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림 Dec 19. 2021

도서 <인간 수업> 리뷰

인간은 왜 흔들리는가,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성장하는가. 

'더 나은 삶을 만드는 인간의 10가지 품격' <인간 수업>이라는 어마 무시한 제목의 도서를 받아보게 되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기에 주저 없이 서평단에 신청했다. 그리고, 10명의 저자들과 인간의 본성, 본성을 받아들이는, 혹은 본성을 알아차리는, 본성을 다듬는 10가지 품성에 대해 한 장 한 장 넘기며 탐독했다. 


많은 질문거리를 떠오르게 한 챕터도, 많은 부분 동의하며 읽게 된 챕터도, 모르던 사실을 일깨워준 챕터도,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챕터도 있었다. 1권의 책을 읽었는데 저자가 10인 10색이다 보니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또 10명의 독자가 모두 가볍게 혹은 중요하게 각 화두를 강조하거나 드러내는 데 '몸'에 관한 예시를 들고 있었는데, (의도한 것 같지는 않고 그만큼 몸으로 삶을 사는 저자들의 일면이 드러나는 책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독자로서 가장 동의하며 읽은 챕터는 1장. <불안정>과 10장 <죽음>에 관한 챕터였다. 아마도 내가 관심이 있고, 경험적 범주 속에서 동의할 수 있는 이론과 작가의 경험들이 함께 뇌리를 두드린 덕분일 것이다. 에서부터 불완전한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죽음을 삶의 요소로, 숨기거나 두려워 회피하기보단 매일매일이 죽음에 가까이 다다르는 여정임을 인정하고, 원하는 죽음을 준비하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현재의 삶이 얼마나 충만할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으로 울림이 있었던 핵심 메시지를 요약하고자 한다. (물론 핵심 메시지보다 더 귀한 금언들이 책의 각 장에 수록되어 있다.) 


 1. 불안정한 인간 

인간이 갖고 있는 고질적 불안정 요소 속에서도 불안정을 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이고 안정적인 목표와 계획을 실천해 나가는 방법을 스스로 수립할 수 있다면 훨씬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작가는 인간의 고질적 불안정을 목적 - 목표 - 계획에 따라 '원하는 삶을 성취하는 로드맵'을 스스로 만드는 능력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제안하고 있다. 

# 인간은 불안정하다. 안정으로 가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를 내는 과정이 자기 계발이며 자기 성장이다. (p.20) 

# 내면의 엔트로피(무질서의 정도)를 잘 조절하는 사람은 자기 계발이나 자기 발전을 하는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존감 하락이나 자기 비하 등으로 불안정을 표출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p.21) 


#매 순간 불안정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방법의 차이가 습관을 차이를 만든다. (p.23) 


#대부분의 일은 미리 준비하면 조금 힘들더라도 결과적으로 에너지를 적게 쓰게 된다(p.28) 

#삶의 목적에 따라 계획을 세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실천하는 행위는 불안정을 떨쳐버리고 안정을 향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p.40) 

#불안정을 우리를 발전하게 만드는 에너지라 생각하면 '불안정'이라는 말은 곧 '안정'으로 바뀔 수 있다(p.41) 


2. 소비하는 인간 

'소유냐 존재나' 에리히 프롬의 화두처럼, 소비자는 이제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사고 쓰는 것을 넘어 소비로 자신의 정체성, 가치관, 삶의 의미, 행복 등을 대변하기도 하고, 기업과 소비행태를 통해 소통하기도 한다. 작가는 소비 현상을 전반적으로 분석하면서도 개인의 소비에 대한 행복, 나아가 더 나은 삶을 이끄는 소비에 대해 '경험'을 소비하는 삶을 제안하고 있다.
 
(다만 나는 작가가 요즘을 '풍요의 시대' 라 정의하는 것에 다소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한다면 풍요 일지 모르지만 요즘의 세상은 살아가기에 풍요하다기보다 팍팍하다. 과거의 베이비붐 세대는 정말 물건이 없어서, 소유의 가치를 크게 생각하고, 오랫동안 저축해 꼭 필요한 것을 소유하는 것에 목적을 둔 소비생활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천정부지로 높아진 물가 덕에 온전한 소유가 어렵기 때문에 '점유하고', '빌려 쓰는' 장기간 소유하기보다 단기 경험을 통한 경험에 의의를 두는 소비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질 수 있는데도 현명하게 나눠 쓰고 빌려 쓰는 것과, 가질 수 없어서 나눠 쓰고 빌려 쓰는 것은 다르다.) 굳이 표현을 다듬어보자면, 풍요의 시대보다는 '쇼윈도의 시대' 는 어떨까. 


