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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ul 23. 2023

다음 소희, 그리고 다음 우리.

진성리더십으로 만나는 존중과 환대의 영화상영회


삶과 죽음의 여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죽음은 결국 모두에게 반드시 한 번씩은 찾아오기에, 누군가의 죽음은 그 주변인을 각성시킨다.


영화에서 등장한, 평범한 고등학생 소희의 죽음은 그 주변인을 넘어 수십만 국내 관객들, 칸느에게까지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많은 이들의 각성사건이 됐다. (사)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에서는 11명의 작은 영화 보기 모임을 발판 삼아, 영화 제작자를 초대한 40명 규모의 상영회를 열기도 했다.

지방 특성화고 실습생에 불과했던 여고생 소희의 죽음이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각성을 준 이유가 뭘까. 나는 ‘위대한 개츠비‘ 가 떠올랐다. 춤동작을 실패하고 또 실패하면서도 일어나 다시 연습하는, 친구가 비난당할 때 분연히 일어나 친구를 감싸고, 업무가 부당하고 힘들 때 용기 있게 할 말을 하고, 함께 일하던 팀장의 자살을 덮으려는 회사의 압박에도 장례식참여, 비밀유지각서 서명거부 등으로 자신의 존재가 향하는 빛을 따라가는. 누군가에게는 무모할 수도, 욱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 법한 행동을, 누구보다 찬란한 빛을 발하며 드러내는 모습을.


그녀가 빛을 잃은 모습은 정작 그를 보호하고 받쳐줄, 가까운 존재들 앞에서였다. 손목을 그어 응급실에 실려가서 외려 황급히 달려온 엄마를 괜찮다며 위로할 때, 자신의 말을 듣고도 모른 척하는 엄마에게, 근속을 종용하는 교사에게 내가 무슨 일 하는지 아냐고 물어볼 때, 남자친구의 연락을 기다릴 때. 힘들게 일하는 중에도 빛났던 존재의 빛이 사라졌다.


누구나 각자의 빛을 갖고 있다. 소희의 죽음이 이토록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그녀의 빛이 스러졌다는 사실이 많은 이에게 영향을 줄 만큼, 그녀의 에너지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아생전에, 이 에너지의 상실감만큼이나 그녀가 그녀 본연의 빛을 발할 수 있으려면 소희에겐 뭐가 있어야 했을까. 우리는 얼마나 더 존재를 잃어야 서로에 대한 존중과 환대가 당연해지는 진화를 할 수 있을까.

영화상영회가 끝나고, 모두가 머리를 모아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모두 소희이고, 소희의 주변이고, 또 다른 소희를 잃지 않기 위해 어떤 시도와 행동을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결국 가까운 자들부터, 서로가 서로의 빛을 발견하고 알아주고 밝혀주는 존재로서 동반해야 하는 것이 첫걸음이지 않을까.


상영회의 말미에는 “Heal the world” 가 울려 퍼졌다. 가슴에서 켠 빛은 소희를 비추고, 우리는 존재를 비추는 빛이 됐다. 작은 파장, 큰 파장 할 것 없이 모이면 큰 빛이 된다. 맑은 에너지, 탁한 에너지 할 것 없이, 맑은 구심점을 중심에 두고 모이면 정화가 일어나고, 건강한 파장이 된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축하하고 서로를 환대하는 장에 존경하는 윤정구 교수님의 질문이 동심원이 되어, 저녁 진행자 김동희 도반님의 뜻깊은 요청이 울려 퍼졌다.


“우리 중 최근에 가장 가슴 아픈 일을 겪었던 분을 위로하는 자리가 있으면 어떨까요?”


누구를 지목하고자 한 질문이 아닐 것이다. 각자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빛의 주체로 서면서도, 내 앞의 누군가가 가슴 아픈 여정일 수 있음을 관찰하는, 존재의 각성을 일으키는 질문이다. 진성리더십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질문이 예사로 일어난다.


모두가 빛의 요정이 됐다. 더불어 삶에 뜻깊은 시간이 쌓였다. 감사를. 기쁨을. 희망을.

#다음소희 #진성리더십 #에무시네마 #한국조직개발경영학회 #김동하대표 #트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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