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267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Thanksgiving Day를 이 숙소에서 여행자의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테말라에서 약 1만 3천 km쯤 떨어진 나라의 음식을 맛보게 하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추수감사절이 미국과 캐나다에서 기념하는 휴일이지만 이미 그 유래와 의미는 각국 여행자들 모두가 공유하는 명절이 되었다. 즉 수확에 대한 의식보다 떨어져 있던 가족이 모여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나누는 시간임이 소중해졌다.
이 숙소의 사람들은 미국, 호주, 온두라스, 콜롬비아 등 떠나온 곳도, 떠나온 이유도 제각각이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특히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펜실베이니아, 버몬트, 메인 등 미국에서 온 사람들이 다수이다.
리처드와 릭은 시내 카페에 가서 칠면조 요리를 먹을 예정이라고 했다. 길 위에서 만나 친구가 된 사람끼리라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파멜라 할머니는 하루에 하나씩 이곳에서 만나는 하트 무늬를 찍은 사진을 가족들에게 보낸다고 했다. 가족과 떨어져 독립적인 삶을 자처한 선택이었지만 가족을 향한 그리움의 마음까지 적어진 것은 아니었다.
#2
아내는 숙소의 주방 상황을 감안해 비교적 조리가 간단하면서 모두가 좋아할 메뉴를 생각했다. 잡채, 김밥, 주먹밥과 김치...
한국 식재료를 사기 위해서는 과테말라 시티로 나가야 한다. 우리는 2개의 배낭과 두 개의 보조 가방을 가지고 치킨 버스를 탔다. 안티구아에서 과테말라 시티까지는 35km 남짓하지만 고산 산맥(Sierra Madre) 지형의 서남부 특성상 2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또한 고질적인 교통체증 때문에 거의 하루 거리이다.
우리는 연말의 수도 분위기를 느끼지 위해 1구역(Zona 1) 일대의 중앙광장(Plaza Mayor de la Constitución),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de Santiago de Guatemala), 국립문화궁전(Palacio Nacional de la Cultura), 중앙시장(Mercado Central) 등을 두루 들렸다.
캐럴이 흐르는 중앙광장에는 임시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져서 입장권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섰고 공원은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단장되었다. 6번가(Sexta Avenida) 보행자 거리(Paseo de la Sexta)는 온통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되고 사람들로 넘쳤다.
7구역(Zona 7)의 코리아타운 내 로데오 마켓에 들렸다. 막 컨테이너가 들어와 상품을 진열장에 채우고 있었다. 한국에서 직수입한 식재료들을 분비해간 4개의 가방에 꽉 채워샀다.
과테말라 시티에서 사서 오기에는 무거운 과일은 안티구아 전통식재료시장(Mercado Municipal de alimentos)에서 사기 위해 왔지만 늦어져서 상가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다행히 막 문을 닫고 있는 가게에서 수박을 비롯한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3
아내는 밤늦게까지 재료를 다듬어 두어서 추수감사절 아침에 할 일을 줄였다.
멕시코에서도 몇 번 한식으로 이웃들을 초대했던 터라 좀 더 익숙해져서 혼자서도 많은 양의 조리가 가능했고, 무엇보다 분량 조절이 가능해졌다.
숙박객들의 하루 루틴이 모두 다른 만큼 특정 시간을 정한 뷔페식보다 개별적으로 우리가 직접 서빙을 하는 것으로 했다.
한 접시에 잡채와 김밥, 김치, 주먹밥을 함께 담았다. 아내는 만들고 차리는 모든 것, 나는 나르는 일만 담당했다.
접시를 받을 때마다 놀라고 감격해했다. K-Food가 세계적으로 대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한국 식당에 가본 사람이 드물어 한국 음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김밥은 일식당에서 접했던 '김초밥(노리마키스시)로 생각했다. 우리의 김밥이 그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지만 김초밥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파멜라 할머니는 하트 무늬의 안스리움 살가렌세(Anthurium salgarense) 잎에 올려진 음식을 받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맛있을 수 밖에 없겠군요. 특히 오늘은 하트 무늬를 찾아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접시의 한식 사진으로 가족들에게 내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를롱은 다음 달에 합류할 부인과 세 아이들을 생각했고 잭과 나탈리 커플은 자기들만 받는 것은 아닌지 염려했다. 기타리스트인 데이비드는 체류 3개월 만에 처음 받아보는 무료 음식에 당황해했다. 숙소의 스텝은 자기가 받아도 되냐며 겸손해 했고 마크는 한나절 내내 접시를 나르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자유롭기 위해, 날선 경쟁을 피해, 혹은 꿈을 좇아 길 위에 오른 여행자들은 또한 그만큼의 외로움을 숨기고 있게 마련이다. 나를 낳은 땅의 밥이 아닌 것으로의 한 끼가 그 외로움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접시를 받는 표정으로도 알 수 있었다.
#추수감사절 #안티구아 #과테말라 #은퇴여행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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