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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Dec 03. 2021

자기돌봄으로 타인을 돌보는 사람들

살자, 이왕이면 잘 살자. 

한 해의 마무리가 될 때쯤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간다.

올 한 해도 잘 살았나.
한 해 동안 이뤄놓은 것은 무엇인가.
얼마만큼의 시간이 허투루 흘러갔던가. 


우리는 모두 잘 살고 싶다. 이왕이면 후회하지 않을 시간들을 살고 싶다. 살며 만나는 수많은 열정들 속에는 살아있는 시간을 가치 있게 쓰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하다. 그를 위해 배울 거리도, 알아야 할 것들도 너무나 많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부족한 나도 더 자주 많이 마주친다. 하나를 알게 될 때마다, 그에 못 미치는 내가 수두룩 빽빽이다. 아는 만큼 행해야 하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하나를 알기가 무섭다. 그럼에도 더 알고 싶다. 


성장이 목적인 인간의 삶에서, 나는 아는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성장이라고 정의한다. 먹고, 움직이고, 배출하고, 쉬는 삶의 원리는 단순하지만,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다원화될수록, '먹고사니즘'의 메커니즘이 고도화될수록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문제를 받아들이는 방법도 복잡다단한 것만 같다. 자꾸 내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나를 흔드는 것 같을 때, 필요한 것은 탁월한 문제 해결의 묘수보다는 '단단한 체력'이다.  


작년, 무려 15년 지기의 인연과 헤어졌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20대의 온통을 송두리째 삶에서 들어내고서, 인간관계부터 물리적 삶의 공간, 생존 능력을 쓰는 방식이 모두 바뀌었다. 나는 참 유연하지 않은 사람이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많이 힘이 들었다. 변화를 겪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쓰다 벌어진 일이다 보니, 살아나갈 힘을 내는 것이 버거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에서 깨어버렸다는 것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매일 하루하루, 물속에 잠긴 것처럼 살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꾸역꾸역 나를 살게 해 줬던 습관이 운동습관이다. 일단 눈이 떠지면 하염없이 추욱축 쳐지기 전에, 운동복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앞으로 앞으로 달렸다. 달리는 중에 눈물이 나더라도, 속상한 기억이 치고 올라와 가슴이 먹먹하더라도 달리고 오면 무조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아니까. 어딘지 모르게 후련해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말끔히 옷을 갈아입고 나면 해가 지기 전까지는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었다. 달리기만 하다 심심할 때는 헬스장에 갔다.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를 앞에 두고서 팔, 다리, 등, 허벅지, 복근을 두루두루 쓰면서, "이까짓 거, 인생보다 안 무거워, 삶보다 안 두려워!" 하며 밀고 당겼다. 이사를 가고서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속 세상은 처음 경험하는 두려운 세계였다. 숨을 쉬고 싶어서 온 몸이 난리였다. 물은 나를 편안하게 안아주는 것 같다가도,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낯선 세계였다. 처음 들어갈 땐 추워서 부르르 떨려도, 조금 발을 차고 물을 젓다 보면 물은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 같기도 했다. 수영을 배우면서, 서툰 나를 만나고, 낯선 세상에 조금씩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낯선 변화에 적응하느라 두렵고 불안한 마음은 물속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안정되어갔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삶을 살아가는 저마다의 방법을 터득하는 고독이 필요함을, 운동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물속에서 수영을 하기 위해선 보조장비도, 조력자도 어느 순간에는 없다. 그저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지, 얼마큼의 물을 어떻게 잡고 있는지, 호흡하며 무너지는 평형을 어떻게 되찾아 올 것인지, 발차기와 물 젓기의 타이밍을 얼마나 최적화시키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나 혼자만의 집중력과 실천이 있을 뿐이다. 


달리기는 먹먹한 마음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법을 알려줬다. 

웨이트는 무거운 세상을 짊어지고 일어설 힘을 길러줬다. 

수영은 낯선 변화에 적응하고 저항을 내 편으로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연습량과 불필요한 힘을 뺄 수 있게 해 줬다. 

요가는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와 오롯이 만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내어주었다. 


