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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위하여

Ray & Monica's [en route]_319

by motif


파이어아벤트(Feierab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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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안티구아는 사랑의 도시이다. 그 사랑이 식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들의 도시이다.


숙소 주인 마틸다는 일주일에 한 번, 전날 사다 둔 꽃 한 다발을 들고 자신만의 기도처로 간다. 그 기도 날이 목요일이다. 그녀의 기도 날은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하루의 낮 전체를 신에게 받치는 날이다. 때로는 그녀의 이웃들과 함께 모여 집에서도 기도를 한다. 이날도 오전 전체를 기도로 할애한다. 모든 기도는 각기 다른 언어와 목소리로 행하는 사랑의 간구이다.


안티구아 시에서는 시민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쏟게 하는 일에 앞장선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는 중앙공원에 수만 개의 촛불을 밝혀서 사랑을 잊었던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할 것을 상기시킨다. 사람들은 마치 은하수처럼 촛불이 밝혀진 곳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키스를 한다.


3월 21일은 '노란 꽃을 선물하는 날(Dia de las Flores Amarillas)'이다. 춘분날의 다음 날인 이날은 밤보다 낮이 긴 첫날이다. 낮이 길어지면서 다시 자연이 소생하는 때이다. 이곳 사람들은 사랑의 꽃이 만개하기를 기대한다. 청춘들에게는 남자들이 주로 여성에게 노란 꽃을 선물한다. 노란 꽃이 선택된 것은 2004년에 방영된 아르헨티나의 텔레노벨라(Telenovela 일일 연속극), '플로리시엔타(Floricienta)'때문이다.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로 주인공 플로렌시아(Florencia)는 어렸을 때부터 왕자가 언젠가 그녀에게 노란 꽃을 줄 것이라는 꿈을 꾼다. 이 드라마는 그 꿈을 실현시키는 이야기이다.


드라마의 원작지인 남반부 아르헨티나의 춘분은 9월 20일이지만 북반부의 과테말라는 한국과 같은 3월 20일이 된다.


노란색은 색채 심리학에서 빛, 행복, 에너지, 재화와 연관된 것으로 본다. 마야인들에게 흰색과 노란색은 인간의 기원과 직결되는 색이다. 마야 문명의 창조 신화가 기록된 '포폴 부(Popol Vuh)'에 따르면 신들이 옥수수를 사용해서 인간을 만들었으며 흰 옥수수로는 뼈를, 노란 옥수수로는 근육을 만들었다고 한다.


안티구아의 11월은 '꽃축제(Festival de las Flores)'로 출렁인다. 온통 꽃으로 뒤덮인 도시에서 모든 사람이 할 일은 아름다움을 뽐내고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다.


#2


이곳 사람들의 사랑은 가슴속에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숙소의 크리스티나는 17살에 결혼해서 세 아이를 둔 화목한 부부다. 29살, 30살 부부의 첫째 아이는 벌써 13살이다. 그들은 4년 전에 사랑의 문신으로 사랑의 징표를 남겼다. 부인은 하트 속 흰색 퍼즐 구멍을, 남편은 그에 맞는 퍼즐을 함께 팔에 새겼다.


독일인 알렉스와 과테말라인 루이스 부부는 일이 끝난 초저녁, 맥주 2캔을 가지고 옥상으로 간다. 그리고 푸에고(Fuego) 화산을 향해 앉는다. 어떤 날은 얘기가 이어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저 고요히 화산만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들은 그 시간을 가장 사랑한다고 했다. 알렉스가 말했다.


"독일에서는 이 시간을 '파이어아벤트(Feierabend)라고해요. '퇴근'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파이어아벤트'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낮에 근로의 시간이 있어야 해요."


Feier(축제)와 Abend (저녁)을 합친 말이라고 하니 '일과 후의 여가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알렉스와 루이스가 즐기는 '파이어아벤트'는 함께 화산을 바라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여유'이다.


이 전형적인 방식에 딱 맞는 단어가 있다. '파이어아벤트비어(Feierabendbier)'이다. 'Feierabend(퇴근)'와 'bier(맥주)'가 결합된 말이니 말 그대로 '퇴근 후 맥주'가 되겠다. 영어의 맥주 마시는 시간을 일컫는 'beer o'clock'과 같은 의미이다. 문화적으로는 모두 노동 후 저녁을 즐기는 '일과 삶의 균형'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부부는 일생을 통틀어 사랑의 표현이 예삿날로 분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말로 표현하는 것도, 선물로 표현하는 것도, 몸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곳에서 아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파이어아벤트'가 되었다.


그래도 사랑의 표현을 권하는 도시, 안티구아에서의 몇 개월을 통해 아이스크림을 사서 함께 먹는 시간 정도는 가능하게 되었다. '노란 꽃 선물의 날'에는 아내가 시장을 다녀오는 길에 꽃 한 다발을 사 왔다. 저녁에 외식도 했다. 최근에는 아내가 준비한 식사를 옥상에서 함께 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제 저녁, 아내는 내 팔을 잡고 옥상으로 올라가 앉히고 단호하게 말했다.


"누군가 먼저 죽고 후회하지 맙시다. 오늘부터는 매일 저녁 30분씩 '파이어아벤트'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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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아벤트 #Feierabend #안티구아 #과테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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