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스피치
"여행, 왜 해?"
INTO THE WEST_42 | 3분 스피치
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아침에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은 아내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305km 직진 후 좌회전입니다."
올해 정년 퇴직을 앞둔 한 대원은 자동차 운전석 옆에 "여행, 왜 해?"라는 화두를 달고 달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 여정이 끝나는 올해 말 35년간 몸담아 왔던 회사를 떠납니다. 떠난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그는 매일 과거와 미래의 경계를 달리며 그 경계에서 양쪽을 조망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정에 오른 모두는 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어느 지점에서 어디로 방향을 바꾸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로 꽉 차 있습니다.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타인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가 궁금하다면 딱히 여행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것을 이해가기 위해서는 그들과 직면해야 합니다. 나에게 추상은 내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입니다.
우리는 길을 떠난 지 23일 째 되는 날 밤, 길 위에서 다시 둘러 앉았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향해 질문했습니다.
"여행, 왜 해?"
"어느 시인은 말했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의 어마어마한 일을... 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생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게 되었다."
"자유여행을 좋아했다. 모터 사이클로 세계를 일주하려고 오랫동안 계획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것이 이번 자동차여행으로 바뀌었다."
"나는 충청남도 홍성군 향기촌에 살고 있다. 그동안 대학에서 녹을 먹고 있었는데 이 여정에 맞추어 가르치는 일을 정리했다. 이번 도전이 내게 걸림돌이 될 것인지, 디딤돌이 될 것인지 궁금하다.(이 사람은 내 친구이다. 나는 그동안 역삼동에 살다가 2주 전에 주민등록을 향기촌으로 옮겼다. 이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이타적인 사람이다. 나이스한 맛은 덜하지만 끈기 있고 발효된 맛이 있다. 향기 촌내에는 기러기 세 마리, 사슴 스물네 마리, 진돗개 다섯 마리, 닭 육십 마리가 있다. 이 분이 추구하는 일들이 향기촌 안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_함께 마을을 일구는 동료)"
"시 한 편을 품고 길 위에 올랐다. 그것을 낭송하겠다.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_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이기철"
"나의 지금 모습은 평소의 나와 너무 다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지금 시베리아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데도 그 사실을 의심한다. 사실은 나도 그렇다. '내가 어떻게 이곳에 와 있지?'라는 물음을 하루에도 몇 번씩 묻게 된다. 이후의 내 삶이 궁금하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고속 승진해서 큰 조직의 임원도 하고 CEO도 했다. 더불어 향기 나는 세상을 위한 다양한 일들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 모든 결과가 내가 잘나서인지 알았다. 이 여정에 함께하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그동안 내가 성취했던 일들은 모두가 함께해서 였고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일생을 통해 시베리아를 횡단할 수 있는 사람은 동시대의 세계인 중에 과연 몇 명이나 될 수 있을까? 0.1%, 아니 0.01%...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수점 아래 '0'이 얼마를 더 붙여야할 지 모르겠다. 나는 이 여정 이후에 비로소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목표는 남북 아메리카이다."
"여러분을 만나서 내가 웃고 또 웃습니다. 더 많이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 사람의 교류를 통해서 절로 체득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여정을 통해 마음에서 끓어오르는 인문학 학습을 하고 있다. 아마 이 여정이 끝나는 날, 나는 어떤 사람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을 얻게 되는 것이다."
"코끼리 전체를 그려본 사람은 코끼리 다리를 붙들고 기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번 여행은 내 손바닥보다 큰 발톱을 보고 그것을 접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발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견해를 갖는 것이다."
"선을 그어야지 가지를 그릴 수 있다고 하더라. 나는 시베리아 광야를 달려보고 싶었다. 이제 가지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70평생의 제 꿈이 오늘 이루어졌다. 지평선 위에 떠 있는 구름, 그리고 광야. 이걸 보고 죽고 싶었다. 이제 죽어도 된다."
"나는 33년간 지도에다 선을 그어놓고 이게 길이다, 여기며 살았다. 비로소 그 선이 길이 되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참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좋은 선택을 할 수도, 나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번 선택은 60평생의 베스트 선택에서 베스트이다."
"나는 몽골의 게르에서 나오자 나를 덮친 아침 햇살이 참 좋았다. 그 다음에는 나를 스치는 시베리아의 바람이 좋았다. 그 다음으로 좋았던 것이 여러분의 따뜻한 미소이다."