#'생산의 시대'에 소비자의 권리를 말했다면, '풍요의 시대'에 우리는 '소비자의 행복'에 대해 질문하며 '고비자의 지혜로운 선택'을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p.48). 


#가성비 -> 가심비 -> 가잼비 / 가격 대비 소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달리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p.50) 


# 소비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주는 '행복'을 선택해야 한다고. 그게 옳은 선택이라고. (p.51) 


# 내가 사는 물건들이 내 삶을 채울 것이며, 내가 경험하는 것들이 내 인생을 만들어 갈 것이다. (p.52) 


#'미닝 아웃'과 '가치소비'. 내가 사고, 먹고, 입고, 신는 것들이 나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방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p.56)


#'N차 신상' 단순히 남이 쓰던 상품이 아니라 몇 번째 받아쓰더라도 새 것에 버금가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중고품은 이제 '신상품'과 다름없어졌다. 이러한 현상을 'N차 신상'이라 부른다. (p58) 


#한 가지 일만 잘하는 시대, 직장 한 곳에서 정년퇴직을 맞을 때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던 시대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다양한 재능과 경험을 토대로 세상에 이로움을 나눠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중략) 나는 무엇을 공급할 수 있을까? (p.59) 


# 소비가 주는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 로운 소비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멋진 '공급자'를 꿈꾸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p.60) 


3. 후회하는 인간 


작가는 '후회'를 통해 '진짜 원하는 것을 찾는 여정', '시행착오를 통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여정'을 알아보고자 했다. 자신의 후회담을 공유하며 사람들이 후회하려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찾아보고, 후회 속에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 원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아 선택을 후회했던 경우 후회를 받아들이는 방법, 현재 시점과 미래 시점에서 '후회의 결'과 '방향'을 일치시키는 방법, 결국 지향에 대한 보다 세련되고 온전한 선택의 노하우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은 선택과 후회를 끊임없이 거듭하며 성장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후회할 수 있는 확률을 줄여야 한다.(하지만 선택은 해야 한다)(p.67) 


#의무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균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우리는 대부분 의무적 자아가 한 일보다 이상적 자아가 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 더 많이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p.73) 


# '그것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원하는 것이 정해졌다면 탐색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탐색할 때는 내가 원하는 것을 더욱더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필터링하여 탐색하라. (중략) 탐색하기에서 제일 먼저 정해야 하는 것이 내가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설정하는 것이다. (p.78)


#헬스장을 이용하는 목적은 남들보다 싸게 이용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p.81) 

#후회를 하기 싫은 것, 두려운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 '완전해지는 과정'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꾸는 것이다. (중략) 내가 성장하기 원한다면 나의 선택의 결과들을 반추하고, 철저하게 후회해야 한다. (p.85)


4. 주도적인 인간 


작가는 '주도성'을 주어진 환경에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할 바를 끊임없이 자력으로 찾아나가는 것이라 개념화하고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주도성에 대한 개인의 정의와, 주도성, 자율성, 동기부여 능력 등의 연관관계를 작가의 경험에 의거한 사례로 엿볼 수 있다. 

(작가와 달리 나는 주도성을 어떤 일을 맡더라도 '주도적'으로 의미 부여하고 능력을 다할 수 있는 '주인의식' 혹은 '자기 인식' 나아가 '자기 확신' 등으로 개념화하고 있다는 것을 글을 읽으며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작가가 강조하는 주도성은 스스로 추진하고 이겨내며 도전하고 동기 부여하는 힘을 통해 가속도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아는 자기 인식과 자기 확신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타인의 의견이나 외부의 시선,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조력자 혹은 지지자와 함께 연대를 나눠가며 주도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가는 힘에 가장 전제되어야 할 것은 '사명'이나 '목적의식' 이 아닐까?) 


#내가 정의 내리는 주도적 삶이란, 인생의 순간들을 스스로가 선택하고 결정하여 지속적인 발전을 일으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p.95) 


#내가 정의 내린 주도적 삶은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p.97) 


# 내가 했던 일보다 크지 않은 보상을 받을 수도 있고 이러한 외적 보상에 때로는 무감각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지속적이면서 자발적인 내적 동기부여를 주어야 한다.(p.98) 


#자신의 유능감을 점증적으로 키우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움직이며,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간다면 우리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아갈 것이며 더 나은 인간이 될 것이다(p.111). 


