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76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여행자에게 하루는 생각보다 짧다. 그 도시를 탐험하고 인생의 산전수전을 치른 분을 만나 얘기를 섞다 보면 또다시 엄습하는 숙제가 있다.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 내일 당도하는 도시에서는 어디서 자야 할까...
안전한 도시,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도시인 밴쿠버에서 매일 되풀이되던 이런 염려로부터 잠시 해방되자 가족이 생각났다.
우리가 계획한 우리의 삶을 사느라 아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우리 부부에게 그래도 가장 자주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는 사람은 아들이다.
나의 이기적인 고집으로 가장 마음 아팠을 사람은 미국 동부의 한 캠핑장 새벽의 어둠 속에서 전화기의 작은 액정화면으로 아들 결혼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아내일 테지만 가장 미안한 분은 사돈 내외였다.
아들 내외가 결혼을 결심했다는 소식도, 결혼 날짜를 잡았다는 소식도 멕시코 서부의 사막 마을에서 들은 우리는 귀국 대신 예정된 여정을 계속할 결심을 전했다.
사돈어른과는 직접 대면하는 상견례 대신 화상 통화로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했다. 하지만 우리의 불비함을 서운해하는 대신 오히려 우리의 모험을 존중하고 격려해 주셨다.
아들은 지난번 전화에서 사돈 소식을 전해주었다.
"부산에서 어머님이 오셨습니다. 효정(며느리)이가 해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어머님과 함께할 시간이 없었고 어머님도 일이 있으시니 효정이에게 갈 시간도 없어서 모녀가 함께 여행 한번 해보지 못하고 결혼을 했는데 효정이가 이것을 무척 아쉬워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어머님에게 짬이 나셨다고 해서 효정이도 며칠간 휴가를 내서 모녀의 싱가포르 자유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아들은 평생에 처음인 며칠간의 모녀 여행만으로는 아쉬워서 보름 일찍 서울로 모셔서 평생 처음 혼자만의 휴가를 갖는 장모님을 위해 홀로 마음 편히 계실 수 있도록 서재를 내어드렸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도 아들 내외의 생각이 대견해서 마치 우리 부부가 처음 딸과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기뻤다.
#2
다시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효정이와 어머님이 얼마나 여행을 즐거워했는지, 그리고 누나가 좋아하는 전을 구워서 어머님과 함께 모티프원을 방문했던 얘기까지 소상히 전해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가족 단톡방에 어머님이 부산으로 떠나셨다는 소식과 함께 사진 몇 장을 올렸다.
"(영대)서재에 들어가 보니 어머님께서 편지를 써두고 가셨네요. 편지는 앞 뒷장이고 옆에 놓아둔 책은 어머님이 읽고 싶으시다는 책을 제가 구입해 드렸는데 다 읽으시고 놓고 가셨습니다."
"(나리)편지 읽으니 눈물이 나네요. 영대·효정 더 힘내길. 장모님, 너무 감사합니다."
"(영대)뒷장은 여행하는 동안 효정이가 어머님에게 했던 당부를 숙제하듯 익힌 내용을 적은 것이랍니다. '엄마, 한국 돌아가면 지인들께서 어디 갔다 왔는지 궁금해하실 텐데 그때 어디를 갔었는지 한 곳도 말을 못 하면 안 되니까 다른 건 몰라도 지명은 꼭 기억해야 해!'라는 효정이의 말을 듣고 매일 갔던 곳을 외우셨답니다. 그 지명들을 적어놓으셨습니다. 매일매일 갔다 온 곳을 기억하려고 네이버에 찾아보고 공부를 하셨다고 해요. 그러고 다 기억했다는... 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듯 적어놓으셨어요."
"(나리)오, 저도 이제야 이야기하는 거지만 어제 어머님이 떠나면서 고생 많다고 안아주실 때 눈물 날뻔했습니다."
"(안수)정말 영대 장가 잘 갔다. 영대를 부러워하기보다 엄마 아빠가 이런 분을 사돈으로 모실 수 있게 된 기쁨에 가슴이 벅차오르는구나. 엄마 아빠는 정말 어떤 복이 있어서 이런 고매한 분을 사돈으로 모시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는지, 내가 아는 모든 신들에게 감격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싶구나. 이 모든 행운과 기쁨이 효정이와 영대 덕분임을 잊지 않으마~ 아직 직접 대면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구나. 영대에게 거듭 말하지만 어머님의 감수성이 보통이 아니구나. 앞으로 책 읽고 이렇듯 글을 쓰실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드리는 프로젝트를 꼭 실현하거라. 여분의 방이 있다면 그곳을 어머님의 서재로, 그런 공간이 없다면 거실의 코너라도 필요하면 칸막이라도 놓아서 구분하고 그곳에 서가를 들이고 어머님께서 읽고 싶어 하시는 책으로 채워드려라."
"(민지)엄마도 오십 중반이 넘어서야 혼자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효정와 영대가 꼭 어머니 서재를 만들어 드려라. 좋은 책들로 둘러싸인 공간, 생각만해도 넘 좋다. 혼자이고 싶을 때, 밤새워 책을 읽고 싶을 때, 언제든 차 한 잔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좋은 안사돈을 영대 사진의 글로만 뵙는 것만으로도 넘 감사하다. 항상 부모님 맘을 편히 해 드리는 것이 효도이다. 효정이, 영대, 사랑해."
