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Ray & Monica's [en route]_448

by motif

시애틀 추장의 산소를 찾아서

제목 없음-1.jpg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밴쿠버에서 독립서점을 순례하는 중에 문에 붙여진 한 사진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바위 위에 올라선, 깃털 장식을 단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이었다. 짐짓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한 그녀의 눈빛과 마주한 순간, 그 얼굴은 무표정이 아니라 수많은 말을 담고 있었다.


"Only after the last tree has been cut down. Only after the last river has been poisoned. Only after the last fish has been caught. Only then will you find that money cannot be eaten(마지막 나무가 베어진 뒤에, 마지막 강이 오염된 뒤에,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우리는 돈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시선을 아래로 옮기자 그녀의 발아래에 북미 원주민의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더 빨리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내용과는 무관했다.


시애틀의 The Unity Museum을 방문했을 때 관장 자빈 반 네스(Zabine Van Ness) 어른 옆에 붙여진 문구에 눈길이 갔다. 1854년 1월에 행해진 시애틀 추장의 Henry A. Smith 기록본 연설문(Chief Seattle's Speech) 이었다.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은 실제 원본이 존재하지 않지만 1854년 워싱턴 준주 총독 Isaac Stevens 앞에서 Lushootseed 언어로 한 연설을 Henry A. Smith가 통역을 통해 들은 내용을 기록했다는 내용이 주로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33년 뒤 1887년 10월 29일 자 the Seattle Sunday Star 신문에 처음 영어로 실렸다. 그 내용은 재구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1970년대 환경운동가에 의해 '편지'버전으로 알려진 것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SNS를 통해 '베네수엘라 공격이 성공했고,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해 국외로 이송 중'이라고 밝힌 직후 이 연설문을 다시 읽었다.


" The son [a reference to Terr. Gov. Stevens] of the White Chief says his father sends us greetings of friendship and good will. This is kind, for we know he has little need of our friendship in return, because his people are many. They are like the grass that covers the vast prairies, while my people are few, and resemble the scattering trees of a storm-swept plain.


The great, and I presume also good, white chief sends us word that he wants to buy our lands but is willing to allow us to reserve enough to live on comfortably. This indeed appears generous, for the red man no longer has rights that he need respect, and the offer may be wise, also, for we are no longer in need of a great country.


There Was A Time


When our people covered the whole land, as the waves of a wind-ruffled sea cover its shell-paved floor. But that time has long since passed away with the greatness of tribes now almost forgotten. I will not mourn over our untimely decay, nor reproach my pale-face brothers for hastening it, for we, too, may have been somewhat to blame.


백인 추장의 아들[스티븐스 준주 총독을 지칭]이 그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우정과 호의의 인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이는 친절한 처사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백성은 많기 때문에 우리의 우정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광활한 초원을 덮은 풀과 같지만, 우리 백성은 적고 폭풍에 휩쓸린 평원에 흩어진 나무와 같습니다.


위대하고, 아마도 선량한 백인 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어 하지만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을 만큼의 땅을 남겨두도록 허락하겠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관대한 처사입니다. 왜냐하면 붉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제안은 현명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큰 나라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우리 민족이 바람에 흩날리는 바다의 파도가 조개껍질로 덮인 바닥을 덮듯이 온 땅을 뒤덮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고, 부족들의 위대함은 이제 거의 잊혔습니다. 저는 우리의 때 이른 쇠퇴를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것을 재촉한 백인 형제들을 책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시애틀 추장의 묘는 킷섭 반도(Kitsap Peninsula) 포트 매디슨 인디언 보호구역(Port Madison Indian Reservation)인 수쿼미시(Suquamish) 부족 공동묘지에 있다. 1866년 6월 7일 사망 후 안장되었으며, 시애틀 도시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퓨젯 사운드(Puget Sound) 너머에 위치한 그 지역은 페리를 타고 베인브리지 아일랜드(Bainbridge Island)로 가서도 한참을 가야 하는 곳으로 자동차가 없이 다녀오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곳곳이다.


유혜자 선생님과 모니카 선생님께서는 기꺼이 안내를 자청하시고 비가 오지 않는 날을 손꼽았다. 13일 아침은 햇살까지 모습을 보인 날이었다. 바다를 건넜을 때 해살은 모습을 감추었다.