5. 배우는 인간 


배움과 교육에 대해 아카데믹한 개념과 정의를 말 그대로 '배울' 수 있는 챕터였다. 교육공학을 전공했는데도 묵직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내용이 많았다. 작가의 배움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과 탄탄한 래퍼런스가 함께 제시되어 학술서에 담겨도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되는 챕터였다. 물론, 몇몇 개념들은 조금 더 알고 싶어서 논문이나 개념서를 뒤적이게 되기도 했다. 요약하면, 삶 속에서 경험을 통해 성찰하고, 배워서 알게 된 것은 관계 속에서, 삶 속에서 나누는 과정에서 정체성이 된다는 것(배워서 남 주면 나도 성장한다). 짧은 글 속에서 '삶'의 경험 속에서 '앎'이 일어나고 온전한 정체성이 내재화 '되어 가는' 삶, 앎, 됨의 과정이 사람됨이며 배움임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 인간의 삶과 배움의 과정을 돌아보면, 인간이 배움을 인식하는 방법을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우리가 선택하지 않아도 삶의 다양한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본능적인 배움으로써의 '깨달음'이다. 둘째, 사회적으로 강압되는 노동으로서의 '공부'이다. 마지막으로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즐거움으로서의 '배움'이다. (p.116) 


# 산업사회 이후의 배움은 사회적 생존 능력으로서의 새로운 '3R(문제 해결 능력 Relevancy, 인간적인 신뢰 Relational, 민주시민 Responsibility)'을 요구한다. (중략) 즉 인간은 배움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너는 무언가를 아는 존재'라는 '앎의 주체(knower)' 로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p.118) 


# 경험이 쓰임새가 많을수록 배움은 크게 일어나고, 몸과 마음으로 겪은 것이 클수록 배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p.123) 


# 세상을 잘 모르는 유년기/청년기 시절에는 사회적 참여를 위해 필요한 '무엇(What)' 이 주요한 배움의 대상이다. 이후 성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으로서 지식과 기술 같은 것을 삶에 적용하는 '어떻게(How)'에 대한 배움이 중요해진다. 중년 이후에는 삶의 다양한 사건들과 인간으로서 존재에 대한 의미인 '왜(Why)'를 발견하고자 한다. (중략) 세상을 바꾼 이들의 공통점은 이 세 가지의 공부가 한 방향으로 정렬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p.126) 


# 삶을 겪어 낸 몸과 마음의 성찰을 통한 배움은 묻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의미와 쓰임새를 발견함으로써 나타난다. (중략) 성장과 발전을 위한 생명력을 유지시켜주는 배움을 위해 '나는 지금 어떤 물음과 씨름하고 있는가?'를 언제나 살펴볼 필요가 있다. (p.127) 


# 좋은 것을 배우고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좋은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p.129) 


# 경험은 습득한 것을 천천히 가다듬고 기억을 통해 고정하는 감각 작용의 산물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근육 기억'으로서 무언가를 행함으로써 '느낌'을 통해 무언가를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p.130) 


# 언제나 삶을 경험하면서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배울 수 있는 습관이 더 많은 배움을 가져오고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다(p133) 


# 배움은 앎의 주체(knower)라는 정체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에 배우려는 사람만이 배울 수 있다(p.137)


# 배움은 삶의 면적을 넓히는 것으로 배운 만큼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삶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그것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되었든, 생활의 지혜가 되었든, 삶의 태도가 되었든, 사람 간의 관계가 되었든 삶의 경험 속에서 성찰하고 성장하며 온전한  의 정체성으로 성숙해지는 것이 삶과 앎으로 되어가는 '사람됨'의 모습이다. (p.138) 


6. 성찰하는 인간 


작가는 이 책에서 '거울을 보는 용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성찰은 흔히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다양한 계기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자기 합리화의 목적으로, 감정을 느끼는 방식으로, 행위나 경험을 반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타인의 피드백을 도구삼아 스스로를 돌아보는 행위는 그 계기가 무엇이었건 내면 자아를 성장시키는 성장의 행위가 된다. 작가는 성찰의 의미와 방법, 목적을 두루 전개하며 결국 흔들림 없는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잡기 위한 행위로 '성찰'을 지목하고 있다. 


