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64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외롭고 불우한 처지였던 사람들, 여전히 그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열에 아홉은 '하나님이 보우하사'로 답한다. 나는 그들이 믿는 신으로 인해 혹독한 현실을 버틸 수 있었던 역할에 대해 믿는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효용이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갈음하기에는 늘 부족함이 남았다. 여전히 거리에는 굶는 사람이 넘쳐나고 전장에서 죽어나가는 현실은 여전하다. 하지만 전쟁의 유발자는 여전히 권력 속에서 안전하다. 신은 왜 이토록 선택적인가? 그것은 신에 대한 해석의 오류라고 믿는다. 신이 있다면 그는 개입하는 대신 지켜볼 뿐이다.
한 장애인을 인터뷰했다. 호텔의 아침식사시간에 피아니스트에게 연주를 요청하고 휠체어 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더해 하모니를 만들었다.
그는 장애를 넘어 '도움을 받기보다 독려하는 역할'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신'을 말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지성의 눈으로 보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주류와 비주류, 다수와 소수, 장애와 비장애... 이것을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
그가 있는 도시를 떠나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3시간 동안의 버스 속에서 다시 그와 메시지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현재의 당신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체적 부자유와 그리된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1951년 6월 7일에 태어났으니 74년을 살았다. 당신 부부를 만난 도시, 레온León으로부터 200km쯤 남쪽에 있는 과나후아토 주의 아캄바로Acámbaro라는 시에서 나서 자랐다. Alfonso Aramburo Espino와 Magdalena Espino Arreola 부부의 5남매 중 둘째 아들이었다. 나 외에는 모두 장애가 없다. 내 장애는 4살 때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으로 비롯되었다. 손과 발로 기어다니다가 손가락을 입에 넣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그 바이러스가 척수신경을 공격해서 왼발 근육의 성장에 지장을 주었다. 그래서 왼발은 가늘고, 무릎의 인대가 약해져서 걷지 못하게 되었다. 바이러스가 오른발에도 약간의 손상을 주었지만, 다른 환자들처럼 뇌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1954년은 멕시코에서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유행했을 때였다. 멕시코시티, 과나후아토, 할리스코, 미초아칸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어린 나이에 장애에 적응해야 하는 고통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고통과 기쁨에 관한 얘기도 듣고 싶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몸이 '젤리'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고열로 침대에 누운 채 일어설 수 없었던 병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네 살 때 병원에 입원해 처음으로 왼쪽 무릎 수술을 받았다. 이어진 난관은 오른발로만 걷는 것이었다. 왼손을 왼쪽 무릎에 올려 지탱하면서 '원숭이'처럼 뛰었고, 아이들은 나를 '원숭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나를 때리고 내 놀이 구슬을 뺏어갔지만 나를 방어할 수 없었다.
한 가지 장애는 또 다른 장애를 낳았다. 이런 걸음걸이 때문에 척추가 휘는 척추측만증이 생겼고 왼쪽 엉덩이 근육, 무릎 뒤 근육, 왼쪽 아킬레스건이 짧아졌다. 5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두 바퀴가 달린 스케이트보드를 손으로 지탱하면서 탔다. 왼발을 올리고 오른발로 밀며 어깨에 맨 가방엔 책과 공책을 넣어 다녔다. 7살 때 초등학교 3학년을 만점(10점)으로 수료한 것이 인생의 첫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수상식 때 원숭이처럼 걸어가야 한다는 부끄러움과 수줍음 때문에 상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기쁨도 완전하지는 않았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 어떻게 극복했나? 그 경험은 지금의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
"내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도전은 '걷는 것'이이다. 15살 때 왼발 근육을 늘리기 위한 3번의 수술과, 오른발의 편평족궁(평발)을 교정하는 수술을 받았고, 의사는 근육 위축을 막기 위해 알루미늄 막대로 된 보조 기구 사용을 추천했다. 하지만 1년 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무릎 뒤가 까졌기 때문이다. 24년간 아무런 보조 기구 없이 지냈는데, 그것이 인생의 두 번째 '큰 기쁨'이었다. 돌이켜보면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생화학공학(Biochemical Engineering)과 법학을 함께 전공해서 헌법 전문 변호사가 되었으며, 노동조합과 정당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멕시코의 대표적인 대학교인 국립 공과대학교(Instituto Politécnico Nacional (IPN))의 수학 교수 및 학술 감독관(Supervisor Académico)으로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원하는 여성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일은 이루지 못했다. 지금 74세가 되어서야 마침내 Mary라는 매우 아름답고, 성실하고, 가정적이며 다정한 여성과 결혼했다. 그녀는 내 인생의 유일한 아내이다. 그것이 내 세 번째 '큰 기쁨'이다. 휠체어의 사용으로 체중이 더 늘고, 나이가 들면서 운동과 재활치료를 계속하지 못해 근육이 약해졌다. 우리는 이제는 자동차를 구입해 직접 운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 휠체어로 직접 운전석까지 올라갈 수 있는 차량을 찾고 있다.
