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23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그 지역의 특성과 정체성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오래된 전통식당을 찾곤 한다. 언어와 음식 속에는 오래된 그들의 사고체계와 자연과 인문 환경을 유추할 수 있는 실마리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시간이 함축된 식당은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도시의 외곽이나 시골에 가야 만날 수 있다. 도심의 식당이나 카페는 대부분 문화적 글로벌화의 진행으로 세계 어디를 가나 레시피나 인테리어가 비슷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18세기의 도시인 이 안티구아에서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매장을 만나는 것은 어렵게 찾아간 아프리카 남부의 작은 왕국, 에스와티니(옛 스와질랜드)의 오지에서 코카콜라 밴딩 머신을 만나는 것과 동일한 좌절감을 느끼곤 한다.
그래도 안티구아에서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수소문한 결과 직조, 전통과자, 도기 공예 등 몇 개 분야 장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먼저 대를 이어 도기 공예를 하고 있는 에드가 레오넬 카브레라 타빈(Edgar Leonel Cabrera Tabin) 장인을 만났다.
과테말라 시티의 변두리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마늘을 엮어서 걸어둔 벽에 눈길이 갔다. 60여 년 전 내 고향에서 수확한 마늘을 걸어두었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과테말라에서 식당이나 상점, 가정 등에 마늘, 고추, 과일 등의 모형이나 실물을 놓아두는 관습은 우리나라에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왼쪽으로 꼰 새끼줄에 숯과 붉은 고추 혹은 청솔가지를 끼워 금줄을 쳤던 전통처럼 벽사(辟邪)의 기능이 있었음을 알았다. 마늘은 악령이나 나쁜 기운을 쫓고 칠리(고추) 또한 부정한 기운을 막는 역할을 믿었던 것이다.
공방 이름도 없는 에드가 레오넬 어르신 공방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마늘이었다. 사실은 새끼줄 끝에 달린 것은 마늘이 아니라 흙으로 만들어 구운 토기 모형이었다. 일전 식당의 마늘도 실물이 아니라 토기 공예품이라는 것을 공방에서 알았다. 공방의 정리되지 않은 책상 위에 각종 과일 모형을 비롯해 동물 모형까지 토기 모형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공방 모서리를 가로질러 쳐진 줄에는 최근에 작업해서 마르기를 기다리는 과일과 새들이 걸려있었다.
"이렇게 말린 다음 몰아서 큰 석탄 화로에서 구우면 완성됩니다."
그의 공방에는 수많은 표창장이 걸려있었다. 대부분은 그의 아버지, 돈 마르셀리노(Don Marcelino) 것이었고 일부는 그의 것이었다. 표창장들은 안티구아 시에서 혹은 여러 단체에서 이 부자의 작업에 의미를 부여하고 전통을 지켜준 것에 대한 찬사였다. 아버지는 이 분야에서 아주 유명한 분이었다. 사람들이 아버지의 작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섰었다. 아버지는 60년 넘게 이 공방일만하시다가 아들에게 그의 자부심이었던 이 일을 물려주고 돌아가셨다.
"너는 다른 일로 한눈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이 기술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거라."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 같은 당부였다. 그는 아버지의 당부를 충실히 따랐고 이 일을 하는 것에 매진하느라 장가갈 기회도 놓쳤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 공방을 지킨 것이 40년이니 100여 년의 시간이 응축된 공방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업물로 가득해야 할 선반에는 오래된 라디오와 성모의 액자가 놓였고 아버지의 사진과 그가 아버지로부터 이 공예 작업을 배우기 시작할 즘의 사진 한 장이 걸려있었다. 그의 나이 63세. 그의 아버지가 이 일을 했던 햇수만큼은 이 일을 이어가고 싶지만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 선반의 맨 아래 바닥에는 각종 과일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몰드(모형을 찍어내는 거푸집)가 쌓여있었다. 작업과정을 보여주겠다며 그중의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망고에요. 망고를 만들어볼게요."
그는 모형에 앉은 먼지를 입김으로 불어냈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것이었다. 사용되지 않기는 다른 몰드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닐에 쌓여서 마르는 것을 막은 점토를 조금 떼어 작업대 위에 놓고 긴 병으로 밀어서 폈다. 손칼국수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반죽하여 밀방망이로 밀어 펴는 방식과 유사했다. 넓적한 흙을 몰드에 넣고 손으로 눌러 망고 모양의 반을 만들었다. 다시 다른 반쪽의 몰드에 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망고의 반쪽을 만들고 꼭지 부분에 약간의 흙을 뭉쳐 넣고 흙을 발라 철사를 고정시켰다. 그리고 먼저 만든 반쪽을 흙으로 붙여 온전한 망고 모양을 완성했다. 속을 비우는 것은 디자인 변화가 수월하고 재료의 소모와 무게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건조와 소성이 쉽고 균열이나 변형의 위험이 줄어든다.
"이것을 완전히 말린 다음 석탄 화로에 올려 굽는 거예요."
이런 작업을 반복하는 것으로 다양한 과일이나 야채, 동물이나 곤충 토기 모형들을 만들어냈다. 비롯 몰드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작업자가 손으로 다양한 변형을 주어 같은 것이 없는 핸드메이드 제품이 된다. 후작업을 통해 섬세한 디테일을 구사하기도 한다. 장인의 손길로 감성이 스미고 모양이 모두 다른 맞춤형 제작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제작 개수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점이 이제는 시장에서 밀려나는 단점이 되었다. 핸드메이드만이 가지고 있는 장인의 손길과 시간이 아니라 더 빠르고 미려한 자동화된 기계제품에 떼밀려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기념품 가게에 진열된 과테말라의 전통 공예품이 실제로는 중국이나 엘살바도르에서 더 값싼 원가로 대량 생산된 경우가 많다. 소비자에게 중요한 것은 과테말라에서 손으로 만든 것이냐보다 가격이 얼마인가이다. 그의 몰드가 먼지가 가득 쌓인 이유이다.
수공예품의 제작자가 가진 자부심과 정성과 개성을 마케팅할 능력이 없는 나이 많은 장인으로서는 값싸게 양산된 공장 제품에 대적할 도리가 없다.
-이 도시에 이 작업을 하고 있는 다른 공방이 있나요?
"제 삼촌과 또 다른 한 집이 있었죠. 삼촌도 돌아가셨고 자식들이 일을 물려받지 않았어요. 다른 한 집은 이미 공방문을 닫았습니다. 지금은 이곳이 유일한 곳이에요.
-당신의 뒤를 이어 "내가 죽더라도 이 기술은 죽지 않도록 해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이어갈 사람은 있나요?
"조카가 이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도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어요. 이 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면 결국 이 공예 작업은 죽고 말테죠."
활기 잃은 공방은 해질녘 햇살처럼 여리고 처연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미래의 삶을 담보해 줄 기술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전통공예문화의 퇴장은 가혹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럼에도 모든 퇴장이 그러하듯 애달픈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 일을 하시면서 제일 좋았던 점은요?
"제 삶이 매우 단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에만 전념했기 때문이죠."
잠시 공방을 떠났던 아내가 꽃다발 하나를 사왔다. 에드가 레오넬 장인께 전했다.
"이 꽃다발은 당신이 평생을 바친 이 일과 당신이 고민해온 장인의 얼에 대한 찬사입니다. 당신이 이 일에 헌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꽃다발은 받는 그의 표정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었다. 손으로 짓는 느린 노동의 아름다움에 대한 수요가 다시 늘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