# 반성적 사고란, 삶 속에서 곤란하거나 혼란스러운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중시하고, 그 문제를 연속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중략). 문제 상황에 봉착하는 단계를 시작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단계,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가설을 세우는 단계, 가설을 정교하게 다듬고 확인하는 추리의 단계, 마지막으로 실행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단계가 그것이다. (p.151) 


# 그저 연민의 눈으로 보거나 자기 비난의 눈으로 자책하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존재의 모습, 삶의 목표를 가지고 현재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행동 성찰은 주관성을 완벽하게 배재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 당시의 상황과 자신의 행동을 복기하면서 해야 하는 행동과 하지 않아야 하는 행동,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행동을 찾는다(p.153) 


# 진정성은 자아를 발견하고, 자아가 가지고 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의 진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중략) 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남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틀에서 자동적으로 반응하고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p.155) 


#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몸을 건강하게 사용하는 것이 마음도 건강하게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다. 건강하게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우선은 산책, 걷기, 달리기를 먼저 하자. 나의 뇌가 건강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나의 몸을 사용하는 것이다. (p.160)


# 자신만의 '심리적 공간' 은 '물리적 공간' 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p.164


# 사회적 공간에서 나의 페르소나를 보고/ 힐링 공간에서 나의 감정을 보고/휴식공간에서 나의 감각을 보자(p.164-166) 


7. 감성을 가진 인간 


 공감 결핍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너 나할 것 없이 외롭다. 가까운 이들의 소식도, 멀리 있는 이들의 소식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다만 노출되는 소식들은 모두, 소식을 전하는 이들이 편집한, 그럴듯하고 괜찮아 보이는, 혹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전하는 소식들이다. 통신기술의 발달과 SNS의 유행 등은 사람들의 가슴과 가슴이 닿는 진정한 공감 대신, 이미지를 드러내고 좋아요를 교환하며 마음이 나눠지는 형태만 향유한다. 소통 부재, 차별, 오해와 무시 등 여러 사회문제로 드러나는 공감 결핍의 해결책을 작가는 온전히 상대의 입장으로 들어가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진정한 공감'으로 찾고자 했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일 수 있는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흔히 온전한 공감의 '상태' 나 '행동양식'을 논하며 감성소통을 잘하는 요령이 있는 것처럼 관점을 전개하는 글이 아닌, 끝없는 노력의 과정임을 강조하고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는 누군가의 잘잘못보다는 공감의 메커니즘(인지적 공감/정서적 공감)의 균형이 깨진 것일지 모른다는 문제의식은 무척 흥미로웠다. 

 

 필자는 작가의 문제의식에 이 시대에 필요한 공감 요소 중 하나로 '인정'과 '존중'을 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초연결사회라지만 연결되어있는 상대의 면면을 알기 어려운 요즘 시대에서, 우리는 온전히 타인의 관점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노력이 의미는 있지만 어느 순간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이때 나와 다르더라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상대의 '일리'를 이 세상을 사는 나와 같은 존재로서 인정하는 태도 역시 공감의 한 갈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비록 다른 관점을 가진 상대라도, 그 관점이 윤리적으로 어긋나거나 타인에게 의도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관점이라면 그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한 고민과 경험의 결과물임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완전히 다른 서로가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 안전한 관계가 되는 것이며, 그를 위해 서로를 존중과 존경의 마음으로 인정하는 태도 역시 공감의 한 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아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뭘 원하는지 알아내려 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우리는 공존할 수 있다. p.175 


# 공감은 타인과 경험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누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유발하는 역동적이고 주도적인 역량이다. p.177 


# 인지적 노력 없이 상황을 해석하니 중심에는 '나'라는 사람이 있고 결국 '나에게 좋은, 내가 편한, 내가 원하는'이라는 3가지 작은 시각에서 현상을 바라본 것 아닐까? p.178 


# 인지적 공감이 발휘되어서 상대의 상황은 이해하지만 정서적 공감이 발휘되지 않아 같이 느끼지는 못하는 경우, 내지는 반대의 경우로 정서적 공감력이 높아 상대의 상황에 금세 동화되고 같은 감정을 느끼지만 인지적 공감이 부족해 상대가 처한 상황이나 처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p.185 


#자아 확장력이란 '다른 사람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힘'으로 정의 내려볼 수 있다. 즉 나와 타인을 별개로 인식하지 않고 연결된 존재로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p.194 