"추장님 뵈러 가는 날은 이 날씨가 옳은 것 같아요."



공감되는 말씀이었다.

연설문을 읽으면서 그 행간에 담긴, 강자의 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지도자의 체념과 비통함이 뇌리에 여전히 생생했던 터였다.


백인 대통령의 팔라는 제안이었지만 땅을 지켜낼 힘이 없는 입장에서 그것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제안이 아니었다.


묘비는 십자가 석비로 조성되었다. 앞면에는 "SEATTLE, Chief of the Suquampsh, and Allien tribes. DIED JUNE 7, 1866. The firm friend of the whites and for him the CITY OF SEATTLE was named by its FOUNDERS."이, 측면에는 세례명 'NOAH SEALTH'가 새겨져 있다. 양옆으로는 부족 조각상이 세워져있다.


시애틀 추장의 세례는 원주민 간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개인적 비극과 Point Elliott 조약(1855) 협상을 위한 전략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Point Elliott 조약으로 광대한 원주민 영토(시애틀, 벨뷰, 레드먼드, 타코마, 에버렛, 에드먼즈 등 오늘날 킹·스노호미시·스카짓 카운티 대부분의 땅)은 미국 정부의 땅이 되었고 대신 작은 ‘reservation(보호구역)’을 지정받게되었다. 전통적 어장에서의 어업권과 사냥, 채집권 보장이 명시되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강과 바다, 숲과 들에서 기존처럼 살아갈 권리는 무시된 채 어장과 사냥터, 채집지는 이주민들에 의해 독점되거나 금지되거나 사유지로 변했다.


묘역을 돌아 나오면서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을 이야기했다. 1830년대 미국 정부가 남동부 원주민인 체로키(Cherokee) 족을 비롯한 여러 부족을 서쪽 오클라호마로 강제 이주시켰고 그 과정에서 수천 명이 추위와 굶주림, 질병과 폭력으로 사망했다. 체로키 사람들은 그때의 기억을 '우리의 눈물이 땅을 적신 길', '조상과 아이들이 쓰러진 길'이라고 불렀다.


시애틀 추장은 오늘날 미국의 독점된 권력이 행사되고 있는 형태를 내려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꾸미기]20250907_185124.jpg
[꾸미기]20251203_143156t.jpg
[꾸미기]20251206_135013t.jpg
[꾸미기]20251206_135115.jpg
[꾸미기]20251206_143724.jpg
[꾸미기]20260113_103944.jpg
[꾸미기]20260113_111306.jpg
[꾸미기]20260113_111440.jpg
[꾸미기]20260113_111705.jpg
[꾸미기]20260115_183533.jpg
[꾸미기]KakaoTalk_20260114_140711994.jpg
[꾸미기]20251203_143149.jpg
[꾸미기]20251203_145819.jpg
[꾸미기]20251206_143615.jpg
[꾸미기]20260113_102417.jpg
[꾸미기]20260113_102421.jpg
[꾸미기]20260113_103716.jpg
[꾸미기]20260113_103922.jpg
[꾸미기]20260113_103949.jpg
[꾸미기]20260113_104803.jpg
[꾸미기]20260113_105750.jpg
[꾸미기]20260113_110854.jpg
[꾸미기]20260113_110904.jpg
[꾸미기]20260113_110910.jpg
[꾸미기]20260113_111028.jpg
[꾸미기]20260113_111102.jpg
[꾸미기]20260113_111148.jpg
[꾸미기]20260113_111153.jpg
[꾸미기]20260113_111234.jpg
[꾸미기]20260113_111243.jpg
[꾸미기]20260113_111609.jpg
[꾸미기]20260113_111852.jpg
[꾸미기]20260113_112104.jpg
[꾸미기]20260113_112112.jpg
[꾸미기]20260113_112509.jpg
[꾸미기]20260115_183522.jpg
[꾸미기]20260115_183712.jpg
[꾸미기]20260115_183744.jpg
[꾸미기]20260115_183930.jpg

#시애틀추장 #눈물의길 #시애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의 위기 순간에 떠난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