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422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밴쿠버에 머물 때 우리 부부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중의 하나는 친절이었다. 이방인을 향해 닫혀 있는 모습이 아니라 끝없이 품어주는 태도였다.
"차가 있어야 갈 곳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함께 가시죠."
"이번 주말 명상 함께 하실래요? 지도 선생님과 함께 숲속 공원을 함께 걷는 명상입니다."
"도심에 역사적인 건물이 많아요. 궁금한 골목을 함께 걸으실래요?"
"이번 금요일 무료입장인 특별한 공간이 있습니다. 제가 이 도시에 18년을 살았어도 한 번도 못가 본 곳입니다."
"자전거 함께 타실래요?"
수시로 우리의 필요를 물어주었던 특별한 분들이었다. 마이클님과 미셸님의 온유한 표정과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우리가 떠나야 할 때가 임박한 주에 갑작스럽게 세프인 마이클님께서 피자 재료와 도구들을 챙겨와 피자를 만들어주었다. 이는 레스토랑에서 식사 한번 하자는 제안을 완곡히 사양한 것에 대한 의외의 대안이었다. 이렇게 밴쿠버가 우리를 친구 같은 이웃으로 받아주었다.
매일 아침, 함께 타이치(Tai Chi, 태극권)로 건강과 정을 나누었던 중국 커뮤니티의 동료들과도 고별하고 도서관 카드와 커뮤니티 카드도 반납했다. 그러나 마이클님께는 작별 인사조차 할 수 없었다. 밴쿠버합창단의 일원으로 고국 공연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밴쿠버를 '타향 속 고향'으로 느끼게 만들어준 마이클님께 엽서 한 장만을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마이클 선생님,
당신은 숲을 지나온 바람처럼
청량하게 다가와
저희 부부 길 위에서 쌓인 염려들을
정화해 주셨습니다.
가장 간절한 곳으로 안내해 주시고
가장 깊은 곳까지 닿게 하려는
선생님의 마음은
어떤 꽃보다 짙은 향기였습니다.
오늘 밴쿠버를 떠나며
이곳이 낯선 땅이 아님은
당신이 이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담아주신 가없는 환대의 마음은
'Pay it back'대신 'Pay it forward'로 전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그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겠습니다.
언젠가 다시 조우할 희망을 잡고
버스에 오릅니다.
2025년 10월 21일"
#2
마이클님이 한국에서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건강히 잘 지내시죠? 오늘 오랜만에 다시 인문학 공부방 수업에 복귀했습니다. 두 분을 다시 뵙지 못해 아쉬웠지만요.
황 선생님이 선생님께서 떠나시면서 특별히 저를 위해 남기셨다고 하시면서 카드를 주셨습니다. 어이쿠, 부족한 저를 좋게 봐주신 마음도 너무 감사한데 ***까지 주시니 부끄러운 마음도 한편으로 들었습니다.
여하튼 선생님의 고결하고 따뜻한 마음 감사하고 또 뵙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두 분 선생님의 미소와 세상을 다 담아낼 거 같은 넉넉한 마음, 의롭고 지혜를 사랑하는 열정에서 우러나온 풍모와 말씀 늘 그리울 듯합니다. 저도 다시 뵐 날을 고대합니다. 가시는 앞길과 인연이 복되고 안전이 함께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밴쿠버로부터의 메시지는 독립 서점, 카페, 앤틱숍, 빈티지 패션 부티크 등 감성이 깃든 거리 풍경의 키칠라노(Kitsilano)의 날을 다시 오늘로 데려다주었다. 느리게 걷고 싶은 거리, 웨스트 4번가(West 4th Avenue)에서의 밴쿠버 날을...
우리에게 소유는 관심 밖이다. 그러나 오래 함께 살아가고 싶은 것이 있다. 서로에게 정성을 다했던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의 기억이다.
"마이클 선생님의 그 친절을, 그 선한 실천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문득문득 마이클 선생님께서 모든 도구들을 메고 오셔서 우리가 머무는 현장에서 직접 구워주신 피자 맛이 생각납니다. 그것은 단지 혀가 기억하는 맛을 넘어 가슴이 기억하는 삶의 진정성에 대한 기억입니다.
돈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내야 가능한 일들이라 언제나 자랑스러운 기억입니다. 뉴스창을 열면 세상이 온통 악이 횡횡하는 듯싶지만 기실 세상은 여전히 천국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언젠가, 다시 조우할 꿈을 꿀 수 있음도 담백한 기대입니다. 살아있어야 할 이유이죠.
저희 또한 시애틀로 무대는 바뀌었지만 삶에 대한 탐구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가장 확실한 것은 그것이 누구의 삶이든, 어떤 삶이든 온유한 마음으로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마이클 선생님께서 모든 이방인들에게 보여주시는 한량없는 친절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으로 여겨집니다.
다시 뵐 것을 믿습니다.
_시애틀에서"
#밴쿠버 #키칠라노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