8. 스스로를 인식하는 인간 


 자기 인식은 성찰, 반성, 자부심, 자책, 자괴감 등 스스로를 돌아보는 행위를 통해 직면하고, 다시 결핍에 대한 보완을 반복하는 행위다. 그래선지 작가는 자신의 경험에 의거해 스스로 인식하는 행위에 대해 여러 차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은 하나의 소우주에 비견될 정도로 웅장하고 신비스럽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게 '나'라는 존재를 정확히 탐색할 필요가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작가의 인용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답을 찾아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과잉된 자의식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성장시킨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자의식은 어떤 관점으로는 '오만'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되는 것도 같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가 제안하는 효과적 자기 인식의 한 방법은 타인이 주는 '피드백'을 수용하자는 것.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직면은 때로는 뼈아프지만 그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직면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사람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바와 현재의 자기 자신을 착각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상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있는지, 과연 되고자 하는 나와 일치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음에도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경우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누구나 타인이 자기를 오해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타인의 삶을 자신에 투영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직면을 피하는 방어기제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진정한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방어기제 또한 알고 있어야 한다. 작가도 다양한 개인적 사례를 통해 자신의 방어기제를 드러냈다. 인간적인 면모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부끄러운 민낯이기도 했을 텐데 용기 있게 드러난 민낯은 어떤 관점에서는 너무 날것이라 읽기 미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확한 자기 인식을 위해 우리는 방어기제까지도 인식해야만 한다. 아무도 모르는 나와 나 사이의 장막을 걷어내는 일은 유행가 가사처럼 반복되는 '자의식', '자기애'가 아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결핍이나 단점까지도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나를 손가락질하며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자책이라 부르고, 내가 나를 과대 포장하며 인식하는 것을 자만이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자기 인식이 결핍을 극복하고, 이성적 영역에서 더 나은 나로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 


# 타인의 지식에서 정보를 얻고 발전을 꾀하려고 하면서 현재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려고 한다면, 논쟁을 싫어하는 겸손하고 분별력 있는 사람은 당신의 잘못을 알더라도 굳이 짚어 주지 않을 것이다 (p.224).  


9. 도덕적인 인간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고,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라고 한다. 가능성과 본성이 잘못 어우러지면 공존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어우러져 공존하기 위한 기본적 소양이 바로 도덕이다. 작가는 사서오경의 중용을 들어 '도'를 설명하였다. '도'는 사람의 본성을 회복하고 누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본성의 전제는 이기심인가? 이기심을 회복하고 누리기 위한 것을 도라고 볼 수는 없을 터다. '이타적 유전자'라는 책에서는 “인간 본성의 핵심은 이타적 유전자다. 공감, 배려, 친절, 정의, 희생, 정직 등은 이타심이라는 씨앗에서 피어난 꽃이다. 그 열매가 바로 컴패션(compassion)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passion)을 자신도 함께(com) 느껴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마음과 행동’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도덕의 '도'는 인간의 본성을 '공존'을 지향하는 인간의 이타적 본성으로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논어를 들어 '덕'을 설명하였는데, 흔들림 없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묵묵히 옳은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게 바로 도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작가와 필자의 생각을 어울러 도덕의 의미를 다시 추론하면, '함께를 지향하는 이타성의 본성을 회복하고 누리기 위한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말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 본성은 인간의 내면에 내재화되어 있을 텐데, 본성을 회복하는 길을 걷는 것은 왜 이리도 어려운가? 


작가는 도덕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탐욕과 이기심, 역차별 환경, 근시안적 사고, 부도덕의 악순환 등 4가지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전체적인 도덕의 장애물들을 읽어보았을 때, 필자는 도덕을 행하는 과정에서 올라오는, "손해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겨내는 것이 도덕을 행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싶었다. 흔히 탐욕과 이기심의 발동 동기는 단기적인 욕구다. 쾌락, 혹은 불쾌를 회피하고자 하는 욕구 등 단기적으로는 기쁨을 주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중요하지도, 가치롭지도 않은 욕구에 반응하느라 도덕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올라오는 욕구가 당장의 기쁨을 위한 것이기는 하더라도, 삶을 보다 입체적이고 광범위하게 살아가는 존재로서는 그것이 선(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결코 한 번에 되지 않는 오랜 시간 동안의 시야, 여유, 소양과 이성이 함께 필요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도덕은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이라기보다 더 넓어지는 길이며, 더 지혜로워지는 길이다. 


# 상생의 진정한 의미는 '삶의 순환이다. 내가 누군가를 도우면 도움을 받은 그가 또 다른 누군가를 돕는다. 그렇게 그가 또 다른 누군가를 돕다 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진다. p.243


# 도덕은 타인과 사회에 헌신하는 희생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도 윤택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보상이 담겨 있다. p.244 


# 우리가 할 일은 협력적 인간사회를 도덕적 생태계로 꾸미는 것이다. (중략) 하나의 도덕적 문화를 형성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중략) 그냥 하면 안 된다라는 규제나 제약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p.252 


10. 죽음을 준비하는 인간 


 "어떻게 살 것인가"의 고뇌와 죽음을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이상만을 쫒거나 끝없이 성장해야 한다는 욕망에 시달릴지 모른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소중한 이유는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삶과 맞닿아있는 죽음을 언급하며, 죽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삶에서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사유와 연결된다고 했다. 


