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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찾기 위해 발길을 멈추다.

Ray & Monica's [en route]_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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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W 한국학 도서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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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우리 때의 대학 졸업을 앞두며 가지는 큰 소원은 든든한 큰 회사에 들어가 정년퇴직 때까지 다닐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부모 세대가 물려준 가장 현실적인 이상이었고 창업을 생각해 본 적 없는 우리 세대가 품을 수 있었던 안전한 미래였다.


그 꿈에 내 삶을 올려놓으면 온 가족의 행복이 담보될 것 같았던 '퇴사 없는 직장'의 꿈은 시대가 바뀌어 회사로서도, 개인으로서도 고루한 꿈이자 한심한 생각이 되었다. '정년퇴직'을 한 아내는 그 꿈으로 살아온 마지막 시대일 성싶다.


아내와 달리 이직을 계속하며 불완전한 시도들을 계속했던 나는 '무능한 남편', '무책임한 가장'의 시선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잦은 이직, 서툰 시도들이 큰 자산이 되는 시간이 왔다. 지난 20여 년이 내게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나 다시 안전하고 편리한 한국의 '안정'을 떠나 보헤미안의 시간을 살아야겠다는 선택을 밀어붙였던 것을 뒤돌아 보니 어쩌면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같다.


자기답게 사는 개성이 먼저인 시대, 안정이 곧 정체라는 인식이 보편적인 시대가 된 지금, 우리의 유랑이 좀 더 편해졌다. 어디를 가나 우리를 방어하거나 배척하는 대신 납득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애틀에 발을 들인 후 첫 외출이 '한국학도서관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윤혜자 선생님께서 저희를 UW(University of Washington)의 타테우치 이스트 아시아 도서관(Tateuchi East Asia Library)로 안내하시고 선생님의 오랜 친구들이자 이 도서관의 후원자들이기도 한 분들과의 미팅을 인근 유니버시티 빌리지의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주최해 주셨다. 이분들의 가없는 환대를 통해 유랑자인 우리 부부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모든 곳에 조금씩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다음 날부터 시애틀의 이방인이 아니라 시애틀에 속한 사람의 태도로 시애틀을 대하게 되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시애틀의 대부분이 좋아졌고 시애틀의 부정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시애들에 속한 사람의 입장에서 비난에 동조하는 대신 대안을 찾아보게 되는 마음의 태도가 되었다.


#2


유 선생님과 도서관 친구들께서는 시애틀라잇(Seattleite)으로서 이 도시에 갓 도착한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수용과 보호의 마음으로 시애틀을 이해하는 지름길들을 알려주셨다. 그것은 동포애를 넘어 형제애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제 은퇴 생활의 기쁨 중 하나는 멀리서 오는 지인들과 정겹게 시간 보낼 수 있는 여유로움입니다."


유 선생님께서는 우리로 인해 마음 쓰일 일들에 미안해하는 저희 마음을 먼저 읽으시고 미리 부드러운 말로 부채감을 탕감해 주셨다.


"이런 친구들이 옆에 있는 것이 미국 생활의 안심이자 기쁨입니다."


배움과 나눔의 선한 연대로서 서로들 간에 작동하는 형제애가 유 선생님과의 신뢰로 저희에게도 적용된 듯싶었다.


모두의 마음처럼 유쾌하고도 세심한 서빙의 맛난 식사를 마치고도 함께 긴 이야기를 섞었다. 일행 중에는 먼 곳에서 오신 분도 계셨다.


모두는 이민 1세대로서 넘어야 할 허들들이 적지 않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난 시간에 한 점의 고난도 없었던 분들처럼 현재를 누리고 나누는 격조를 살고 계셨습니다.


이분법적 판단 없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젊은 감수성은 이곳이 시애틀이기 때문이어서인지 아니면 소녀적 감수성을 여전히 간직한 bookworm이기 때문이지는 모르겠다.


#3


우리는 캐나다에서 '진실과 화해의 날(National Day for Truth and Reconciliation)'라는 법정 공휴일(9월 30일)을 보내고 미국으로 온 터였다.


이 날은 정부와 가톨릭교회가 원주민 아이들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키기 위해 가족과 공동체에서 떼어내 강제로 기숙학교에 수용한 문화 말살 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2021년에 법정 공휴일로 제정되어 기념되고 있다. 이 정책이 운영되었던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기숙학교에서는 수많은 학대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죽은 아이들의 유해가 수백구 발굴되었다. 캐나다에서는 '진실과 화해의 날'을 통해 원주민 아이들과 부모들이 겪었던 고통과 그로 인해 야기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원주민의 권리와 문화를 존중하고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 사실에 더해 김선희 선생님께서는 미국의 원주민 기숙학교를 방문했던 소회를 들려주셨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화해하지만 또다시 그런 상황이 닥치면 똑같은 일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되지 싶어요. 인류가 계속해서 선한 방향으로만 진화해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멈추고 퇴행하기도 하잖아요. 예술과 문화가 가장 찬란했던 유럽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시대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고 나치 정권이 등장했듯이요. 독재라는 것이 처음부터 억압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친근한 이웃 아저씨나 선생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노우'라는 생각을 못 하거나 속으로는 하고 있어도 겉으로는 표현할 수 없게 하면서 등장하잖아요."


나는 시애틀을 걸으면서 내속의 악마를 찾기 위해 문득문득 발길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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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타테우치이스트아시아도서관 #한국학도서관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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