무겁고 먹먹할 때, 나를 끌어올려준 건, 운동이었다. 생명을 지고 사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운동은 허무하고 먹먹한 마음을 가볍게 날리고, 그런 마음이 그저 내 머릿속에서 '해석된 것' 임을. 삶을 허무하게 살 것인지,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한 순간 한 순간 집중해 살 것인지는 오로지 내 몸과 마음의 선택일 뿐이라는 걸 알려줬다. 아주 치명적인 일을 겪은 것 같아도,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에 내상을 입어도, 몸은 금세 "그다음은 어떻게"를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해 치유하고 극복해낸다. 내가 자꾸 무너져도, 운동하는 몸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내 몸과 마음으로 느꼈던 에너지의 울림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현대인들 중에는 몸과 마음의 연결이 끊어져 아픈 사람들, 몸과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고 계산하느라, 손해보고 싶지 않아서,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 때문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실체 없는 의무감과 책임감에 허덕이느라 힘든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사는 나를 귀하게 대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건강한 습관 만들기' 모임을 만들었다. 물론, 나를 귀하게 대하는 법을 안다고 늘 나를 귀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지나온 기억이, 괜히 힘들어하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 때면 언제든 나는 외롭고 먹먹해서 흔들리곤 한다.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건강한 식단을 챙기고, 즐겁고 힘찬 움직임을 더 하고, 쳐져서 운동하지 못하는 날은 위로도 하고, 흔들려서 매운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 때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느낌도 나누고 하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다. 사실, 모임에 오신 분들보단 내가 더 자주, 많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또 흔들리고, 다시 삶을 보듬어 안는 모습을 알려드리는 입장이라, 더 힘을 냈다. 삶의 흔들림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공유하는 어딘가가 있다는 것, 평가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안아주는 법을 배우고 있는 모임을 만들었고, 이에 뜻을 맞춰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참 다행이고 고마왔다.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굴며 채찍질하곤 했던 심성의 방향을 따뜻한 돌봄으로 바꾸고 보니, 이 방에서만큼은 모두가 서로서로 친절해졌다. 한 달에 한 번씩 새로 오시는 분, 또 자기 돌봄 습관을 혼자 만들려 떠나시는 분들이 오갔지만, 오랫동안 삶을 나누고 계신 분들이 있다. 그 누구 건,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운 기댐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자립을 응원하는 건강한 기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연말, 건강한 습관 만들기 모임에 참여하셨던 분들을 한 분 한분 만나고 있다. 서로 얼싸안고 전화통화로만 나눴던 마음속 이야기들을 손을 마주 잡고, 얼굴을 맞대고 꺼낸다. 처음 습관을 만들러 왔을 때보다 더 단단하고 따뜻해진 몸과 마음으로. 건강한 밥을 먹고, 적당히 산책도 한다. 그런 꾸준한 몸을 가지신 분들이라 새삼 참 고맙다. 


함께 마음을 나누기만 해도, 굳이 돈으로 매겨 계산할 수 없는 생명력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이 모임을 가급적 쭈욱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존재가 귀한데, 자기 자신에게 친절한 태도를 타인에게도 응원하며 써주고 있는 누군가가 꾸준히 삶을 살아가며 먹고 움직이는 시간을 공유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에너지가 되는지.  잘 산다는 것은, 정성껏 먹고, 정성껏 움직인다는 것. 나에게 정성을 다하고, 나를 둘러싼 인연에 정성을 다해 감사를 전하는 것. 꾸준히 사는 것. 그리고 이렇게 살면 건강하지 않을 수가 없다.  

2022년에는 이런 자기 돌봄의 에너지로, 원하는 삶을 보다 진취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멘털 트레이닝 모임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삶을 얼싸안고, 친절하게 혹은 따뜻하게 한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달리기 같은 프로그램으로. 스스로를 잘 돌보는 안전한 사람들이, 타인을 또 일으켜 세우고 살린다. 그래서 마음을 담아 얘기한다. "살 아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한편으로는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도 말한다. 늘 서툴지만, 꾸준하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지혜의 한 자락이 머릿속에 스미는 시점이 올는지도 모른다. 꾸준함을 나누고, 친절함을 나누는 건강한 습관 만들기 모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외에 건강을 되찾고, 나를 친절하게 대하며 삶을 살아나가는 방식을 나누다 보니, 다들 건강지표도 많이 좋아지기도 했다. 남에게 보여주기보다 스스로를 예뻐하는 법을 배운다. 자신을 예뻐죽겠어하는 스스로가 서로에게도 예뻐 죽겠는 존재가 된다. 지금 당신도,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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