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449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아침에 눈을 뜨자 아내가 핸드폰 속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다시 향수병이 재발한 것인가 싶어 걱정이 앞섰다.
지난밤, 우리가 있는 곳보다 15시간 앞선 한국의 첫째 딸 생일을 앞두고 아내와 나는 미혼인 딸들의 당사자가 된 듯 서로 다른 입장에서 얘기를 나눈 뒤 딸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단톡에 남기고 잠자리에 들었던 터였다. 딸과 직선거리는 약 12,400km가 넘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한국 시간으로 나리 생일을 앞둔 어젯밤,
엄마 아빠는 나리와 주리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다.
엄마는 빨리 나이 들기를 바라셨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엄마만 나이 든 게 아니라
나리와 주리도 함께 나이가 들어서 걱정이라고...
나리가 만 나이 39세, 한국 나이 마흔인데
주리는 2살 터울이니 38세일 테지.
엄마 아빠 마흔이었을 때는
아직 뭔가를 할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믿었는데,
지나고 보니 어느덧 일흔이구나.
엄마는 3살 아래 일뿐이고...
시간이 어디로 새어나갔는지 알 길이 없구나.
내 몸의 기능이 하나하나 소실되어 불편해질 때마다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는구나.
그 순간마다 하셨던 말씀들이 이제야 이해되면서
그 얘기들을 대수롭잖게 여겼던 것이 몹시 죄스럽고...
돌아가셔서도 여전히 나를 가르치고 계시는구나 싶다.
나이는 정신이 아니라
몸의 변화를 통해서 비로소 현실이 되는 것 같구나.
마흔을 지나면 쉰이 고개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나리와 주리에게는 앞으로의 10년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될 터인데 우리가 지나고 보니,
서재에 머물던 햇살이 사라진 것처럼 일순간이다.
하지만 나리와 주리에게 이 10년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 축적되는 때가 될 것이다.
이 시기에 가장 큰 경험을 하고,
그 경험으로 인해 더 현명해지며,
현명해진 만큼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유로워진 진다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것에 집착하는
걸림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부디, 더 큰 자유를 얻는 10년이 되길...
또 다른 10년의 문턱을 넘은 나리,
일당백 우리 딸의 생일을 축하해!
2026년 1월 20일
멕시코 Oaxaca에서
엄마 아빠가"
아내가 아침식사로 초콜라테를 만들기 위해 호스텔 3층의 부엌으로 간 사이 나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항상 긍정적이고 민첩한 둘째 딸이 먼저 메시지를 남겼다.
"맞습니다.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네요.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마흔이 넘으면 눈이 먼저 잘 안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보니까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큰 전략을 세워 명민하게 살아가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전 쉰 되려면 약 12년이 남았습니다. 백만장자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
19년 전 15살의 동생에게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으니 그까이꺼 공부 열심히 해보라"고 당부 편지를 보냈던 수능을 2주 앞둔 19살의 둘째 딸이었다.
네 살 터울 남동생의 방황을 걱정했던 그 동생인, 영대의 긴 편지가 올라있었다.
"나리 누나의 생일을 기념하며, 모두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한 번 제가 부모님께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이 무엇이냐고, 부모님은 언제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셨는지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아직도 어른이 된 것 같지는 않다고 다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그러다 국민학교 4학년 무렵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도회지로 떠나던 날, 40kg짜리 쌀 한 자루를 들고 버스터미널에 내리셨을 때 그제야 알았다고 했습니다.
아, 나는 혼자구나. 이제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구나.
하지만 대학을 나와 사회에 나와 보니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은 어리석었다며.
어른이란, 누군가와 연결되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을 때 그 순간, 어른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직 그 질문의 답을 완전히 찾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는 법, 그리고 비로소 어른이 되는 순간이란 어쩌면 세상 만물의 이치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삶을 살아오며 수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부모님의 선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비난도, 수긍도 아닌 아주 원초적인 의문이었죠.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부모님의 선택에는 늘 고통이 따랐습니다.
외로움의 고통,
육체적인 고통,
경제적인 고통.
왜 그 많은 고통을 감당하면서까지 그렇게 험난한 길을 선택하셨을까.
그 질문을 잊고 살던 중, 이수가 뱃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임신 10주, 손가락과 발가락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17주에는 소리에 반응하는 이수가 태동을 하고
25주에는 외부의 빛에 반응하며 눈의 역할이 뚜렷해지고
32주가 된 지금,
이수는 세상에 나오기 위해 체중을 키우며
바깥에서 숨 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한 달 전,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다 아버지의 인상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습니다.
위 앞니가 거의 빠져 윗 입술이 잇몸 안으로 말려 들어간 모습.
가리려고 수염을 더 기른다는 말에 부모님의 선택을 존중하려 했지만
그 모습은 제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남았습니다.
