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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ul 10. 2020

어떻게 '기대'를 관리할 것인가

인생고민들. 주절주절.

2008년부터 강의를 했다. 사회생활의 초입부터 강의를 했고, 처음의 내 콘텐츠는 강연이라기보다는 실무지식이 많았다. 대학 졸업 즈음, 진로를 결정하던 시절에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몰랐다. 은행에 다니셨던 아버지를 쫓아 은행원이 되고 싶었고, 경제학을 전공했고, 꽤 재밌게 공부했다.


 학부에서 짧게 경험한 경제학은 '선행'과 '후행'의 경제지표들 사이에 숨은 논리구조를 체인처럼 얽혀있는 여러 가지 맥락과 환경요소들 간의 연관관계로 설명하는 학문이었다. 왜 미국에서 토마토가 풍년이면 피클 가격이 오르는지, 감자가 잘 되면 밀가루 판매가 줄어드는지 설명하라는 시험문제가 출제되었다. 꽤나 재밌게 공부했는데, 심지어 학부 졸업을 했는데 논문을 썼다(학부논문이라, 어딘가에 게재되거나 공개되지는 않았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상승하면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이 생기는지에 대한 논문이었다.




 귀엽게도, 스스로를 경제학도로 칭해놓고, 상경계열의 금융권으로 구직했는데 번번이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적성에 안 맞았다. 나는 직관적이고, 어느 정도는 창작력이 있고, 꼼꼼력은 부족하다. 그나마도 임기응변력이 조금 있고 손이 빠른 편인데, 빠른 손으로 사고를 치고 임기응변으로 어찌어찌 수습은 하지만 자잘한 실수를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위험한 인재였다. 그리고 금융권에서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것 외에는 나의 창작력(?)을 보일 수 있는 파트가 많지 않다. 게다가 그 어떤 직업군보다 꼼꼼력이 필요한 필드다. 당연히 우수수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숱한 고배 끝에 겨우 들어간 회사가 국내에서 명품 브랜드를 유통하는 "브루벨 코리아"라는 명품 총판 회사였다.  


 LVMH 계열의 명품 브랜드 총판이었는데 나는 Givenchy 브랜드의 화장품 부문 어시스턴트를 맡았다. 지방시라는 브랜드에 화장품 제품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여기는 그야말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였다. 옆 팀은 부르주아, 앞 팀은 디올, 나는 지방시, 뒤 팀은 록시땅. 패션 뷰티업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구성원들은 매일 패션센스를 자랑했다. 나는 좀 위축이 됐다. 그나마 재밌었던 일은 신제품 라인을 판매할 때 판매직원들이 습득할 셀링포인트를 한국어로 번역해 교육자료를 만드는 것이었다. 신제품을 설명하는 불어, 라틴어 기반의 아름다운 영어 형용사가 가득한 영문서를 한글로 번역하고, PPT로 작업해 집합교육을 하거나, 면세점 매장에 방문해 전달교육을 했다. 의외로 내가 교육에 적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명품을 다루는 회사였지만 월급이 적은 편이었다. 사내강사를 뽑는 몇 개 회사를 거쳤다. 그리고 대학교 때 대학생 인턴을 하며 뵈었던 팀장님의 부르심으로 KT와 인연을 맺었다. 이화여대에 스마트 디바이스 체험공간을 신규 오픈했고, 공간의 운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공간의 태생이 아이폰을 중심으로 새롭게 시장에 소개되는 스마트 디바이스의 특징, 사용법을 교육하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단순히 강의를 넘어 공간에 대한 이해까지 입체적으로 해나가고, 함께 일하는 멤버들과 팀워크를 쌓아나가는 경험을 했다(물론 쉽지는 않았다). 사회초년생과 대리급 사이의 어정쩡한 내공으로 분에 넘치는 일을 많이 했다. 물론 한계도 많이 만났다. 1년 정도 공간을 운영했고, 교육팀이 사내에 없어 세팅할 예정이라는, 사회에서 만난 선배 강사님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노랑풍선 여행사로 이직을 했다. 거기서부터는 신제품 교육, 세일즈 교육, 실무교육, 직무교육, 혹은 디바이스 교육 등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었던 교육에서, 답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는 인재교육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강의를 하는 강사로 산다는 건, 유형화할 수 없는 지식을 콘텐츠로 빚어내고, 강의 직전까지 콘텐츠에 대한 기대를 상승시키고, 강의하는 중에 청중이 듣고자 했던, 혹은 청중에게 예기치 못한 유용성(정보, 감동, 동기부여 등)을 선사하여 기대를 충족시키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교육은 As-is와 To be 사이의 갭을 줄이는 일이다. 어디에 나와있지 않은 내 경험 기반의 정의가 그렇다. 나는 관념을 교육하더라도 관념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사이의 How to가 잘 이루어지도록, 실천의 사다리를 놓는 일이 강의고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사나 청중에게 사다리를 놓을 지반이라도 잘 닦아 놓으려면, 기대감을 잘 세팅해야 한다. 기대를 세팅하려면 고객이 처해 있는 맥락을 상상해야 한다. 이들에겐 뭐가 필요할까. 뭐가 아쉽고 아플까. 뭐가 핵심 문제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인과의 논리(사실 개연성 없이 인과로 '해석'되는 논리일 수도 있다)를 세워 버릇했던 경험에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상상력에 현실적 개연성을 담아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도출해 냈던 대상의 예상문제-혹은 그들이 해결해주었으면 하고 요청했던 문제들 모두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해결의 실마리 정도는 얻어갈 수 있다는 기대치를 세팅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대치를 해결하는 뭔가를 작게라도 줄 수 있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강의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랬다.


