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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Nov 08. 2021

운전을 한다는 것  

누구를 태우건, 돌아오는 시간은 오롯한 혼자가 되곤 했었다.

운전을 좋아했다. 처음 배울 때는 조마조마했지만 금세 배웠다.
걱정은 많아도 과감한 성격에 첫 연습 운전부터 엄마의 소울을 시원하게 긁었다. 그러고선 좌충우돌 과감하게 운전을 배우면서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몇 번 겪었다. 내가 낸 사고도 있었고 남이 낸 사고도 있었다.

인명사고가 없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자잘한 접촉사고를 겪다 보니, 차든 사람이든 부닥치기도 하고 스치기도 했다. 복잡하게 마주치기보다 때로는 스무스하게 지나가는 인연이 편한 건, 차나 사람이나 매한가지였다.


자유롭게 몰 수 있는 내 차가 생기고부터는 답답할 때도 운전하고, 심심할 때도 운전을 했다.

훌쩍 집에서 나가 어디론가로 검색하고 떠나는 길이 좋았다. 늘 목적지보단, 가는 길이 좋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고, 왕왕 소리를 지르며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엉엉 울며 달리기도 했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고 드라이브를 하기도 하고, 인천공항 가는 길,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자유로... 지리는 늘 익숙하지 않지만 어두운 밤길에 빛나는 빌딩 숲 야경도, 먼 데 보이는 다리 위 조명도 참 예뻤다.


운전에 조금 자신이 붙고서는 동행을 태우는 일에도 자신이 생겼다.

그날그날, 소중한 인연이 동행을 했다. 많은 대화가 오가기도 하고, 많이 웃기도 했다.
옆자리 좌석이 누구 건, 나를 믿어주는 소중한 마음이 있었다.
누구를 태우건, 돌아오는 시간은 오롯한 혼자가 되곤 했다.


혼자서 운전을 했던 날보다, 누군가를 태워갔다 혼자 돌아오는 길은 유독 밤길이 예뻤다.

적적하던 시간엔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도 했고,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 방송을 듣고 오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틀지 않고 홀로 오는 시간에 흠뻑 젖어 있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삶은 홀로 있는 시간을 적적하지 않게 보내는 기술을 연마하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차 안은 어찌 보면 작은 공간이었지만, 차로 닿을 수 있는 곳은 무한히 넓었다. 먼 지방에도,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도, 차만 있으면 경계나 제한이 없었다.


멋진 차를 몰고 싶었다. 제법 비싼 차를 중고로 사고서, 나는 깨달았다.

비싼 차라서, 조금 더 성능이 좋은 차라서 달리는 길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는 걸.
(물론, 조금 우쭐해지긴 했다)  

그러나 어떤 차라도 핸들을 잡은 건 나라서, 혼자 달리는 길을 즐기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조금 더 큰 차를 몰면 짐을 더 많이 실을 수 있지만, 차에서 내려 짐을 한가득 들고 돌아와 정리하는 시간 역시 나의 몫이라고. 그리고 차에 타는 시간이든, 차에서 내려 정리하는 시간이든, 달리는 시간이든, 내 삶의 시간은 사부작 사부작, 쉼 없이 흐르고 있다고.


운전을 좋아하고 차를 좋아하지만 나는 차를 잘 모른다. 그저 차를 쓰는 시간이 좋을 뿐이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좋아한다 하면서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좋아하는 걸 아낄 줄 아는 게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멋진 차를 가지고 있는 것뿐 아니라 돈과 시간, 에너지를 들여 차를 돌보고 다루는 법을 알고 관리하는 것이 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스노타이어를 알아보고, 차 내부에 청소용 타월을 몇 종류씩 구비해 넣어두고, 스프레이 체인과 성에 제거제, 차량용 방향제를 틈틈이 채워 넣고, 차량용 청소기로 차 내부를 정리한다. 세차는 이따금씩, 차가 많이 더러워지면 한다.


좋아하면 알아가게 되고, 알아가면 조금 더 신경 써서 돌볼 수 있게 된다.
소유의 개념이 아닌 동반의 개념으로 좋아하는 것을 배우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신경 써서 돌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 돋보이기 위한 소유가 아닌, 오랜 시간 동반하기 위한 돌봄을 한다. 차에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 쓸고, 닦고, 쓰레기를 비운다. 운전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만큼, 차를 돌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소유만으로 헛헛한 마음을 달래는 법을 배우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썼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만 앞서서 일방적으로 주는 마음이 관계에 있어서는 부담과 시행착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조금은 안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나를 돌보듯, 즐겁게 운전하고 싶어서 차를 돌본다. 몸을 움직여서 좋아하는 것들을 돌볼 때에는 적어도 외롭지는 않다. 잘 모르더라도 좋아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늘려가다 보면,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좌절하곤 했던 것들을 조금씩, 더 쉽게 해낼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 좋아하는 일에 더욱 마음을 쓰고,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을 하자고 짧은 호흡이 아닌 긴 호흡으로 타자에게 손을 내미는 법을 배운다. 누리고 즐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동반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좋아하게 됐다. 좋아하는 마음에 동반하는 사람과 사물에 정성껏 책임감을 갖고 감사함을 나누는 법을 배운다. 짧게 좋고 싫은 것이 아닌, 긴 호흡으로 좋음을 이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차알못인 내가 차를 아끼고 돌보며 더 긴 거리를 달리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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