 일 년에도 몇 번씩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뉴스에서도 생명이 어떤 사연으로 스러진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에 대해 어딘지 불편하다. 내 곁에 살아 숨 쉬는 그가 죽음으로 멀어진다면? 사랑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투병 중인 사람과 마주할 때 끝을 이야기한다든지 혹은 이미 떠난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불편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는 풍조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피하려는 예절 어린 배려일 수도 있지만, 마냥 피하는 것이 답이 아닐 수 있음을 작가는 외국의 문화나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미나 등의 화두를 소개함으로써 수면 위에 올리고 있다. 


 죽음은 결코 우리에게 멀리 있지 않다. 필자 역시 매년 영정사진을 찍는다. 영정사진 프로젝트, 다른 이름으로 Finally Me라는 촬영 프로젝트를 매년 운영하는 사진작가 차경은 사진에 찍히는 찰나의 얼굴에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어떻게 살았는지가 담겨있다고 했다. 과연 그렇다. Finally Me 촬영장에 들어서면, 그녀는 헤드폰을 건네며 자신이 정성 들여 녹음한 청각 콘텐츠를 듣게 한다. 재작년에는 갑작스레 맞게 된 교통사고를, 작년에는 나의 장례식장을, 올해에는 고이 눈을 감고 누워있는 나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5분 남짓의 코멘트를 듣고 촬영에 임했다. 매 년,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과정은 내게 이제 일 년의 리추얼이 됐다. '나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살아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은 지금 여기에서, 현재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사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며 주어진 시간이 얼만큼인지 알지 못한다. 당장 지금도 우리는 죽음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100년 뒤 우리는 이 세상에 없어요'라는 리처드 칼슨의 책에서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확실한 것은 100년 뒤에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알게 된다고 했다. 그것은 비단 내 주변을 위한 선택, 더 멋지고 더 훌륭한 미래를 위한 선택뿐 아니라 현재의 나를 위하는 선택,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는 관점이다. 


# 죽음을 마주하면서 좋았던 점이라면, 매일매일 살아 있다고 실감하면서 살게 된 거야. 너한테든 나한테든 하루의 가치는 같을 거야. p.261 


# 아무리 크고 아픈 비밀이라 할지라도 자주 들춰내고 수면 위로 올려 보면 의외로 견딜만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p.271


# 인간은 타자와의 만남이라는 토대 위에 살고 있으며, 나의 일부는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과 헤어질 때 필연적으로 나의 일부를 상실한다. 그것이 헤어짐이 주는 가르침이다. 헤어짐이 주는 가르침을 놓치지 않고 의미를 발견하는 작은 죽음 연습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가 가능하게 해 준다. p.275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자신이 맡은 화두에 대해서 아마추어다. 불안정, 소비, 후회, 주도적, 배움, 성찰, 감성, 인식, 도덕, 죽음 어느 화두더라도 맡은 화두에 대해 학문적으로 정통해 있지 않은, 다만 더 나은 삶을 위해 해당하는 화두를 조금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본 산업교육강사 집단이다. 그렇기에 읽으면서 이론적인 지식을 읽으며 도움을 받았다기보다, 한 생활인이 삶에 대해 갖고 있는 고뇌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에 대한 각자의 답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기회를 얻어봤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작가의 관점이었건, 동의가 되는 부분도 있었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금 더 관련한 지식을 찾거나 내가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 이 작가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는 관점의 차이를 경험하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책을 읽으며 작가들과 격한 토론을 하는 느낌을 받았고 덕분에 리뷰를 쓰는데 무척 오래 걸렸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토론도 하고 씨름도 하는 사이 나는 더 나은 삶에 대해 상당히 괜찮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여느 많은 책이 그렇듯이, 그 책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작가가 아닌 독자다. 독자로서 이 책을 읽었던 태도에 대해 나는 상당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쉽지 않은 화두를 갖고 길지 않은 글들로 나름의 생각을 드러내고, 많은 질문들과 토론거리를 전개하며 글을 쓰고 엮고 책으로 내어 주신, 인간 연구회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포 없는 리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