 어쨌거나, "당신들이 필요로 하는 걸 제가 줄게요" 하는 형태의 기대치를 세팅하고, 그걸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있는 것 없는 것 닥닥 긁어내어 강의안을 짰다. 그걸 12년을 했다. 경험을 긁어내기도 하고, 책과 미디어로 배운 지식을 긁어내기도 하고, 그 두 가지를 조합하기도 하고, 명상과 단상 사이에 일어나는 통찰을 가끔 담기도 했다. 어떤 강의를 하건 내 경험은 밑바닥까지 닥닥 긁어져서 강의안에 담겼다. 그러니까. 치열했는데, 겉으로는 우아한 척 고상한 척, 기대를 세팅하고 기대 이상의 역량을 가진 강사처럼 보여야 했다. 사실은 매일 밑바닥이 털렸는데.


지금도, 사실은 바닥을 닥닥 긁어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온라인 강의는 변수가 많고 경험치가 적다. 게다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교육은 몰입이 높은 대신 청중의 호흡이 짧다. 다시 말해 계속해서 볼거리와 들을 거리, 통찰과 인사이트를 던져줘야 그나마 끝까지 참여한다는 뜻이다. 존경하는 지도교수님께서 말씀하시건대, 온라인 강의가 강사의 콘텐츠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는 데다, 온라인 강의의 특성상, 분위기로만 휘어잡는 빈약한 콘텐츠의 강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치열한 바닥에서 나는 또 기대치를 세팅하고, 그에 부응하기 위해 타임라인을 치밀하게 짜고 있다. 그리고, 왜 나는 이렇게 치열하게 기대를 세팅해 나를 몰아붙이는지 고민하고 있다. 적당히는 안 되나. 그저 기쁠 만큼만 하면 안되나. 그리고 그건, 둔탁한 시선에서 오는 막연한 투덜거림이고, 사실 기대를 놓고 볼 때, 치열하지만 덜 고달픈 무언가는 디테일한 업무방식의 변화에서 거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차피 일은 해야 하고, '맥락에 맞는 기대 세팅 - 충족'이라는 일의 방식이 틀리지는 않았다면, 일하는 시간과 방법, 협업하는 방식 등을 내가 존중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내가 나에게, 타인(클라이언트)이 나에게- 조금 더 디테일하게 쪼개 보는 것이다. 가령 "당신들이 필요로 하는 걸 줄게요" 단, "언제부터 언제까지" "제게 000을 얘기해주세요. "이때부터 이때까지 피드백을 나눠봐요" "우리는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머리를 맞대는 과정이에요" "혹시 오류가 있더라도 수정하거나 보완할 테니,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피드백은 이런 방식으로 나누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등등.

 내가 세팅해놓은 기대치가 높으면 빠르게 소진되어버린다. 클라이언트는 내가 세팅한 기대를 그저 자신도 공유했을 뿐이기 때문에, 그에 허덕이는 나를 의아하게 볼 수도 있다. 그러면 말만 번드르르하게 앞서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말을 번드르르하게 해 놓았더라도, 그를 실행에 옮기면 된다. 하지만 소진된 상태에서는 그게 쉽지가 않다. 그리고 나는 단단해 보이는 외면에 비해 멘털이 약하고, 생각보다 잘 소진되는 편이다. 단지 멘털을 강하게 관리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공부했을 뿐. 나라는 캐릭터 자체가, 보이는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의 갭이 크다. 그러다 보니 보이는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를 많이 쓴다. (그러게 왜 큰소리를 미리 떵떵 쳐가지고.)


기대 관리는 디테일로 한다. 내가 나에게 걸었던 기대, 상대가 나에게 걸게 했던 기대. 그걸 다 쫒아가려다 보니 내가 세팅한 기대인데도, 내 등골이 휜다. 등골이 휘면 오래가지 못한다. 번아웃을 만나는 순간에도,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나이를 먹으면 어느 순간, 기대치 세팅에 대한 경력도 높아져서 정신 차려보면 내가 내 목에 칼을 걸었나 싶을 정도의 어마 무시한 기대를 세팅해 두는 경우도 있다. 이런 때 나는 실수를 더 많이 한다.


이번 강의를 마치면, 조금 쉬어야지.

강의를 준비한다고 또.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닥닥 긁고 있다.
뇌에서 연기가 나는 느낌이다. 새벽 3시 반을 향해 가는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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