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되지 않았지만 외면할 수는 없었던 소설
한 번만, 단 한 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러면 그럴 수 있을까.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책이었다. 한국 문학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되었고, 문학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꼭 읽어야 할 책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책을 쉽게 집어 들지 못했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후기들이 극명하게 갈렸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인생 책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너무 불쾌해서 끝까지 읽기 힘들었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라는 평을 남겼다. 그 후기들을 읽을수록 궁금해지면서도 동시에 망설여졌다. 혹시 읽고 나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 어쩌지, 혹은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문학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도 있었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는 늘 ‘언젠가’ 읽을 책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 올해 들어서는 더 이상 미루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좋든 싫든, 맞든 틀리든, 내 감정으로 직접 읽고 판단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책을 펼쳤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문장이 어렵다기보다는, 장면 하나하나가 불편하게 다가왔다. 묘사는 지나치게 적나라했고,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은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자주 멈추게 되었고, “왜 이런 이야기를 굳이 이렇게까지 써야 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채식주의자』의 중심에는 영혜라는 인물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녀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영혜의 내면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끝까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을 통해 영혜를 바라보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나는 계속 답답함을 느꼈다. 영혜는 스스로 말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의 해석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처럼 보였다. 어쩌면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구조일지도 모르지만, 독자로서 나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폭력의 묘사였다. 『채식주의자』 속 폭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폭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 정상이라는 기준 아래 강요되는 가치관,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고 억압되는 과정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불쾌했고, 더 피하고 싶었다. 읽는 도중 몇 번이나 책을 덮을까 고민했다.
읽으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내가 끝까지 영혜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이 작품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 소설은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가 폭력일 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영혜는 끝까지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는다. 그 침묵이 불편했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쉽게 타인의 고통을 ‘납득 가능한 이유’로 환원하려 했는지 돌아보게 됐다. 이 소설은 친절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불친절함이야말로 『채식주의자』가 끝까지 놓지 않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왜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채식주의자』는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다. 감정을 정리해 주지도 않고, 해석의 방향을 제시해 주지도 않는다. 대신 불편함을 그대로 남긴다. 문학 작품이나 영화가 상을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대중적이어야 하거나,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다시 느꼈다. 작품성은 대중성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분명 날카롭고, 독특하며, 쉽게 잊히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 돌아오면, 나는 이 책을 좋아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채식주의자』는 이해되지 않았고, 불쾌했고, 솔직히 말해 잘 맞지 않는 소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나쁘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이 작품은 “좋아하지 않아도 읽어볼 가치는 있는 책”이었다. 불편함을 통해 내가 무엇을 거부하고, 어떤 장면에서 마음이 닫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다시 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오래 기억에는 남을 것이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채식주의자』는 나에게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도 완전히 답하지 못한 채, 마음 한쪽에 남아 있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강렬한 공감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끝내 받아들이기 힘든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독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만나는 경험 또한 독서의 일부라는 걸, 『채식주의자』가 나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