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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Nov 06. 2023

기록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마라톤

2023 JTBC마라톤 시각장애인 동반주 후기

어제 JTBC마라톤은 6번째 도전한 풀코스 마라톤이었다. 1년 만에 무려 6번의 풀코스 대회를 나갔다. 3번은 나를 위해서, 3번은 시각장애인 동반주로 나갔다.


비 오는 아침, 함께 달린 김상용선생님도, 나도, 젖은 채로 바람 많이 부는 날의 달리기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기에 보온에 신경을 써야 했다. 다행히 비는 출발할 시점쯤엔 그쳤다. 큰 대회라 출전한 주자들이 많았다. 대회 측에서 배려해 주어 엘리트선수들 바로 뒤편, A그룹 가장 앞쪽에 섰다. 당연한 거지만, 앞에서 출발했는데도 페이스가 빠른 A그룹 주자들은 시원하게 우리를 추월하며 나아갔다. 페이스에 말리지 않고, 우리 달리기를 하자며 페이스를 6:00으로 맞췄다.

주변에서 응원을 듬뿍 선물로 받았다. 시각장애인 동반주 특성상 우리가 이리저리 주변을 피하며 달릴 수가 없기 때문에 큰 소리로 “지나가겠습니다. 조금만 비켜주시면 감사합니다” “시각장애인 동반주입니다. 비켜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달린다. 부탁을 드리지 않아도 뒤에서 함께 달리며 가드를 자처해 주시는 분, 큰 소리로 “빛 나눔 파이팅” 외치시며 지나가시는 분, 지나는 행인과 응원단들의 축복이 온몸에 쏟아진다. 그저 앞으로 달려 나갈 뿐인데 존재만으로도 응원을 받는 순간이 감사하다.


이번 풀코스 마라톤에서는 25킬로 지점에서 빛 나눔 우병선 러너님, 30킬로 지점 빛 나눔 박정인 러너님이 합류해 동반주 해주기로 했다. 우병선 러너님은 대회 지원봉사를 포기하고, 왼쪽 고관절 부상이 있어 내심 걱정하는 나를 도와주기 위해, 박정인 러너님은 10킬로 가이드러닝을 마치고, 전철을 타고 달려와 30킬로 지점 강동역에서 합류해 주었다. 25킬로 지점에서, 30킬로 지점에서 언니들을 만날 때마다 어찌나 반갑고 귀하던지!

안타깝게도 김상용선생님은 25킬로 지점에서 왼 다리에 쥐가 났다. 다리가 무겁고 뻣뻣해 고통을 호소하시면서도 끝내 걷고 달리며 완주하셨다.


”예림씨, 먼저 가는 게 어때? 지금 컨디션으로 쭉 가면 예림 씨는 개인 최고 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쥐가 나서 걷다 뛰다 하며 가게 될 것 같아. 그러면 너무 느려질 것 같은데. “


”선생님, 저는 기록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함께 가는 게 제겐 축복이고 행운이에요. 선생님 모시고 달리는 게 기록보다 더 중요하고 제겐 행복인 일이에요. “  


동반주자들이 추울까, 혹여 자신에 맞추느라 힘들지 않을까 미안해하시면서도 끝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를 해내시는 모습에 존경을 보내며 달렸다. 괴로움을 호소할 때 정인님과 병선님이 격려와 응원, 독려하며 보내는 에너지에도 깊은 감사를 느꼈다. 종반으로 갈수록, 응원도 많아지지만, 선수들의 고단함도 깊어진다. 서로 고단함을 응원하며, 독려하며, 농담을 건네며 웃는 순간이 방울방울 추억 속으로 깃들었다. 떠올리며 많이 웃을 순간들.

골인 지점에서 모두 손을 잡고 번쩍 만세를 부르기로 했다.


”나 도착하면 주저앉아 엉엉 울 거 같은데. 이 나이 먹고 무슨 광명을 보겠다고 이렇게 달리나. “

”무슨 소리예요 선생님~ 너무 뿌듯하다 나 너무 대단했다 하며 활짝 웃으실걸요. “



넷이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도착했을 때, 나는 최고 기록을 낸 골인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완주의 순간을 추억에 담을 수 있었다. 고관절 부상은 온 데 간 데 없고, 몸은 가볍고 상쾌했다. 풀코스 마라톤을 뛰었나 싶을 정도로.

가까운 지인도 잊지 못할 동반주를 했다. 15킬로 지점까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에너지를 한껏 더해 주었고, 완주 지점에서는 장하다며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렇게 동반주를 하는 체력과 에너지를 키울 수 있었던 건, 각성신, 가까운 지인의 공이 크다. 깊이 감사를.


잊지 못할, 감사하고 감격했던 순간.


나와 가까운 지인은 등에 투병 중이신 바바차코치님의 응원 배너를 달고 달리기도 했다. 대회 내내, 흠뻑 받은 응원의 에너지가 바바차코치님께도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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