-현대는 예전보다 훨씬 잘 살게 되었음에도 더 결핍을 느끼는 것 같다?
"경제 시스템은 구매와 판매로 유지되며, 기업의 마케팅은 빈번한 할인 행사로 소비를 부추긴다. 그래서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사게 되고, 유행을 따라 사 놓고 곧 잊어버린다. 모든 상품과 편리한 서비스에 집착하다 보니 가진 현금보다 더 많이 지출을 하게 되고 할부와 신용카드 구매로 이어진다. 이런 악순환이 현대판 돈의 노예를 만든다."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끊기는 정말 어렵다. 검소함만이 답이다. 기본적인 생활(주거, 음식, 건강 등)을 영위할 만큼만으로 살아가는 절제가 필요하다. 욕심은 스스로 노예의 삶을 자초하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절제가 필요하다."
-남은 인생의 꿈은 무엇인가?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겠다?
"내 꿈은 단순하다. 휠체어 대신 다시 목발을 짚고 걷고 싶다. 가볍고 기능 좋은 보조 기구를 사용하고, 체중을 줄여서 꼭 휠체어에서 탈출하고 싶다. 더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습관을 가지려고 아내와 함께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빗자루 막대를 등에 얹고 팔로 지탱해서 100번씩 4세트 허리 돌리기를 하고, 올바른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남은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장애인은 사회, 가족, 여성 모두로부터 거부당한다. 불완전하다고, 쓸모없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래서 내 인생의 사명은 받기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하고 능력 있는 남녀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장애인이야말로 정치적 존재로서 더 많은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더 이타적이고, 더 나누려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를 선택하고 받아준 Mary에게 신뢰와 존중을 주고 싶고, 그녀가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장애인 또한 능력 있는 사람만큼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디자인을 개선하고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고 싶다. 장애인은 더 높은 자기개발 욕구를 가지고 있다. 택시 승차거부와 취업 기회 박탈, 혹은 무거운 짐으로 취급되는 차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 공감을 얻고 싶다. 더불어 장애인이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인내심과 조직력 같은 덕목을 개발한 것에는 인정하고 격려를 아끼지 말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추구하는 최후의 바람은 내 아내 Mary와의 사랑을 더욱 굳건하게 다지는 것이다. 그 여자는 내가 이제껏 만난 가장 아름답고,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다."
나는 알폰소 교수가 일생을 통틀어 '큰 기쁨'으로 여기는 세 가지 앞에서 속죄의 마음이 되었다. 초등학교에서 100점을 받아보는 것, 보조 기구 없이 두발로 걸어보는 것, 그리고 결혼해 보는 것. 이 평범한 것이 그에게는 아주 특별한 '큰 기쁨'이었다. 나는 그의 네 번째 큰 기쁨을 기대하며 메시지를 보냈다.
"존경하는 Alfonso 교수님께,
Aguascalientes의 Catedral Basílica de Ntra. Sra. de la Asunción의 성당을 바라보며 Mary와의 현재 모든 기쁨이 영속하기를 기도합니다. 더불어 당신의 모든 정당하고 의당 그러해야 할 장애를 가진 분들에 대한 당신의 소망이 보편적인 상식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당신이 겪은 지난날들에 대해 절로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겪은 부당함과 여러 장애물을 당신의 창의적인 방법과 지극한 노력으로 하나하나 극복해온 그 과정들에 대해 존경의 한 방법입니다.
당신은 당신보다 좋은 신체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의지박약과 게으름으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 더 많이 성취하고 그것을 사회에 환원하지 못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타적이 못한 마음들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현재의 당신에 대해 당신의 성취와 더불어 당신의 지난 74년간의 삶이 여전히 늘어나는 장애를 가지고 그 길을 가야 할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이 되어주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평범한 개인 혹은 평범한 사람보다 더 많은 제약 속에서도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희망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네 번째 '큰 기쁨'의 도래를 기도하며,
_한국에서 온 평범한 시민으로부터
●장애가 장애되지 않는 삶, 알폰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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