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사랑이 사회와 충돌할 때

by motifnote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 2013)> 포스터


작품 정보

감독: 조 라이트

주연: 키이라 나이틀리, 주드 로, 애런 존슨

장르: 드라마

국가: 영국

러닝타임: 130분


줄거리 요약

아름다운 외모와 교양을 갖춘 사교계의 꽃 안나 카레니나. 러시아 정계의 최고 정치가인 남편 카레닌, 8살 아들과 함께 호화로운 저택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고루하고 이성적인 남편에게 염증을 느낀다. 그녀 앞에 매력적인 외모의 젊은 장교 브론스킨이 나타난다. 뜨거운 욕망에 사로잡힌 안나는 브론스킨과 위험한 관계를 이어가고,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가 사교계에 소문이 퍼지자, 안나는 가정을 버리고 도피하는데…





나는 먹을 것이 주어진
배고픈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춥고 헐벗을지언정
불행하지는 않아요.

안나는 처음 등장할 때 이미 완성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러시아 귀족 사회에서 존중받는 여성이고, 안정된 가정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남편 카레닌은 냉정하고 이성적인 인물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정치가이며, 안나는 그 세계 속에서 큰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다. 겉으로 보면 부족한 것이 없는 삶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삶의 틈 사이에 있는 작은 공기를 조용히 보여준다. 안나는 안정 속에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어떤 감정이 결여된 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녀의 삶은 질서 정연하지만 그 안에는 열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안나의 세계에 브론스키가 등장한다. 젊고 자유로운 장교인 그는 안나에게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종류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는 단지 시선이 머무는 정도의 호기심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감정은 점점 더 분명해진다.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삶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미 정해진 궤도를 따라가던 그녀의 삶에 갑자기 다른 길이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안나는 이전의 삶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안나에게 브론스키와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녀는 점점 더 그 사랑에 깊이 빠져든다. 사회적 지위와 가정, 명예까지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감정을 포기하지 못한다. 사랑이 그녀에게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삶의 중심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안나는 결국 자신이 가진 많은 것을 내려놓는다. 그 선택은 충동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오래 억눌려 있던 감정이 한 번에 터져 나온 결과처럼 느껴진다.



우리에게 평화가 있을리 없잖아요.
고통 아니면 황홀한 행복뿐이겠죠.

하지만 같은 사랑을 바라보는 브론스키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그는 분명 안나에게 강하게 끌리고,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을 진심으로 즐긴다. 그러나 그 사랑이 자신의 삶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결심을 요구할 때 그는 조금씩 망설이기 시작한다. 브론스키에게 사랑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미래를 의식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바로 그 지점에서 두 사람의 감정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안나는 점점 더 사랑에 몰입하고, 브론스키는 점점 더 현실을 바라본다. 이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진다. 안나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되기 시작한다. 귀족 사회는 그녀를 외면하고, 이전의 친구들도 하나둘씩 멀어진다.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브론스키뿐이다. 하지만 그 상황 자체가 사랑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사랑이 삶의 전부가 되는 순간, 그 관계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말투와 표정, 작은 행동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브론스키는 더 이상 연인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중심이 되어 버린다. 반면 브론스키는 그 무게를 점점 부담스럽게 느낀다. 그는 여전히 안나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그 감정을 유지하지 못한다. 사랑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처음처럼 가볍고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균열을 드러낸다. 사랑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서로가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져 버린 것이다.



전 순수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욕정만을 위한 욕정은 탐욕일 뿐이죠.
일종의 식탐이에요.

이 영화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안나를 단순한 비극의 주인공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는 사회의 규범에 의해 고립된 인물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이다. 그녀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고, 그 선택의 결과 역시 스스로 감당하게 된다. 영화는 그 과정을 과장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어떻게 점점 더 좁은 공간으로 몰려가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과 대비되는 또 다른 관계를 함께 보여준다. 레빈과 키티의 관계는 훨씬 더 느리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발전한다. 그들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갈등을 겪고, 결국 서로의 삶 속에서 균형을 찾아간다. 이 관계는 안나의 사랑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사랑이 반드시 파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 차이는 더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고, 어떤 사랑은 처음의 열정이 지나간 뒤 점점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결국 <안나 카레니나>가 보여주는 것은 사랑의 아름다움보다는 사랑의 무게에 가깝다. 사랑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세상과 충돌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충돌 속에서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고립된다. 안나는 사랑을 선택했지만, 그 사랑이 그녀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녀를 더 깊은 고독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비극은 단순히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사랑이 삶 전체가 되어버렸을 때, 그 감정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안나는 사랑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꿨지만, 결국 그 사랑 속에서 점점 더 좁은 세계에 갇혀 버린다. 그리고 그 과정은 극적인 사건 없이도 충분히 비극적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