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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Oct 13. 2023

현존하는 코칭, 동반하는 코치

안심, 인정, 지지, 존중. 코칭을 알고 달라진 삶의 태도에 대하여.

 요즘은 존중과 리더십을 말할 때 코칭을 말하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코칭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필자 역시 코칭을 엿보다 기어이 이 바닥(?)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인간은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과거와 미래를 돌아보고 준비하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 과거에도, 미래에도 자기다울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정제하는 시지프스의 바위를 굴린다. 설사 자신의 바위가 절벽으로 굴러 떨어져 다시 시작점에서 끌어올려야 할지라도.


 자신의 바위를 전심전력으로 밀어 올리는 숙명의 인간은, 그럼에도 바위 너머의 길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 바위를 있는 힘껏 밀어 올리는 사람에게는 바위가 전부라 바위를 전심전력으로 밀지만, 바위 너머의 절벽을 보지 못해 전심전력으로 바위를 시작점으로 다시 떨어뜨리기도 한다. 바위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몫이지만, 누구도 대신 밀어 올려주거나 함께 밀어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나 혼자 바위를 미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자신의 바위를 굴리면서도 옆 사람과 함께 기꺼이 동반하겠다 발걸음을 딛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코치협회에서 정의하는 '코칭'의 정의는 '고객의 개인적, 전문적 가능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영감을 불어넣고 사고를 자극하는 창의적인 프로세스 안에서 고객과 파트너 관계를 맺는 것'이다. 코칭을 한다는 것은 고객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사고를 자극하기 위해 기꺼이 고객의 여정에 동반한다는 것이다. 물론 바위를 밀어 올리는 존재로서의 노고와 성의, 노력에 부응하며 건강한 거리를 두는 존중감은 코치에게 필수적이다. 어디까지나 고객은 자신의 바윗돌을 밀어 올리든, 옆으로 굴리든, 끈으로 묶어서 끌든,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국제코치협회(ICF)의 '인간관' 역시 모든 사람을 온전하고(Holistic), 해답을 내부에 가지고 있고(resourceful), 창의적인(creative) 존재로 보는 관점을 명시하고 있다.


  온전한 답을 내면에 갖고 있지만, 내면을 만나고 찾는 여정에 기꺼이 코치를 초대하는 존재가 고객이라면, 고객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면서도, 삶의 주도권은 고객에게 있음을 기억하고, 고객이 개인이든 단체든 최선과 최상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내면의 소리를 보다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동반하는 역할을 맡는다.


 궁극의 이기심은 이타심이며, 궁극의 자립심은 연대감이다는 말이 있다. 고객이 홀로서기 위해 코칭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홀로 또 같이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가 지혜를 찾아가는 여정의 진리를 담고 있다. 내면에 담긴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고객은 자신을 믿고 자신이 가장 최선의 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확신과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혼란이 많은 시대에서 자신의 결정을 계속해 검증하고 싶고, 어떤 모습과 행동, 가치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기다움인지에 대해 혼란스럽다. 누구나 온전하고 탁월한 답을 가진 존재이지만, 이러한 혼란과 불안, 복잡성을 감당하며 자신의 내면을 오롯이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미래를 마주한 불안, 자신의 과거 속에서 경험한 유한성을 떠올리는 취약성, 자신에 대한 불신감 등 내면에 담겨 있는 현명한 답을 찾는 여정은 마치 성 안에 갇힌 공주를 구출하러 떠나는 흑기사의 여정만큼이나 험난할 것이다. 코치는 흑기사가 타고 가는 말이 되기도 하고, 여정 속에서 입은 부상을 낫게 하는 힐링 포션이 되기도 하고, 흑기사의 여정에 동반하는 동료가 되기도 한다. 말, 힐링포션, 동료는 결코 흑기사의 여정에서 목적지를 설정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저 그가 가는 길을 동반하면서, 때로는 조금 더 빠르게, 쉽게, 아픔을 낫게, 든든하게 존재의 힘을 받쳐줄 뿐이다.


  코치의 업을 바라볼 때, 다양한 메타포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필자는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산초판사'의 노래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나 돈키호테 라만차의 기사

산초: 난 산초 나는 산초

운명이여 내게 오라

산초: 어디든 끝까지 따르리

거친 바람이 불어와 나를 깨운다

산초: 주인님을 보좌하는

날 휘몰아 가는구나

산초: 자랑스러운 길동무

그 어느 곳이라도 영광을 향해 가자


 코치는 노래가사의 산초처럼, 자신이 돈키호테를 동반하는 길동무라는 정체성을 명확하게 인식하면서도, 돈키호테가 선택하고 가는 길이 존재차원에서 확신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의욕에 앞선 돈키호테가 현실적인 부분을 놓치거나 무모함이 과하다 느낄 경우 적절한 질문을 통해 현실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챙기고 준비해야 할 것들을 챙길 수 있게 돕기도 한다. 돈키호테는 산초의 존재로 하여금 자신의 갈 길에 확신을 가진다. 세상 모든 이가 만류하고 비난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길을 갈 수 있도록 확신을 더해 주는 이가 산초다. 주종관계를 제외하고서는 코치로서 고객을 만나는 순간, 나는 산초를 기억하고 싶다. 아마 산초가 없었다면, 부패한 세상에서 우아하고 고결한 기사도 정신을 실천하고자 했던 돈키호테가 자신의 길을 걷겠다 결심하고 걸어가는 여정은 보다 더 험난했을 것이다. 세상의 기준과 보편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집단적 문화관, 관념 등으로 빚어진 혼란을 벗고 자기 주체의 기준과 실행계획을 세우며 진정한 자기다움을 찾고, 자신에게 가장 옳은 결정을 이끄는 여정은 쉽지 않지만 분명 가치 있는 길이다. 그 가치 있는 길의 여정을 동반할 수 있는 역할 역시 감사하고 귀한 여정일 것이다. 그를 업으로 하는 여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도 코치로서 누군가의 산초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글을 맺는다.  


https://youtu.be/RgL7_tvVa9 A? si=LkMI_yX-RGsmfU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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