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림 Dec 26. 2023

Be the best version of you!

반바퀴묵상 14 (55번, 24번) 23.12.18

23.12.18. #반바퀴묵상 #55번 #24번

#55번

우리 행성의 진화적 이야기의 어느 시점에서, 의식은 물질적 영역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립니다(두 번째 이온). 그런 다음 기억이 돌아오고 신화는 의식이 물질적 영역을 변형시키고 모든 차원을 자기 자신에게 통합시켜 서사시적인 진화의 호를 완성함에 따라 천국으로 돌아옵니다(세 번째 이온).


#24번

1) 오직 자신의 무지를 기꺼이 마주하는 사람만이 이 다리를 건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과 결코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시작됩니다. 이 내면의 정직이 발명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2) 형태의 세상으로 계속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실제로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몸은 태어나고 죽으며 그들의 구체적인 인식 기능은 그들과 함께 죽습니다.

하지만 그 밑에 있는 전반적인 의식은 계속됩니다. 그것은 말이 없고 죽지 않으며, 만질 수 없고, 형태를 초월합니다.


_________________


유전자키 24번의 그림자는 중독이다. 내가 건강코치가 된 계기는 고백하자면 식이장애였다. 2017년 9kg을 굶고 애쓰며 감량하고서 그 몸무게에 갇혀버렸다. 무엇을 먹을 수도, 무엇을 안 먹을 수도 없었다. 새 모이만큼 조금씩 먹다가 생리가 끊겼다. 임파선에 염증이 생겼다. 자율신경계가 고장 나 화르륵 더웠다가 오들오들 추웠다. 음식을 먹으면 살이 찔까 봐 걱정이 되어 무엇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왜 살이 찌면 안 되는 지도 딱히 이유를 알지 못하고 그저 굶었다. 기력이 없어 예민해졌다. 기력은 없는데 하는 건 많았다. 2017년에는 오채원연구소 공감 대표 오채원선생님이 진행하는 세종실록 스터디에 참여했다. 세종실록 전권을 읽고, 매주 발제와 토론거리를 뽑아내 토의하고, 선생님의 강독을 통해 세종시대의 군신 간 국정운영에서 오늘의 삶을 통찰하는 혜안을 얻었다. 평일 저녁과 주말시간에는 꼬박 요가수련에 참여해 치유요가협회에서 RYTK300 자격증을 따고, 팀 퍼실리테이션과정을 세 과목이나 수료했다. 기업교육도 꽤 많았던 시절이라 한 달에 1박 2일 과정을 3~4개씩 진행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다 해냈나 싶다. 당시 세종실록 강독이 끝나고 수료식에서 선생님은 참여자들에게 실록의 공신들의 이름을 딴 상을 하나하나씩 출력해 주셨다. 내가 받은 상은 '허조'상이었다.


허조는 세종시대 황희와 맹사성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조선 초기 최고 명재상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직언’과 ‘충성스러운 반대’를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세종시기 ‘백성을 위한 급진적 개혁 정책’이 시행될 때마다 오로지 홀로 나서 개혁이 가져올 수 있는 폐단과 위험성을 지적했다. 또 명분과 명분이 부딪힐 때에는 대세의 반대편에 서서 ‘다른 대의’가 존재함을 주장했다. 오죽하면 세종이 국무 회의 중에 "허조는 고집불통이야"라고 말하며 허조의 의견을 조정하여 반영하였겠는가.

한 편으로 다시 말하면, 세종실록 중에 참여한 내 모습이 얼마나 까칠하고 유연성이 없었으면, 선생님이 허조상을 주었을까. 제대로 먹지도 않고, 제대로 쉬지도 않고, 그저 "열심히"를 향해 생명력을 소진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느 날엔가 귀갓길에 운전을 하다 코피가 났는데, 코를 막고 가다가 숨이 막혀 잠시 갓길에 차를 세워야 했다. 그리고, 그대로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새벽 1시였다. 이 당시에는 운전을 하다 옆길로 새기도 많이 샜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늘 신호위반, 속도위반 딱지가 날아왔다. 운 좋게 먼저 발견하면 빠르게 납부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전 남편이 본  날이면 그냥 "나는 투명인간이다" 하며 온갖 욕을 먹는 날이었다.


