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사랑은 빠지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by motifnote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면서 자꾸 책을 덮게 됐다. 아프다기보다는, 너무 정확해서. 이 책은 사랑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위로도 안 한다. 대신 이런 얼굴로 묻는다. 그래서, 너는 왜 그 사람을 사랑했는데?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자꾸 말이 느려졌다.





삶에서 낭만적인 영역만큼 운명적 만남을
강하게 갈망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p.7
나는 그녀에게서 내가 평생 서툴게 찾아다녔던
바로 그 여자를 발견했다.
p.12
모든 갑작스러운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장점을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면이 있는 것이 아닐까?
p.19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문장을 끝맺는 법이 없다는 것이,
약간 불안해하는 것이,
귀걸이의 취향이 아주 세련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어색해 보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사랑스러웠다.
나는 순간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이상화에 빠져들고 말았다.
p.22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우린 내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을 찾으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통하여
인간종에 대한 불확실한 믿음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p.24


사랑은 늘 갑자기 시작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안에 있던 어떤 결핍, 말로 설명하지 못했던 허기 같은 것. 완벽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끌리지 않는다. 너무 반듯한 사람 앞에서는 괜히 내가 더 초라해지고 머무를 자리가 없는 느낌이 든다. 이상하게도 조금 불안정해 보이는 사람, 나처럼 뭔가 덜 완성된 사람에게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아마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익숙함에 가까웠을 것이다. “아, 이 사람도 나랑 비슷하네.” 그 한 줄짜리 안도감.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상대를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무언가를 알아본다고 말한다. 읽으면서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부정할 수 없어서. 우리는 사랑을 시작할 때 상대에게 많은 걸 덧씌운다. 내가 살지 못한 삶,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 혹은 나를 구해줄 것 같은 가능성. 융의 말대로라면 그건 아니마이기도 하고 아니무스이기도 하겠지. 결국 나는 그 사람을 본 게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나를 봤던 셈이다.


그래서 사랑의 시작은 늘 과장된다. 운명 같고, 필연 같고, 이번에는 다를 것 같고. 사람들은 장미를 떠올릴 때 가시는 잘 떠올리지 않는다. 사랑도 그렇다, 처음엔 꽃잎만 보인다. 아니, 보려고 애쓴다. 불편한 말투, 맞지 않는 가치관, 어딘가 걸리는 태도들. 그때마다 우리는 말한다. “이 정도는 괜찮아.”, “원래 사람은 다 그래.”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가시가 있다는 걸. 그냥 아직 만지고 싶지 않았을 뿐. 그래서 진짜 사랑은 설렐 때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함이 또렷해지는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가겠다고 결정하는 순간부터다.



사랑하는 사람이 객관적 실재와 관련이 없는
내적인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가능성이 나타난다.
p.125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p.141
그녀가 나의 일상과 습관을 기억하는 것,
그녀가 나의 공포증을 인정하는 것에는
다양한 "나의 확인"이 수도 없이 포함되어 있었다.
p.143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이것은 나는 이런 식으로 너를 사랑하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싫다는
근본적인 주장과 통한다.
p.181
연인은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다.
정직한 대화는 짜증만 일으키고,
그것을 소생시키려다가
사랑만 질식시킬 뿐이다.
p.202


나는 요즘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에 가깝다고 느낀다. fall in love이 아니라 being love. 지속하는 쪽. 버티는 쪽. 도망치지 않는 쪽. 관계가 흔들릴 때 사람들은 꼭 말한다. “사람이 변했어.” 근데 정말 그럴까. 어쩌면 상대가 변한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보던 환상이 깨진 건 아닐까. 사랑 초반에 우리는 상대를 이상으로 만든다. 이상적인 연인, 이상적인 이해자, 이상적인 구원자. 그리고 그 이미지가 무너지면 배신처럼 느낀다. 하지만 사실 상대는 처음부터 그 사람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이상형을 말할 때 대부분 외형부터 꺼낸다. 키, 얼굴, 분위기. 근데 그건 깨지기 너무 쉬운 조건들이다. 살이 찌면, 실패하면, 기대만큼 성장하지 않으면 사랑도 같이 흔들린다. 그건 사랑이 약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이상만 사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상형보다 이상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닮아 있는지, 고통을 처리하는 방식이 비슷한지. 외형은 변해도 방향은 오래 남는다. 그리고 사랑은 결국 같은 방향을 보며 지루한 날들을 함께 견디는 일이다.




책을 덮고 나서 이 질문이 계속 남았다. 그래서 나는 왜 그 사람을 사랑했을까. 아마도 나와 비슷한 결핍을 봤고, 내가 되고 싶었던 무언가를 투사했고, 장미의 꽃잎만 붙잡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사랑을 망가뜨리는 책이 아니다. 다만 환상을 조금 벗겨낸다.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오래 남는다. 사랑은 운명도 아니고 구원도 아니고 완성도 아니다. 그냥 불완전한 두 사람이 각자의 환상을 조금 내려놓고 그래도 함께 가보겠다고 말하는 것. 이 책을 읽고 나는 사랑을 덜 믿게 된 게 아니라 조금 더 현실적으로 조금 더 오래 믿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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