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62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77세 피아니스트, Salvador Ontiveros 씨는 음악은 그를 살아있게 하는 이유라고 했다.
"음악을 들으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됩니다. 즐거움을 선사하는 천연 약물과 같죠. 그래서 누구나 음악을 듣는 순간 바로 좋아하게 되는 거죠. 음악가와 눈을 마주쳐도 엔도르핀 분비가 증가합니다.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면 더욱 흥이 납니다."
음악은 엔도르핀을 분비하게 하는 마약과도 같다는 살바도르 씨의 말이 바로 입증되었다. 호텔 레스토랑에 아침 식사를 위해 내려온 한 게스트가 살바도르 씨에게 신청곡을 청했다. 그는 이른 아침, 조식 중인 호텔 고객들로 가득한 레스토랑에서 한껏 목청을 높여 노래 한 곡을 불렀다.
그 용기가 놀라워 피아니스트가 떠난 뒤 그에게 얘기를 청했다. 그는 별도로 주문한 식사가 식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꺼이 질문에 답해주었다.
-당신의 성악을 듣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당신을 기억하고 싶다.
"당신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았다면 다행이다. 평소에도 성악을 즐긴다. 나는 알폰소 아람부로 에스피노Alfonso Aramburo Espino이다. 4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왼쪽 다리에 소아마비 후유증이 남았다. 15살 이후부터 25년 동안 보조기를 착용해서 내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 그 후 체중이 늘면서 걷기가 어려워졌다. 지팡이와 목발을 사용하다가 보다시피 현재는 전동 휠체어가 내 발이 되어주고 있다."
-이 호텔에 어떤 일로 숙박을 하게 되었나?
"아내가 휴가 중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여행을 떠났다. 덕분에 나는 이 호텔에서 홀로 나만의 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국립 공과대학교(Instituto Politécnico Nacional (IPN))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데 나 또한 휴가 기간이다."
-이렇게 독립적이고 호쾌한 삶을 사는 것을 보니 신체적 장애는 당신의 삶에 큰 장애가 되는 것 같지 않다?
"나의 신체적 부자유가 나의 동선을 제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삶이 덜 가치 있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의 그룹 리더가 되었고, 대학에서도 리더 역할이 이어졌다. 나는 이렇듯 누구에게 도움을 받기보다 오히려 독려하는 역할을 좋아했다. 정당에도 참여해서 내 목소리를 냈다. 생화학과 공학, 법학을 복수전공해서 현재의 직업을 내가 선택했다."
-가르치는 데 있어서 당신의 신체적 부자유가 방해가 된 것이 있나?
"25년 동안은 칠판 앞에 앉아서 판서를 하면서 가르쳤고 그 후에는 컴퓨터의 프레젠테이션을 활용하게 되었기 때문에 교수법이 더 쉬워졌다."
-당신이 가르치는 것은?
"대수학을 가르친다. 대수학은 삼각법, 기하학, 미분학, 적분학 등 다른 수학 분야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 학문이다. 새학기의 첫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마이너스 1 마이너스 1은 몇인가요?'라고 질문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틀리는데 결과는 '-1-1=-2'로 마이너스 2이다. 사람들은 '−1−(−1)=−1+1=0'로 착각하곤 한다. 이 사례를 인생에 비유한다면, '인생의 디폴트(기본값)가 마이너스'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결핍된 존재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생존뿐 아니라 자아실현, 행복, 관계 등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채워가야 한다. 본질적으로 개인의 결핍이나 어려움을 인정할 때 비로소 편안해지고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초기 그리스 시대에 수학적 원리와 논증 방식을 철학적 탐구의 기초로 삼은 이유를 알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별, 인종, 신체적 또는 정신적 상태에 따른 차이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함께 결핍을 하나하나 채워가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처럼 확고한 삶의 자유를 얻기까지 스스로를 지탱해왔던 기둥이 되는 말이 있나?
"'지성의 눈으로 보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말이다."
알폰소 씨에게 '지성'은 현실의 한계 너머로 나아가는 도구였다. 알폰소 씨의 눈으로 보면 결핍은 비겁한 자의 도피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