"(효정)따뜻한 말씀 모두 감사합니다. 엄마의 공간을 만들어드릴 상상만 해도 기쁘네요! 이렇게 엄마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엄마의 서울 여행은 영대의 배려에서부터 시작됐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제안했을 때는 짧게 3-4일이라도 엄마를 서울에 데려오고 싶다고 했을 때, 영대는 한 달 혹은 더 길게 있으셔도 된다고, 서재 방을 내어드리자고 말해줬습니다. 그 말 하나하나가 어찌나 고마운지.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계획을 짜서 싱가포르 여행과 서울에 계시는 이모와 삼촌, 사촌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엄마가 서울에 계시는 동안 영대가 딸인 저보다도 더 챙겨드리고, 고추장 짜글이로 저녁 한상까지 만들어 줬습니다. 사위가 만들어준 밥을 먹어본다고 미소가 입에서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떠나는 날까지 저희에게 고맙다는 말을 계속하셨는데, 저는 영대에게 참 고마웠고, 엄마에게는 투덜댄 것만 생각이 나서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이번 엄마의 서울 여행으로 저도 많이 배웁니다. 부족한 저를 좋아해 주시고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리)어머니 다음번에 또 놀러 오세요~! 효정, 영대 수고 많이 했어요~"
#3
사랑하는 딸(효정) · 사위(영대)에게
집 떠나 보름이란 긴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그것도 휴식과 여행을 동반하고. 너희들이 보여준 정성으로 호강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줘서 고마웠다.
엄마지만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너희 둘 사는 공간의 자유를 빼앗아 버려서 불편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겉으로 표내지 않고 내가 있는 동안 철없는 아이를 챙기듯 엄마를 보살펴줘서 고마웠다.
딸아 · 사위 영대야!
너희 둘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참으로 예쁘게, 진실되게, 부지런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부부는 너희처럼 사는 게 표준인 것처럼...
첫날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고 서재가 있는 방을 엄마방으로 사용하라고 하면서 마음대로 쉬고, 책 읽고, 자유스럽게 지내라는 그 말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가슴이 먹먹하더라. 서로가 챙겨주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고, 살림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현명함이 묻어나서 60평생을 살아온 내가 너희한테 배우고 가는구나.
딸아!
이번 여행 너무 감사했다. 복병인 발목 때문에 환하게 웃으면서 즐기지 못한 점 정말 미안하더라. 우물 안 개구리인 내가 바다 건너 멀리 해외로 딸과 함께 자유여행을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는 엄청난 자랑거리이고 복받은 것이었다
어린아이 챙기듯 엄마를 챙겨주니 정말 어린아이가 된듯한 묘한 기분도 들었다. 내 딸을 내가 어떻게 키웠는지 생각해 봐도 엄마는 너만큼 못해준 것 같아서 미안했다.
너무 잘 자라주었고, 잘 영글어진 열매처럼 알차고 멋진 성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아서 든든하기도 하고, 멋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내 사위야!
고맙다. 하회탈을 보는 듯한 너의 미소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묘약이더라.
장모라는 단어만으로 어려웠을 텐데 이 어미가 보름이란 긴 시간을 같이 했으니 불편하고 신경 쓰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아무런 티 없이 대화하고, 챙겨주고, 신경 써주어서 고맙다. 더불어 처가 손님맞이에도 더없이 대접해 줘서 감사했다. 넌 사위지만 마치 아들 같다는 마음이 들게 해줬다. 앞으로도 그 마음 변치 않기를 부탁할게. 효정이랑 둘이서 서로 맞대어서 세상 어려움에 잘 헤쳐나가 줬으면 한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잘 살아볼게.
딸아, 사위야!
엄마는 너희 집에서 보낸 이 보름의 시간을 오래오래 간직하려 한다. 가끔 주저앉고 싶을 때 꺼내서 되새겨 보고, 힘도 내어보고, 또다시 여유를 부리기도 하련다.
사랑한다. 내 딸 내 사위!
앞으로 더 더워지는 건강관리 잘하고, 식사 거르지 말고, 운전 조심하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잘 살아가기를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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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강조한 지명 익힌 것 써볼게.
딸아! 싱가포르 여행에서 딸이 강조한 지명 익힌 것 써볼게.
엄마에게 결코 부족한 여행이 아니라 엄청난 추억의 여행이었어.
•창이공항 - 인공폭포 구경, 쇼핑, 마라샹궈 먹음
•클락키 - 센트랄 FairPrice finest: 마트 - 두준이 선물사기
•숙소 (ibis)-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조식 먹기
•리틀인디아
•하지레인, 부기스
•뉴턴 푸드센터 - 칠리크랩
•머라이언 파크 - 오징어튀김 먹었음. 앞쪽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 싱가포르 상징 호텔, 한국 쌍용에서 건설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저녁 8:45분 조명쇼. 랩소디쇼
•센토사 - 인공섬 (실로소 비치, 팔라완 비치. 탄종 비치). 피자와 음료 마시면서 즐김.
•차이나타운-냉면. 찹쌀탕수육. 그 외.
•차임스 - 옛 수도원을 개조한 레스토랑(태국음식 먹었음). 파인애플 볶음밥.
•아틀라스 바 - 칵테일 바(진토닉, 마티니, 바텐더 스페셜)- 웅장한 아르데코 양식
•이스트 코스트 파크- 공항 가기 전 들림. 긴 해변으로 한국의 명사십리 같았음
숙제하듯 되새김하다 보니 머릿속에 새겨진다.
영원히 잊지 못할 멋진 추억 잘 간직할게~ 고마워~
_딸과 사위의 효를 실컷 받아서 부자 된듯한 엄마가
●24시간 동안의 결혼식
https://blog.naver.com/motif_1/223568731878
●새해에는 머물지도 애쓰지도 않으면서...
https://blog.naver.com/motif_1/223740856013
#모녀여행 #싱가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