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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Sep 08. 2023

길치 주제에 브롬토너가 되다

매일 2-3킬로 헤매는 노매드 라이더의 행복하고 화나는 방황기

지난 7월 21일 브롬톤을 샀다.


자전거는 제법 탈 줄 알지만, 자전거를 산다는 것은, 자전거 길을 섭렵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본래 길눈이 없다. 어릴 적부터 길을 찾는 능력이 남들보다 아주 심하게 결핍되어 있어, 길 잃음에 대한 인정이 빠르다.


1. 미취학 아동일 때 부모님이 데려간 해수욕장에서 길을 잃고 빠르게 안전요원에게 내 발로 찾아가

“저희 아버지 성함은 000이시고 어머니 성함은 000이신데 길을 잃었어요. 방송 좀 해주세요.”

하고 당돌하게 요청하는 꼬마였다.


2. 중학교 때 그 복잡하기로 유명한 부평지하상가에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를 찾아 3시간을 헤매다 집이 나와서 그냥 약속을 포기한 적이 부지기수다. 그 이후 친구들은 나를 모시러(?) 나와줄 가이드를 하나씩 지정해주곤 했다.


3. 지하주차장 주차위치를 잊어버려 주차장을 하염없이 돌다 모든 차들이 빠져나 걸 때까지 기다려본 적이 있다. (보다 못해 내 차를 한번 보지도 못한 경비원 아저씨가 차를 찾아주셨다)


무튼 이런 내가, 브롬톤을 샀다.


네이버지도로 대충 길을 찾고, 스폿을 찾아 200m에 한 번씩 지도를 찾아가며 비틀비틀 자전거를 몰다, 자전거용 네비를 설치했다. 그런데 자전거용 gps는 핸들이 차보다 쉽게 돌려져서인지 오차가 크다.


제주도를, 강남 인근을, 헤매가며 누비고 다니고 있다.


어디를 가든 예상보다 30분씩, 3-4킬로를 헤맨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배운다는 건, 서툰 나에게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며 나는 (가끔은 화나지만) 이렇게 헤매는 순간순간이 재밌다.


오늘도 귀갓길, 언주역에서 집에 오는 4.8킬로 남짓의 길을 7.9킬로로 주파하며 헤매고 헤매 집에 도착했다. 헤맬 때 나는 언젠가는 집에 도착하게 되고, 결국은 옳은 길로 오게 된다는 굳은 신념이 있다. 결국은 다 잘 되어가는 길이라고.


분명 다 온 것 같은데 길이 보이지 않을 땐,


한 번 웃고, 집에 도착해 씻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고 주변을 차근차근 살피며 다시 한번 길을 잘 찾아본다. 집에 언제 도착할 것이냐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태도로 헤매는 가다. 헤매고 있는 시간조차 삶에선 소중한 순간들이기에. 축복이고 은총의 세렌디피티가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우리는 모르니까.


#길치브롬토너 #축복 #세렌디피티 #프로헤맴러 #길 잃음 #태도의 인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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