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내의 뱃속에 24주의 딸이 자라고 있습니다.

by motif
KakaoTalk_20251126_175209316.jpg


세월이 조금씩 쌓이고, 어느덧 어린 시절 순수함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니, 제 생활을 SNS에 적어 놓는 것마저 스스럽습니다. 살면서 느낀 다양한 순간들은 메모장과 구글드라이브에 기록해 두고, 어쩌다가 혼자 그 시간을 뒤돌아보곤 하다 보니 마땅히 지인들과 나누어야 할 소식들조차 혼자만 간직하고 있더군요.


-


작년 가을, 오랫동안 서로를 지지하며 다양한 감정을 나누어오던 여자친구와 작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돌아보니 그때가 제 삶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기쁜 날 왜 그렇게 많은 눈물이 쏟아지는지 당황스럽기만 했습니다. 여자친구와 함께한 지난 시간들, 그리고 그 순간까지 함께해 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분명 감격과 고마움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혼자’에서 ‘둘’로, 그리고 앞으로 가정을 책임질 한 남자로 다시 태어나는 탄생의 눈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이가 엄마 뱃속 성장에서 나오며 내는 첫 울음을 ‘birth cry’라고 한다고 합니다. 엄마의 자궁 속 양수에서 폐를 사용하지 않던 아기가 세상에 나오면서 처음으로 폐가 공기로 팽창하여 세상과 연결되는 첫 기적의 순간이죠. 제게는 그날이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첫 기적의 순간이었던 셈입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부부로서의 예의와 책임을 다하며, 성혼선언문의 다짐인 ‘잘 살겠습니다’라는 약속을 말이 아닌 삶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


아내의 뱃속에는 24주를 막 지난 딸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숙고해 ‘이수(李水)’로 이름도 지었습니다. 물처럼 유연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기든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형태에 맞춰 스며들고, 곳곳을 흐르며 세상을 적시고 생명을 만들어냅니다. 때로는 부드럽고 유순하지만, 큰 물이 되어 새로운 길을 만들 만큼 강인하기도 합니다. 이 아이도 그런 물의 미덕처럼, 어떤 환경과 사람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유연하지만 흔들림 없는 힘을 지닌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합니다. 또한 물이 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스며들 듯 다가갈 줄 아는 아이였으면 합니다. 흐르는 물의 끝은 항상 큰 바다를 이루듯, 이 아이 역시 작은 걸음과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넓고 깊은 바다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습니다.


이름을 정하는 순간부터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수에게도 자신의 이름에 담긴 뜻을 숙고할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아내가 입덧도, 신체적·정신적 이상도 없는 것을 보니 다행히 이름처럼 배려심 많은 아이로 자라고 있는 듯합니다.


-


행복할 수만은 없는 나이지만, 이런 경험들과 생각들 속에서 행복의 순간들을 발견하면서 세상을 긍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햇살 속으로 손을 뻗어 빛이 몸에 닿으면 그 부분을 시작으로 온몸이 점차 따뜻해지는 것처럼 행복은 긍정 한 줄기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배에 귀를 대고 이름을 불러주면 반응하는 이수의 발길질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마음이 되는 요즘입니다.


제가 미처 소식을 전하지 못한 모든 분들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_ by 이영대


KakaoTalk_20251126_175209316.jpg
KakaoTalk_20251126_175209316_01.jpg
KakaoTalk_20251126_175209316_02.jpg
KakaoTalk_20251126_175209316_03.jpg
KakaoTalk_20251126_175209316_04.jpg
KakaoTalk_20251126_175209316_05.jpg
KakaoTalk_20251126_175209316_06.jpg
KakaoTalk_20251126_175209316_07.jpg
KakaoTalk_20251126_175209316_08.jpg
KakaoTalk_20251126_175209316_09.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