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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인공인 당신에게

Ray & Monica's [en route]_270

by motif

비로소 남은 경험은 퇴진 아니면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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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아내가 나를 깨웠다. 수만 발의 폭약과 폭죽이 계속 터지고 황소불태우기(Quema de toritos)라는 폭죽과 로켓을 장착한 황소 나무틀을 짊어지고 춤을 추며 화약을 터뜨리는 '토리토(Torito)라는 과테말라 전통 의식을 근접 촬영하면서 귀가 먹먹해지고 화약 연기로 눈이 매운 탓에 늦게 잠이 든 상황이었다.


비몽사몽인 내게 전화기를 건네며 한국이라고 했다. 나는 아구아 화산이 폭발하는 긴급 상황이라도 일어났냐며 퉁명스럽게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아들이었다.


"아버지, 한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어요."


"무슨 소리야! 지금이 1980년이야?"


아들은 못 믿어와하는 나에게 TV 화면으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돌렸다.


"계엄군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고 있어요. 실시간이에요!"


"미친~"


"진짜로 미친 거였어요. 비상계엄은 전쟁 났다는 거랑 다름없는 비상상황에서 가능한 거라 지금 속보 떠서 진짜 북한에서 쳐들어온 줄 알았어요. 아마 대한민국 군대 갔다 온 남자면 저 속보 보고 진짜 전쟁 난 줄 알았을 거예요."


아들은 현역으로 있는 친구 몇 명은 지금 긴급하게 부대로 복귀 중이라며 엄마 아빠도 빨리 한국 뉴스에 접속해 상황을 따라잡으라고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2


우리는 부부는 아구아 화산, 푸에고 화산, 아카테낭고 화산으로 둘러싸인 이곳 안티구아가 주는 특별한 풍경과 폐허로 남은 역사 문화유적이 주는 상실과 공허의 도시 분위기에 반해 장기 체류를 생각하면서도 이 도시를 덮쳤던 화산 폭발과 지진의 파괴적인 자연재해가 우려스러웠다.


1773년 7월 29일과 7월 30일의 산타 마르타 지진(Santa Marta Earthquakes)은 웅장한 교회와 수도원으로 유명한, 번영하는 식민지 수도였던 이곳의 대부분을 파괴해버렸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당하고 과테말라 시티로 수도를 이전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숙소로부터 23km 정도 떨어진 산 미구엘 로스 로테스(Santo San Miguel Los Lotes) 마을은 지금도 10여 분 간격으로 분출을 하고 있는 푸에고 화산의 2018년 6월 3일 폭발에 따른 화산재와 용암에 의해 완전히 매몰되었다. 매몰거나 실종된 수백 명의 사람들은 유해발굴의 역부족으로 국가에서 작업을 중단하고 마을 전체를 묘지로 선포했다. 그 이후 이 마을은 'Campo Santo(거룩한 땅)'으로 불리는 거대한 공동묘지가 되었다.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우리 곁에 있는 자연재해 대신 생전에 다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한국으로부터 비상계엄 선포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3


한국에 대한 외신의 태도를 체크하기 위해 New York Times의 SNS 채널을 열었다. '남한 지도자, 계엄령 선포'라는 제목의 속보가 사진 없는 검은 바탕의 흰 글씨로 도드라졌다. 암흑 속의 비상구 표시판 같았다.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야당이 '반란'을 모의하고 '자유민주제를 전복하려 한다'고 비난했다."라는 리드(Lead)가 이어졌다. 더불어 정치적 교착 상태에 대한 이례적인 대응이라며 1980년대 후반 군사 독재가 종식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올라온 두 번째 소식에서는 국회로 진입하는 계엄군의 사진을 비롯한 몇 장의 사진을 올렸다.


기사의 댓글에는 "이틀 후 서울행 항공권을 예약했어요! 그래도 가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올라왔고 "대사관에 연락하여 물어보세요.", "그곳에 갇힐 수도 있으니 지금 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라는 조언들이 답글로 달렸다.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사람으로 보이는 이는 "우리와 함께 합시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손주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얘깃거리가 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와서 갇힌다면 제게 DM를 보내주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라는 대댓글을 달았다. 그 사이에 상황이 정리되는 또 다른 댓글이 올라왔다. "방금, 계엄이 무효화되었어요."


#4


-윤 대통령이 3일 밤 10시 24분에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계엄사령부는 후속 조처로 밤 11시부로 초헌법적 6개 항의 '포고령 제1호(정치활동 금지, 체제 전복 행위 금지, 언론 통제, 사회혼란 조장 행위 금지, 의료인 복귀 명령, 일상생활 보호 조치)'를 발표했고 무장 군인들이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국회 앞에 모여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저항했고, 여야 의원 190명은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지 150여 분 뒤인 4일 새벽 1시께 본 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은 오전 4시 27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조금 전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 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으며 바로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하여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의 내용이 일련의 한 밤중 한국 사태의 요약이다. 이로써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6시간의 폭풍으로 끝이 났다.


윤 대통령은 현직에 있는 동안 국민이 위임한 모든 대통령의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해 보는 경험을 원한 것 같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경험은 둘 중의 하나인 것 같다. 퇴진 아니면 탄핵! 마지막 경험을 좀 더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것은 위임한 권력을 자발적으로 반납하고 퇴진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에게 고마운 두 가지는 지난 밤, 탄핵의 사유를 확실히 한 것과 '극단적인 긴급 상황'이라는 갑작스러운 선물로 "푸에고 화산의 대규모 폭발이나 지진으로 안티구아가 'Campo Santo (거룩한 땅)'이라는 또 다른 무덤이 될 지도 모른다"는 우리 부부에게 잠재되었던 불안을 경감시켜준 것이다.


1960년 4.19 혁명,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2016-2017년 촛불집회 등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이는 언제나 그 시대의 민중이었다.


'황소불태우기'인 과테말라의 토리토는 선과 악의 대결에서 악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를 불태우는 것은 선의 승리를 의미한다.


"지난 밤, 노심초사 뜬눈으로 밤을 새웠을 대한민국의 주인공인 당신에게 과테말라 'Campo Santo' 곁에서 존경을 보냅니다. _2024년 12월 3일 안티구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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