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의 인생에 대하여
나는 알았다.
그 또한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그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되었는지를.
『투명인간』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투명인간이라니, 너무 익숙한 단어였다. SF 영화 제목 같기도 하고, 은유적인 표현 같기도 해서 오히려 새로울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이 제목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투명하다는 건, 안 보인다는 거니까. 보고도 못 본 척해도 되는 존재라는 뜻이니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 이 소설의 제목은 그 사실을 너무 정확하게 찌른다.
이 소설은 분명 재미있다. 쉽게 읽히고, 중간중간 웃음이 나오는 장면도 많다. 성석제 특유의 문장은 여전히 경쾌하고, 상황은 때로는 황당할 정도로 가볍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은 계속 가라앉았다. 웃고 있는데 웃는 기분이 아니었다. 『투명인간』은 재미있지만 즐겁지는 않은 소설이다. 읽고 나서 “잘 읽었다”보다는, 이유 없이 “아…”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책이다. 그 말 뒤에 감정을 붙이기가 쉽지 않아서 더 오래 남는다.
주인공 김만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너무 평범해서 설명하기조차 애매한 인물. 성실하고, 큰 욕심 없고, 시키는 일 묵묵히 하고, 가족 먹여 살리려고 버티며 살아온 사람이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지만 그 어느 자리에서도 중심에 서 있지는 않다. 그는 늘 주변에 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없어도 당장 큰일은 안 날 것 같은 사람. 그 설정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낯설지 않아서 더 불편했다. 김만수의 인생 위로 한국 현대사가 조용히 지나간다. 전쟁, 가난, 산업화, 노동, 해고, 가족 부양. 교과서에서 굵은 글씨로 배우던 사건들이 그의 삶 속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는 시대를 만든 사람이 아니다. 시대에 끌려다니며 살아낸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 목소리를 낸 사람, 역사의 앞줄에 선 사람들만 기억한다. 『투명인간』은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끝까지 따라간다. 그래서 이 소설은 계속 마음을 건드린다.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읽다 보니 자꾸 아빠가 떠올랐다. 특별한 영웅담은 없지만, 매일 출근했고, 매일 피곤해했고, 가족을 책임졌던 사람. 어릴 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커서는 그 삶을 깊이 묻지 않았다. 어느 순간 문득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내가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사실이 조금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김만수도 그렇다. 그는 분명 누군가에게는 전부였을 텐데, 기록되지 않는다. 아무도 그의 선택을 자세히 묻지 않고, 그의 감정을 인터뷰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고만 남는다. 그게 이 소설의 가장 잔인한 지점이다.
이 소설이 더 잔인한 이유는, 김만수가 끝내 특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끝내 큰 성공을 하지도 않고, 세상을 바꾸지도 않는다. 마지막까지 ‘그냥 그런 사람’으로 남는다. 우리는 보통 이야기 속 인물이 마지막에는 보상받기를 바란다. 고생했으니까, 착했으니까, 성실했으니까. 하지만 『투명인간』은 그런 위로를 주지 않는다. 현실처럼, 너무 현실처럼 끝난다.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다. 이건 소설인데, 너무 현실 같아서 소설 같지 않다.
읽으면서 계속 질문이 생겼다. 이런 삶은 실패한 걸까? 남들 기억에 남지 않으면 의미 없는 인생일까? 조용히 살아온 사람들의 삶은 왜 항상 배경으로만 처리될까? 김만수는 투명해지길 선택한 적이 없다. 다만 그렇게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너무 쉽게 투명하게 만든다.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냥 괜찮아 보인다는 이유로. 그 질문들은 책 속에서만 맴돌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회사에서, 길을 걷다가도 자꾸 떠올랐다. 눈이 마주쳤지만 인사하지 않았던 사람들,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이름조차 몰랐던 얼굴들. 성실하지만 조용해서 기억되지 않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특별히 무시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애써 보려고 한 적도 없었다. 김만수는 소설 속 인물이지만, 그의 모습은 너무 현실에 가까워서 오히려 더 외면해 왔던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투명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투명해진 사람들만 편하게 지나쳐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감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했고, 슬프다는 말로도 설명이 안 됐다. 죄책감 같기도 했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감정이기도 했다.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그냥 지나쳐왔을까. 『투명인간』은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보지 않고 살아왔는지를 들추어낸다. 그래서 불편하다. 하지만 나는 이 불편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 책은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은 아니다. 가볍게 읽고 기분 좋아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의 가장자리,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 조용히 사라지는 인생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싶다면 이 책은 분명 오래 남는다. 『투명인간』은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에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다. 그리고 아마, 나도 모르게 내 주변의 ‘투명한 사람들’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