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시비우(Sibiu)
"인생이 지루해지면 위험을 감수하라."
INTO THE WEST_51| 루마니아 시비우(Sibiu)
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루마니아 티미쇼아라에서 시비우(Sibiu)로 가는 길에 특별한 자동차 행렬을 만났습니다.
작은 올드 카에 짐을 싣고 어디론가 가는 자동차 여행자들. 자동차에 BACKROADCLUB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어서 이분들이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 분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고 작은 것을 좋아하며 골목길에 매료된 사람들. 이렇듯 자신들만의 분명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라니... 도로 위에서 찰나로 엇갈려 나로부터 멀어진 그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길 없어 홈페이(www.backroadclub.com)를 찾아들었습니다. 첫 페이지에 걸린 문장이 더 큰 아쉬움을 키웠습니다.
"인생이 지루해지면 위험을 감수하라(티에리 사빈 / 다카르 랠리)"
이른 아침 아내는 호텔 인근 베이커리를 지나치다가 빵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루마니아 레우로 환전을 하지 않았던 탓에 대금 지불을 위해 카드를 내밀었죠. 어쩐지 결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빵을 제자리에 두고 나오려 하자 주인은 그 빵을 다시 싸서 내밀었습니다.
시비우로 오는 길은 굽고 완만한 산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평야가 이어지는 나라에서 이 산길은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좋은 휴양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갓길 곳곳에는 직접 농사를 지은 과일들을 파는 좌판들이 놓여있었습니다. 대원중의 한 사람이 차를 세우고 과일을 골랐다가 카드 지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차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여행객이 뒤쫓아와 돈을 대신 지불해 드릴 테니 필요한 과일을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Sibiu Old Town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일행과 조우하기로 한 시간에 촉박하기도 하고 식사 시간을 줄이고 좀 더 긴 시간을 마레광장에서 보내기 위해 광장 후미진 한적한 레스토랑을 골라들어가 웨이트에게 가장 빨리 조리가 가능한 메뉴를 추천해달라고 했습니다.
"3가지가 있습니다. 5분 만에 가능한 수프와 10분 만에 가능한 스파게티, 20분 만에 가능한 피자입니다. 나머지 메뉴들은 모두 적어도 30분 이상이 필요합니다."
약속시간까지 40분밖에 허락되지 않은 저희 부부에게 선택을 자명했습니다. 하지만 주문한 맥주와 생과일주스가 5분 만에 나오고 수프는 10분, 스파게티는 20분 만에 서빙되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음식에 임해서는 예의를 갖추고 있습니다. 한 끼 식사로 나오기까지의 그 모든 희생과 노고를 생각한다면... 위엄있게 수프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습니다. 씹히는 맛이 친숙한 식감이었습니다. 웨이터에게 그 정체를 물었습니다.
"소의 위입니다. 생크림을 함께 넣은 수프입니다. 우리나라 고유한 수프, 치오르버 데 부르떠(Ciorba de burta)라는 것입니다. 맛이 어떠신지요?"
"아, 짐작한 바대로군요. 우리나라에서 제가 즐겨먹던 음식과 흡사합니다. 소내장탕이라고... 더불어 고추절임과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고추절임 하나만 더 주시죠."
고추절임이 달랑 하나 접시 위 냅킨에 얹혀 나온 것에 아쉬움이 남아 하나를 더 요청했습니다. 이번에는 컵에 하나가 외롭게 담겨 나왔습니다. 고추의 크기도 모양도 절임 맛도 어머님의 절임고추맛과 똑같았습니다. 시비우에서 맛보는 소내장탕과 절임고추맛이라니... 우리 부부는 이것만으로도 오늘 하루 충분했습니다.
내가 기대를 가졌던 곳은 마레광장(Piața Mare)과 이어지는 미카광장(Piața Mică) 모서리의 거짓말쟁이 다리 옆 에밀 시제루스 색슨 민속학 및 민속예술 박물관(Emil Sigerus Museum of Saxon Ethnography and FolkArt)이었습니다. 15세기에 지어져, 정육점, 모직물 판매점, 극장으로 사용되다가 마침내 박물관이 되었다는 곳. 각 시대의 필요에 따라 쓰임을 달리하면서 600년 넘게 살아남은 이 작은 건물의 변신과 그 건물의 성격과도 잘 맞는 박물관의 소장품들도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이 건물은 몇 년째 문이 닫힌 채 또 한 번의 변신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아내가 마레광장의 카페를 택했고 나는 구시가지의 구석구석이 더 궁금했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홀로 걸었고 지붕의 통풍구가 감시의 눈이 되어 나를 내려보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나는 구시가지를 벗어나 있었고 다시 만나기로 한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 아주머님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녀는 나보다 더 잰걸음으로 더 이상 내가 길을 잃을 수 없는 지점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면서 말했습니다.
"부디 시비우에서 좋은 추억을 누리시길..."
만약 인생이 지루해져서 무방비 상태로 온다고 해도 이렇듯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곳이 시비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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