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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Feb 14. 2024

네 번째 감정 돌보기: 소외감이 느껴질 때 자전거 타기

용기 내어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어 보는 연습 

네 번째 감정 돌보기, 소외감

 

 소외감 하면 흔히 ‘따돌림받는 상태, 혹은 그런 상태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비슷한 면을 최대한 많이 찾고 때로는 맞추면서 어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자라면서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서로 맞추며 어울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타인과의 조화로운 삶, 원만한 인간관계가 우선시 되면 자신만의 개성, 취향을 다른 사람들에게 맞춘답시고 억압하고 누르기 쉬워집니다. 나만의 시간과 함께의 시간을 조화롭게 내 삶에 분배하는 균형. 이 균형이 깨지면 깊은 소외감이 찾아옵니다.  주변에서 우리는 ‘소외감’에 중독된 사람을 자주 보게 되기도 합니다. 따돌림을 당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남들을 소외시키는 경향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따돌림의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을 다른 영역에 두고 분리시킵니다. 좋은 관계를 위해 가까운 이들과 엮여 있는 삶 속에서 자신의 주관을 억압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높은 사람들은 외로움을 배로 느낍니다. 마치 가까운 사람들이 조건부로 자신을 허용해 주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신을 허용하지 않고 억압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인데도 말이죠. 


“코치님, 좋은 기회로 학업을 다시 이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가족들에게 미안해요. 아이들은 아직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고, 남편은 제가 가정과 학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너무 힘들게 무리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곤 합니다. 서운하기도 하고, 나 혼자 이게 뭐 하는 건지 싶어서 의욕이 생기지 않아요.”


 A님의 고민입니다. 내가 잘하고 싶은 욕망이 커지면, 이 역할들은 나를 24시간을 부지런히 살게 만듭니다. A님은 엄마로서, 아내로서, 학생으로서의 역할로 자신의 시간을 꼼꼼히 채웠지만 왠지 헛헛한 마음을 나눠주셨습니다. 


내가 잘 해내고 싶은 기준이 내가 가진 역량, 자원, 에너지 수준보다 높으면 나는 소진됩니다. 자기 자신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나를 만나기 어려워질수록 나의 노력과 열정은 길을 잃어버립니다. 타인이 요구하는 역할을 최선을 다해 해내고, 그에 대해 좋은 피드백을 받을수록, 내가 꽁꽁 숨겨 놓은 나는 더욱 소외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좋은 반응을 주면 줄수록 소외감의 크기는 커져버리는 모순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역할 투성이의 누군가가 되어 온전히 자신으로서 살 마음의 여유도, 물리적 공간감도 빼앗겨버리고 맙니다. 주어진 역할을 차질 없이 수행해 내는 것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목적이 명확히 세워지지 않았고, 목적이 타자와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만 에너지를 쓰다 보면, 지친 나를 챙길 에너지는 소진되어 버리고 맙니다. 매일 도시락을 싸서 집을 나서지만 주변의 배고픈 이들에게 다 나눠주고 정작 나는 굶주리는 꼴입니다. 

소외감이란 개인과 집단 사이의 경계선에서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반응의 내적 경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헬스조선 기사, 자기 소외중독 2007.2.12 기사 발췌) 


 ‘나'의 본질을 알아차리고 챙길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 밖에는 없습니다. 나를 알아차리고 챙기는 일은 나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과도 일맥 상통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역할만 갖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 역할들이 요구하는 수많은 할 것 들에 지치는 순간,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밀려오는 것이죠. 사실 이런 생각은 아주 좋은 시그널입니다. 오직 나만 고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이나 상황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추는 나를 벗어나, 자기 자신과 마주할 시간입니다. 


모든 걸 훌훌 버리고 떠나면 소외감에서 회복될 수 있을까

 

