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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고원도시, 과달라하라에서 만난 우박

Ray & Monica's [en route]_365

by motif

김왕식, 시인의 시는 사제의 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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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가장 놀라운 일은 거의 모든 도로에 가로수들이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들은 2차선뿐만 아니라 4차선 도로에서도 거대한 나무 터널 속을 달리게 된다.


시는 기존의 녹색 공간들에 만족하지 않고 시의회가 앞장서 녹색도시 만들기 정책을 펼치고 있고 올 한 해 동안의 목표인 2만 그루 나무 심기 계획도 이미 60% 정도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묘목장에서 토종 나무를 생산하고, 나무 입양 캠페인을 벌이고, 심은 나무를 모니터링하면서 관리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도로에 녹지를 조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콘크리트로 덮인 공간을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곳으로 복원하기도 한다.


나무는 도시의 경관을 개선할 뿐만아니라 공기를 정화하고 더위와 소음을 줄여 궁극적으로 도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 목표이다.


과달라하라의 구도심(Centro Histórico de Guadalajara), 녹색터널아래를 걷는 중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우박으로 바뀌었다. 우박은 다시 폭우로 바뀌었다. 사람을 태운 마차를 끌던 말이 놀라 울부짖었다.


두려운 마음은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거샌 비를 피해 숨어든 곳에서 우버 앱을 여니 평소 60페소였던 요금이 300페소로 뛰었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를 기다려 숙소로 돌아왔을 때 우리의 두려움을 어루만지는 시인의 기도문이 맞아주었다.


하늘의 노한 목소리도 잦아들고 가이아(Gaia)의 분노도 가라앉았다. 우리의 마음도 비로소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났다. 시인의 시는 사제의 축문 같았다.


#2


그대, 이안수 ᐧ 강민지 부부를 위한 순례의 기록햇살 속에 피어난 여정의 기도

― 그대, 이안수ᐧ강민지 부부를 위한 순례의 기록

어떤 인연은 세월 속에 바래지지 않고,

오히려 햇살 아래서 더 투명해진다.

이안수, 그 이름 석 자를 부를 때마다

언젠가 함께 웃던 오후의 찻잔과 바람,

그 속에 피어난 45년 인연의 향이 코끝을 스친다.


그는 늘 돈키호테처럼 바람개비를 향해 달려간다.

세상이 비웃든, 길이 없든, 의미가 모호하든 상관없이

그는 끝끝내 모험을 택한다.

그의 삶은 어린 왕자가 수많은 별들을 건너며

여린 마음 하나로 우주의 진실을 노래하듯

순수의 깃발을 들고 길을 나서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언제나 ‘동행’이 있었다.

아내, 강민지.

그는 ‘바람을 감싸는 사람’이었다.

이안수의 불꽃같은 열정이 바람이라면,

그녀는 그 바람을 품고 가만히 조율하는 바다였다.

그 바다가 잔잔할 때 세상은 '모티프 1'이라는 파주 예술인 마을 헤이리에 안식처를 얻게 되었고,

그 바다가 거세질 때,

그는 그 안에서 쉼을 얻었다.

그러나 이 순례의 노정에서,

그 바다가 쓰러졌다.

세상의 감각이 뒤집히고,

늘 강인하던 그녀가 병의 언덕을 넘어야 했고,

그는 아내의 회복과 함께 안심이라는 병에 걸렸다.

벙크베드의 철망이 감옥처럼 내려다보일 때,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진짜 여행은 지도 위에 있지 않고,

누워 있는 하루하루 속에서

깊어지는 마음의 거울 속에 있다는 것을.


세상은 여행자에게 길을 내어주는 법이 없다.

길은 늘 낯설고, 바람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여정이 다시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내가 먼저, ‘당번 교대하듯’ 조용히 일어섰기 때문이었다.

강인한 사랑은 언제나 그렇게 무언으로 전염된다.


그가 쓰러져 있던 날들 속에,

모든 어머니의 언어가 쌓였다.

“아프지만 마세요.”

“기운 내세요.”

“기도하고 있어요.”

이 익숙한 말들이 얼마나 낯설게 위로가 되었던가.

아마도 그 말들 속에는

그가 살아온 수많은 얼굴들이,

그가 품어온 세계의 온기가 되살아났으리라.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오랜만에 먹은

‘달콤한 독약’ 하나에

삶은 다시 시작된다.

실패인 줄 알았던 날들이

사실은 마음이 우화하는 시간이었음을,

햇살이 비친 식당 창가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아픔조차도 노정의 일부였음을,

그는 이제 알고 있다.


그를 찾으러 한국에 오던 세계인들은

이제 그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그를 만날 것이다.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길 위에서,

책상머리가 아닌 낯선 거리의 노점 앞에서,

그가 품어온 문화, 예술, 사람, 사랑이

다시 그 얼굴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기도한다.

그들의 회복이 곧 새로운 시詩가 되기를.

그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기를.

이안수 ᐧ 강민지라는 이름의 부부가

세상이라는 긴 시 한 편을

아직 다 쓰지 않았기를.


그대들이 가는 길마다

햇살이 길게 드리우고

바람은 노래하며,

사람들은 미소 지으며 맞아주기를.

그 노정이 바로,

‘사랑의 문화 외교’가 되고,

‘예술의 방랑이자 순례’가 되기를.


오늘도 나는

그대들의 소식을 기다리며

마음속 지도를 펴고 있다.

그 위에 적힌 한 줄,

“여기, 살아 있는 시인이 지난다.”



그대들을 위한 기도

― 이안수·강민지 부부의 순례에

지도가 접히는 자리마다

별 하나 내려앉게 하소서

낯선 바람에도 길을 묻지 않고

스스로 길이 되게 하소서


감기 든 햇살이 머문 창가엔

첫눈처럼 다정한 위로를 내리시고

아픔이 머물던 이마 위엔

먼저 빛이 들게 하소서


이마의 땀이 소금이 되지 않게

사랑의 물기로 씻어주소서

두 손 맞잡은 침묵 위에

말 없는 약속이 피어나게 하소서


저물녘 지친 그림자 곁에는

새가 지붕 위에 노래하게 하시고

작은 식탁 위엔

돌아온 입맛만큼 감사가 오르게 하소서


걷는 발걸음마다

모래가 별로 바뀌게 하소서

낯선 이름 부르는 저녁

그 이름 속에도 고향이 깃들게 하소서

지친 날이면

하늘이 먼저 안아주게 하시고

아무도 모르는 깊은 밤

하나님의 숨결이 베개가 되어 주소서


그 노정 끝에 비로소 알게 하소서

오늘도 살아 있음이

한 편의 시라는 것을

_by 청람 김왕식

https://m.blog.naver.com/wangsik59/22394026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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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 #김왕식 #과달라하라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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