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후’를 통과한 두 사람의 이야기
사람들은 종종 사랑을 감정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사랑을 읽을 때마다 그것이 감정이 아니라 생활의 기후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사랑은 하루의 날씨처럼 금세 바뀌고, 어떤 사랑은 계절이 오랫동안 이어지듯 긴 파동을 남긴다.
정대건의 『급류』는 그중에서도 ‘폭풍이 지나간 뒤의 기후’를 묘사하는 데 탁월한 작품이다. 도담과 해솔은 열여덟의 어느 여름, 갑작스러운 폭우처럼 몰아친 사건을 겪고 자신들의 마음속에 서로 다른 형태의 ‘기후’를 갖게 된다. 그리고 스물아홉에 다시 만나 서로의 오래된 날씨를 마주한다.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둘의 사랑이 시작된 순간이 ‘감정’이 아니라 이미 기상 변화였기 때문이다. 소용돌이는 예고 없이 생기고, 폭풍은 우리가 원한다고 멈추지 않는다.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그 사람 자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생겨나는 기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내 삶에서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말려 들어가던 적이 있다. 그건 누군가가 나를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마음의 기압이 바뀌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못되게 굴어도,
너는 제대로 화도 못 내
왜? 너는 죄인이니까
두 사람의 부모가 같은 날 세상을 떠난 비극은 둘의 삶에 장기간 지속되는 기후 이상을 남긴다. 도담에게는 사랑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한파’가, 해솔에게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습한 장마’가 남는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의 기후는 똑같은 폭풍에서 시작되었지만 전혀 다른 날씨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같은 사건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마음이 얼고, 어떤 사람은 마음이 쓰러지고, 어떤 사람은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다. 이건 단순한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살아가는 방식, 기후 시스템의 문제다.
나 역시 어떤 관계에서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었고, 어떤 관계에서는 끝없이 책임감을 느끼곤 했다. 사랑은 사건보다 그 사건 이후의 기후가 더 큰 영향을 준다.
해솔과 도담은 손을 뻗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열여덟, 스물하나 그리고 스물아홉. 그들은 또다시 재회한다. 이 재회가 특별한 이유는 둘이 다시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기후를 들고 서로 앞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담의 마음엔 여전히 서늘한 바람이 불고, 해솔의 마음엔 오래된 습기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각자의 날씨를 숨기지 않고 그 날씨 그대로 서로에게 파고들기로 선택한다. 어른의 사랑이란, 상대가 맑은 날씨이기 때문이 아니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 기후를 알고도 머무르는 일이 아닐까.
나도 이제는 급류처럼 격렬한 사랑보다 천천히 기후가 맞춰지는 사랑을 믿게 됐다. 잔잔한 호수 같은 사랑은 심심한 게 아니라,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기후.
『급류』는 사랑이란 감정의 순간이 아니라 그 감정이 남기는 지속적인 기후 변화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도담과 해솔은 폭풍을 함께 겪은 뒤 흩어졌고, 각자의 다른 날씨를 안고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다. 그들의 선택은 단순히 “사랑하자”가 아니라 “네 기후 안에서 살아보겠다”라는 말과도 같다.
이 리뷰를 쓰며 생각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찾는 것은 심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폭우가 아니라, 오래도록 숨을 쉴 수 있는 기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