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417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제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어요."
오늘(11월 5일)도 시애틀에는 비가 내린다. 그제 서머타임이 해제되어 해는 더 서둘러 밤을 내어주는 계절이 되었다.
다섯시가 되지 않아 해가 지고 다섯시가 넘으면 황혼조차 종료된다. 비가 내리는 날은 황혼의 시간조차 어둠의 편이니 낮은 오히려 밤의 편이다.
시애틀 땅을 밟은지 보름. 시애틀로 간다고 했을 때 우리를 애정하는 몇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노버드들이 이미 햇빛 많은 남쪽으로 떠난 때에 어쩌자고 시애틀인가요?"
우리는 그 고마운 염려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답했다.
"밴쿠버의 여름을 너무 찬란하게 누려서 균형을 맞추려고요."
이곳에 당도한지 보름.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해 찾아낸 변명이 정답이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어느 도시에나 '성스러운 것(the sacred)’과 ‘속된 것(the profane)'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속이 그러하니 그 사람들이 이룬 집단의 도시 또한 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들 속에서 오히려 빛나는 '성스러운 것’을 찾아내기가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작은 촛불이 그렇듯 어두운 밤의 편인 시애틀에서는 불쑥 만나는 미소, 친절, 배려가 순례자의 마음을 성스러움으로 꽉 채우는 감격이 된다.
이른 아침, 버스 정류장 옆 작은 공원을 쓸고 있는 사람이 말했다.
"전 이곳에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것이 제일 싫어요."
"당신은 시에 고용된 사람입니까?"
"아니요. 저는 시가 아니라 제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제 집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어젯밤 어디에서 주무셨습니까?"
"저 너머 '어디에선가'에서요."
중년 남자 아이작(Isaac)은 홈리스였다.
#2. 갑부의 바나나 나눔
더 스피어스(The Spheres)를 방문했다. 아마존 본사 빌딩군의 가운데 만들어진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의 거대한 유리돔이다. 실내 정원을 통한 아마존 직원들의 정서적 안정과 창의력을 증진하기 위한 공간이다. 직원이 아니라도 매월 첫째·셋째 토요일,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날에 예약을 통해 방문이 가능하다.
입장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세 개의 유리돔을 한 바퀴 돌았다. 입구 앞 광장에 에어스트림을 개조한 스탠드에서 바나나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바나나를 집어 들고 직원에게 물었다.
"모든 요일에 바나나를 먹을 수 있나요?"
"평일만 가능해요. 일하는 아마존 직원뿐만 아니라 시민 누구나 가져가실 수 있어요."
"오늘은 토요일이잖아요?"
"간혹 토요일에도 스탠드가 문을 여는 날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에요."
"왜 바나나인가요?"
"바나나는 다양한 필수 영양소가 든 과일이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입꼬리를 올려 웃는 모습도 좋고요. 이 스티커에서 처럼요."
"바나나 무료 나눔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10년 전부터요."
"누구의 아이디어인가요?"
"제프 베조스이지요."
"그는 왜 이 생각을 했는지 알고 있나요?"
"아침을 굶고 출근하는 직원들을 위해 바나나를 나누자,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평 자신의 등을 누일 수 있는 자기 소유의 침대 하나도 갖지 못한 아이작의 공원 청소,
31년 전 시애틀의 작은 차고에서 아마존을 창업해 현재 2,30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가진 세계 부호 2위인 제프 베조스의 바나나 나눔, 11월의 시애틀에서 만난 촛불 같은 마음들이다.
#홈리스 #더스피어스 #아마존 #시애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