"존재하는 나, 존재하지 않는 나를 돌이켜본다. 나의 일부는 타자로 존재하는 것이다. 헌신과 이타심을 근간으로 하는 리더십이 가장 힘이 있다. 항상 결정적일 때 나서 주는 여러분이 고맙다."
"제게 이 여정은 좀 혹독한 것 같다. 하루에 서너시간 밖에 못 자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것이 내게 인생 강의이다. 그 얘기들을 통해 나도 많이 내려놔야겠다, 생각했다. 누군가가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천천히, 천천히 가자! 네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이 여정을 위해 제 평생에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다. 그래서 강한 집착이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여러 책을 보면서 상상했던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놓치면서 가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좀 더 욕심을 내보지만 계속 이동해야 되니까 육체적으로 힘들어 정신적 여유를 갖기도 힘들다. 하지만 마음을 바꿨다. 이 여정들을 연속적으로절에서 마당을 쓸고 부엌에서 불을 때는 일로... 이제 134일간의 여정 중에 겨우 23일이 지났다. 어떻게든 내가 가지고 온 화두를 잡을 것이다."
"혹독한 여정 속에서 마음속에서는 서로의 생각들이 부딪혀 보이지 않는 불꽃을 만드는 것이 느껴진다. 무시로 칼을 뺐다 집어넣었다, 하는 모습도 보인다. 어떤 분을 실제로 칼을 뺏는데 자신의 칼이 부러지는 경우도 있고 어떤 분은 빼보니 실제 칼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여행의 막바지에 가면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성정들이 더 둥글게 다듬어질 것을 기대한다."
"관심을 가지면 관계가 되고 관심이 없으면 경계하게 된다."
"여행의 목적이 일치할 수는 없다. 한 가지 사실은 쓸모없는 여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남들보다 약하다. 완치 불가능한 병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람이 느껴진다. 이 세상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너는 살아남아야 된다, 그러니 좀 더 강해졌으면 좋겠다는 메시지가 그냥 느껴진다. 때로 내게 무섭게 대하는 경우도(때때로 내가 무섭게 느낄 때가 있다) 응원으로 느껴진다. 정말 그것에 부응하고 싶다. 그것이 안 되는 것이 내게 가장 큰 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보아 주는 것이 많이 감사하다. 내 또래들이 물질적인 것, 건강 등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을 잃어가는 것을 힘들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을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이번 여행의 미션이다."
"저는 쉬는 게 뭔지 모른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신랑이 항상 '좀 쉬어! 앉아있어. 좀 자~'라는 말을 하곤 한다. 얼마 전에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잠깐 쉬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어서 손에 쥔 펜을 놓았다. 그 순간 정면에 있는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들어왔고 '바람이 참 시원하다'는 느낌이었다. '아 쉬어야지 이런 것도 느낄 수 있구나' 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쉬는 것에 관해 확실하게 학습하고 싶다."
"그동안 우리는 텅 빈 지평선 너머를 향해 달려만 왔다. 하지만 그 텅 빈 시베리아가 나를 충만하게 해주었다. 새벽에 일어나 두어 시간 동네를 산책하는 것이 또한 내 마음을 채워주었다."
"좋은 영화, 나쁜 영화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라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내 마음을 항상 움직이게 해주어서 고맙다."
"목적지에 늦게 도착해 식당 문이 모두 닫혔던 시간, 아무 말 없이 피곤을 감추고 기꺼이 솔선해서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던 분들,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깨어 설거지를 하고 있던 분, 사고를 수습하고 새벽 3시에 돌아온 대원들을 위해 기꺼이 쌀죽을 끓여놓고 기다리던 분들... 모두의 그 솔선을 기억한다."
이 여정을 진행하고 있는 단장이 말했습니다.
"사실 내 닉네임이 '스마일'이었다. 그런데 이 여정이 시작된 이후에 가장 웃지 못했던 것 같다. 통관, 사고, 팬데믹, 전쟁, 물가... 또 다른 어떤 변수들이 우리를 가로막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차 한 대가 없이 가게 되었다. 이 상황을 렌터카로 가능할지를 본부에서는 고민하고 있다. 좀 우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도 이 장대한 여정을 처음 해보는 거다. 내가 행복하려고 여기 왔는데 나는 왜 이러지 자문하게 된다. 그 답은 내가 찾아 나갈 것이다."
단언컨대 물리적인 장애들은 어떻게든 극복될 것입니다. 하지만 길 위에 오르면서 각자가 품고 온 각기 다른 이유와 의문들 "여행, 왜 해?"는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그것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방식의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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