그러다가 하루 서러움과 피로감이 복받치던 날엔 화가 나서 음식을 많이 많이 먹었다. 왠지 화난 날 당기는 음식은 늘 달달하고, 보들보들한, 케이크나 아이스크림 같은 식감의 음식들이었다. 한두 개 먹고 멈추면 좋았을 텐데, 화를 내며 먹다 보니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먹어치우거나, 큰 케이크를 한 조각씩 잘라 야금야금 다 먹어버리곤 했다. 소화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 그렇게 먹고 나면 꼭 먹은 음식을 토했다. 그리고 죽은 것처럼 잠들었다. 먹고 토하고 잠들기를 반복하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겉보기에는 똑똑하고 진취적이고 야무져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달달한 음식 중독에 사로잡히고, 자기 계발 중독에 사로잡혀 강박의 시선으로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절름발이의 삶을 살고 있었다.

당시에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작은 사이즈의 옷을 피팅하는 날에는 안 그래도 마른 몸의 단점을 굳이 찾아 속상해하기도 했다. 이 모든 행동이 다 "멋지게 보이지 않으면 죽는 병"의 중독증세였다.


그렇게 나를 싫어하던 나날들이 끊어진 건, '다노'라는 회사에 코치리쿠르팅매니저로 입사하고부터다. '다이어트 노트'라는 말의 줄임말인 '다노'는 한때 미국 유학생활을 통해 20킬로가 찌고, 다시 감량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노 대표가 직접 느꼈던 몸과 마음, 삶에 대한 태도를 다이어트 습관 코칭 서비스에 녹인 스타트업 회사다. 성인교육, 요가, 다이어트 영양학, 심리상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지식들을 바탕으로 다노의 코치 교육과정에 녹이고, 다노의 기업철학에 공명하다 보니, 날씬한 몸이 보여주는 몸무게가 아닌, 사람이 보였다.


 <Be the best version of you!>라는 다노의 슬로건은 매일 자신이 어떤 여정을 살든, 자신을 사랑하는 이상은 계속해서 나아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진실의 명제 그 자체다. 강박에 빠져 자기 학대를 반복하는 중독은 끝내 자신을 괴롭히는 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중독을 반복하는 자신을 싫어하다 못해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면, 그 중독이 과연 나쁜 것이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사실은 중독을 통해 몰입하고, 심취하고, 각성해 배울 수 있던 반대급부가 더 많다. 중독을 알아차리고, 중독을 통해 배웠던 것들을 내 것으로 수용하고 난 다음, 나라는 존재는 무언가에 몰입해 심취하는 성향을 발견하고, 곧장 존재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자신을 좋아하는 방법들을 발명해 낸다. 이것이 24번의 그림자(중독) - 선물 (발명)에 이르는 여정이다. 이는 55번 유전자키에서 제시하는 행성의 진화적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 "우리 행성의 진화적 이야기의 어느 시점에서, 의식은 물질적 영역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립니다(두 번째 이온). 그런 다음 기억이 돌아오고 신화는 의식이 물질적 영역을 변형시키고 모든 차원을 자기 자신에게 통합시켜 서사시적인 진화의 호를 완성함에 따라 천국으로 돌아옵니다(세 번째 이온)."


코칭을 배우고, TRE를 배우고, 통합의학을 배우고 있는 여정 속에서 좋은 것을 배우는 것은 결코 좋은 경험만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장하고 각성하는 여정은 때로는 나의 그림자에 직면하고, 미처 돌보고 치유하지 못한 내면아이를 만나면서 힘든 나를 마주하며 치유작업을 이어가기도 한다. 마치 다른 옷을 입기 위해서는 지금 걸치고 있는 옷을 벗는 여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물론 벌거벗은 나를 마주하는 여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 여정을 거친 존재는 찬란한 옷을 선물받는다. 과거의 누덕누덕 기워지고 찢긴 옷이 아닌, 설명이 필요없고 서술이 필요없는, 침묵으로도 그 빛이 여실히 전달되는 찬란한 옷을.



매거진의 이전글 사심 없음의 풍요로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