마치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회전하며 붙잡을 수 없는 세월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남은 생을 함께할 아이는 팔다리를 힘껏 뻗으며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고,
가장 먼 곳에서 내 인생을 지켜봐 준 부모님은 천천히 사그라들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며칠 전,
부모님의 인화된 사진들을 박스에 정리하다 제가 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젊음을 마주했습니다.
현재의 저처럼 인생의 한가운데에 서 있던 부모님의 모습, 그 사진 속에는 미래를 기다리며 웃고 있는 한 소년과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저도 아버지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님의 선택들을 하나씩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가 되면 저 역시 어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답 속에서 제가 발견한 어른이란, 결국 누군가와 연결된 채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내가 효정이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이수라는 아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 삶을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누나들이 없었더라면,
이 세상이 얼마나 촘촘한 연결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설계를 과연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지금의 모습 그리고 가족 사이에 오가는 사소한 이야기들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좋은 일은 있었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언젠가 가장 그리워지게 될 말들을 지금, 살아 있는 시간 속에서 묻고 나누는 일.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그 질문들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이 며칠 전에 내가 두고 온 사진 박스를 다시 정리했다고 했다.
"아빠 인화 사진들, 너무 오래된 옛날 박스에 있어서 하나씩 수납박스에 다시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정리하면서 사진들도 보곤 했는데 이 시절에 엄마 아빠가 딱 현재 제 나이였을 때인 것 같더라구요.
세월을 야속하다 해야 할지,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며 앞만 보고 나아가야 할지. 너무나 촘촘히 잘 설계된 천지만물 앞에서 잠시 먹먹했습니다."
그때의 감정들이 누나의 생일로 이어져 잠시 멈추어 서로를 응시하는 순간이 된 것 같다.
큰딸은 우리 부부가 떠나고 남은 모든 일들의 책임자가 되어서 4년째 분투하고 있다.
"저는 오늘 공식적으로 만 39세, 이제 40살이네요.
확실히 요즘 눈이 좀 침침해진 것 같습니다.
운동도 안 하니까. 몸이 찌뿌둥하고 회복이 느려지는 거 같은데,
아빠 이빨이 많이 안 좋아졌다고 하니
엄마 아빠 몸도 관리를 하셔야지 건강하게 여행하고
더 많은 거 보고 하실 텐데...
시간 가는 거 진짜 눈깜짝이네요.
정신적인 성숙함이 몸의 노화랑은 전혀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고,
저는 여전히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크게 변한건 없는 거 같은데
나이는 먹었네요.
오늘은 생일이라고 맘먹고 나갔다 왔습니다.
열화당 가고, 학예사 선생님이랑 수다 엄청 떨고 왔습니다.
공간이 주는 기운을 받고 싶었나 봐요.
가서 책도 몇 권 사고, 중고 서점 가서 한창 구경도 하고
명필름 문 닫는다고 해서 명필름아트센터도 가고
거기서 책도 읽었습니다.
미메시스에서 전시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못 봤네요.
그래도 이렇게 숨 돌리는 게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보르작 신세계로부터 앨범 들으면서 출판단지를 걷고
열화당 들어가는데 참 기분이 좋더라고요.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나의 고된 노동을 영대가 감쌌다.
"나는 목 삔 후로 일주 정도 쉬다가 오늘 한의원 가서 침 맞고 저녁에 유도하고 돌아가는 길.
간만에 날씨도 미세먼지 없이 좋음이던데 나리 누나 생일날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려 그랬나 봄.
사실 행복은 별거 없이 하루 이렇게 온전히 자신만을 혹은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위로하는 잠깐이 만들어주는 것인 것 같음.
알고도 잊는 게 행복이지만 하루하루 잠깐이라도 시간을 갖는 연습을 하는 게 행복한 마무리를 하는 길이지 싶음. 모두 오늘도 수고했고 남은 시간은 잠시라도 행복의 시간을 보내길."
아들이 사진 정리하면서 보아둔 사진 몇 장을 함께 전했다.
"참 재밌는 건 이사진 제외하고 수천 장 사진이 있는 것 같은데 아빠가 같이 찍힌 모두의 가족사진이 이것 말고는 못 찾음. 모든 사진이 우리 혹은 엄마, 이것도 엄마랑 아빠가 번갈아 찍어서 있는 사진. 그리고 저 때 보이는 아빠 엄마의 웃음이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때의 진짜 웃음으로 보임."
큰딸의 생일로 시작된 하루 동안의 가족 단톡 대화 끝에서 오늘 아침 아내가 눈물을 훔쳤던 감정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은 말이야, 능력과 열정이 있는 사람만이 움직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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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지 않고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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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목욕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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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정년퇴임 가족 축하연, “가장 강민지 여사답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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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우리 부부를 지탱해온 2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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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가족 #모티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