숙박만 예약했었다. 이 나라의 수도로 옮겨갈까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한 나라를 좀 더 빨리 이해하려면 먼저 역동적인 현장인 수도에서 나라를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를 느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이 나라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대부분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그것이 낯선 곳에서 방심할 수 없는 여행자의 자연스러운 보호본능이라고 하더라도 북미보다 좀 더 엄격했던 것이다. 더 너그러울 수도 있는 마음을 닫은 것은 중미에 대한 선입관 탓이었을 것이다.

최근 여행자들의 부분적인 관찰이나 편향된 인식,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주관적인 판단이 게시되곤 한다. 하지만 초행자들이 최근의 기초정보를 그것에 의존하다 보니 오류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도 하다. 나는 이점을 경계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같은 선입관을 가지고 이 나라에 첫발을 디뎠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라 아우로라 국제공항(La Aurora International Airport)의 로비를 나와 안티구아로 가는 택시에 요금을 물었다. 450케찰(quetzal : 1케찰 182원)) 내외였다. 내가 기 획득했던 정보는 150케찰이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주말의 교통체증 때문에 양보할 수 없는 금액이라고 했다. 우버를 검색하니 택시요금 이상의 요금이었다. 그것보다 낮은 금액의 경우는 4인이 합승하는 경우였다. 셔틀의 경우는 150케찰도 가능하지만 그것은 좌석 수 만큼 승객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결국 택시를 타고 안티구아로 이동하면서 그들이 말했던 체증은 현실이었다. 그들 말대로 'rip-off'가 아니었다. 속임수 요금을 의심했던 내가 미안했다.

첫날 저녁, 어둑한 거리를 걷는 동안 접한 좁은 인도, 자갈밭 차도, 공원의 어두운 불빛 속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신비로움이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사인물이었다. 명도 높은 고딕 큰 글씨로 뒤덮인 도시, 휘황찬란한 네온의 거리 속을 떠나 당도한 이곳은 단 하나의 큰 간판도 네온사인도 볼 수 없었다. 고함 소리로 가득한 곳을 떠나 침묵의 도시에 불시착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첫날 밤, 새벽부터 시작된 긴 시간의 이동으로 피곤했지만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진 흥분 때문에 푹신한 침대 위에서도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지난 20일간의 안티구아 시간은 내가 사랑에 빠진 그 이유들이 진실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호텔 메이드와 장인들, 레스토랑과 앤티크 숍, 성당과 박물관, 시장과 공원, 가정집과 공동묘지... 그 모든 곳을 방문하며 일상과 축제의 나날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


#2

*폭력적이고 위험하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

*가난하다.

*교육 수준이 낮다.

*문화적으로 비슷하다.

이곳 삶을 되돌아보니 중미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라고 알고 있는 이런 상식은 많은 부분 과장되거나 부정확한 선입관이었다.

오히려 과욕으로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지구 위에 발 디딘 자의 죄책감에 안티구아는 매일 성찰의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첫날밤의 설렘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아내가 홀로 가는 산책코스인 십자가의 언덕(Cerro de La Cruz)에 나도 홀로 올랐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가 정연한 모습으로 한눈에 들어오고 그 도시의 끝에 아구아 화산(Volcán de Agua)이 나를 마주 보고 있다.

1541년의 폭발로 수도였던 시우다드 비에하(Ciudad Vieja)를 파괴하고 안티구아로 수도를 이전하게 했던 아구아 화산은 화산활동을 멈추고 대부분의 날을 구름으로 정상을 가린 체 자애로운 모습으로 안티구아를 굽어보고 있다. 목마름을 해소하게 해주는 어머니처럼 ... 하지만 옆에는 여전히 용암을 토해내는 푸에고 화산(Volcán de Fuego)이 있다. 때때로 매를 들 준비를 하고 있는 아버지처럼... 

십자가 언덕에는 방문자들의 기념사진 스폿으로 설치된 흔한 천사상이 있다. 다시 보니 그것의 날개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날개가 아니라 이 나라의 국조인 케찰(quetzal)이었다. 이 새는 마야 문명에서 자유와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마야 사람들은 옷에도 일상용품에도, 종교적인 행사에도 케찰 무늬 넣기를 즐긴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면 이 나라의 통화 이름을 케찰로 한 것도 이해가 된다. 돈 앞에서는 모두 모질어지고 치열해지는 현실에서 통화 이름에 '자유'와 '평화'의 상징을 넣었다는 것이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꼭 필요한 만큼의 돈은 자유를 가져다 주지만 그것을 다루는 거래와 관계, 추구에 있어서는 결코 평화를 헤치지 않는 정도까지라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나는 케찰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한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이 도시 곳곳에 스민 물과 불의 균형이 깨졌을 때의 재앙의 흔적들을 통해 지나침 대신 작은 만족에서 행복을 구하는 무릎 꿇은 기도의 모습들에서 확인한다.

우이필(Huipil)을 입은 한 가족의 어린 딸이 아버지에게 손짓하며 '아빠! 아빠!(Tata : K'iche'어와 같은 여러 마야 언어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지칭하는 친근한 표현. 스페인어는 Papá, 과테말라에서는 친밀감과 따뜻함이 담긴 긴밀한 표현으로 Apa를 사용한다)'라고 부를 때 마다 나는 이곳이 한국 아닌가 싶기도 하고 3, 40년 전 두 딸이 어렸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기도 하다. 그 정서적 분위기만으로도 내게 이 도시는 선물이다.


#십자가언덕 #안티구아 #과테말라 #세계여행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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