더불어 사는 사회적 인간으로서 진화하는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름의 역할을 배분하고 수행하며 공존하는 질서가 생겼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자녀의 역할들은 누군가가 가르치고 알려주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저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생기며 서로 간 공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역할을 찾고 생존의 노하우를 공유하다 보니 서로 쉽게 접근이 가능한 역할을 암묵적으로 찾았던 것입니다. 활동성이 크고 수렵, 어로, 채취능력이 뛰어난 누군가는 가족의 먹을거리를 잡아오는 역할을 맡습니다.  잡아온 먹을거리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조리하고, 살림을 꾸리며 가족을 돌보는 것은 집안에서 주로 가족을 돌보는 누군가가 담당하게 되겠죠. 나이를 먹음에 따라 삶의 노하우를 공유하면서도 손자, 손녀에게 부모가 주기 어려운 질서와 가업의 뿌리를 가르치는 역할은 조부모의 역할입니다. 자라는 동안에도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집의 가풍을 배워나가는 역할을 자녀들이 나눠서 수행하면서 가족은 하나의 공동체로 질서 있게 존속합니다. 사회에서는 가족공동체뿐 아니라 목적에 따라 다양한 공동체가 등장했고, 서로 다른 타인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만큼, 역할은 보다 구조화, 체계화되었습니다.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모인 기업 내에서 사원, 대리, 과장, 차 부장, 임원, 경영진의 역할은 조직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적절하게 배분됩니다. 동호회나 종교단체에서도 이 같은 역할 배분의 패턴은 비슷합니다.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나 맥락주의, 공동체중심주의라는 배경 하의 동양문화권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공동체의 평안을 깨뜨리는 행위에 대해 다소 배타적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책임감 있게 수행했느냐에 따라 존재의 이유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은 역할과는 거리가 멀게 보이는 자신의 고유한 개성이나 관심사를 숨긴 채 살아갑니다. 딱히 드러낸다고 큰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할 취향을 굳이 드러내며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취향이나 개인적인 관심사를 아예 가지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제법 많습니다. 온전히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택하는 여가의 모습이 비슷비슷해지고, 사람들은 진정한 자신에게로 다가가는 길을 잃은 채 역할 사이에서 고군분투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들이 너무 많고 무겁기 때문에, 혹은 주변의 사람들이 ‘역할을 수행하는 나’만 인정한다고 믿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소유보다 경험을 위한 소비를 하자”,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등의 카피나 노래가사들이 부쩍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 '연인 II'  얼굴을 가리고 입을 맞추는 이들은 존재를 숨기고 연인으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홀로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어떻게 소외된 자신을 만나면 되는지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고민을 하지 못합니다. 훌쩍 떠나서 군중 속에 있었던 모습과 똑같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혼자 있는 시간들 중 대중의 취향에 맞을 만한 이미지를 골라 SNS에 업로드합니다. 대중이 좋아할 이미지를 올려놓고 ‘좋아요’를 받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헛헛한 감성조차도 괜찮다고 자위하는 우리들의 뒷모습은 어쩐지 부쩍 외로워 보입니다. 우리는 정말 훌훌 버리고 떠나고 싶은 걸까요? 훌훌 버리고 떠난 이미지를 누군가에게 보이며 ‘좋아요’를 더 얻고 싶은 걸까요? 혹은 훌훌 버리고 떠나는 법을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다시 A님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열정 넘치는 엄마와 아내, 한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던 A님은 용기 있게 늘 배워보고 싶었던 분야의 전공을 선택해 학업을 이어갈 마음을 냈습니다. 엄마의 역할에도, 아내의 역할에도, 집안을 돌보고 살림을 꾸리던 역할에서도 조금씩 틈을 내어 학업을 이어가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남편도, 자녀도, 시부모님도 A님이 학업을 위해 할애한 각 역할의 틈에 불편함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섬세한 A님은 역할을 둘러싼 주변의 타인들이 A님을 가족으로서 지지하긴 하지만,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A님은 더욱 열심히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학업을 수행하기 위해 더 큰 에너지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불편감을 느끼지 않도록 잠을 줄이고 휴식시간을 줄여서라도 맡은 역할을 더 잘 수행하면 조금이라도 덜 불편해할 거라 믿으면서요. 그러나 A님의 착한 노력은 오히려 A님을 지치게 했습니다. 대부분의 열정적인 사람들이 개인적인 욕구를 채울 권리를 찾기 위해 사회적인 역할을 더욱 열심히 수행하며 사회적 관계망 내의 이해관계 당사자들을 만족시키려 노력합니다. 그들의 만족과 당신의 만족은 별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열심히 살고 있는 당신을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소외감은 당신의 마음이 당신에게 보내는 “자기 돌봄”의 SOS라고 해석해 보면 어떨까요?


자기표현과 도움 요청 배우기

 
  자기를 돌보는 방법을 익히고자 할 때의 전제는 ‘나' 역시 타인과 동일하게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인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인을 의식하는 것만큼이나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타인을 대하듯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의사결정과 행동 방식이 조금 더 명확해집니다. 정신없이 타인을 의식하며 주어진 역할에 맞춰 자신을 움직이다 고갈되어 버리는 당신에게, 타인이나 주어진 역할에 맞추는 것만큼이나 자신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보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할을 다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선행 조건이어야 합니다. 공동체 중심의 문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스스로를 돌보고 챙기는 일은 많은 이들에게 ‘이기적이지는 않은지'의 자기 검열을 일으키게 합니다. 모두와 함께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 습관은 어쩌면 우리 안에 자리하게 된 소외감의 씨앗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타인을 의식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공동체 안에서 튀지 않고 어긋나지 않도록 맞추려는 마음 습관은 공동체를 벗어난 상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운동 트레이닝을 할 때 내담자로부터 이러한 마음습관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코치님, 헬스장에 가는 것이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져요.” 

 [왜 그렇게 느끼세요?] 


 “코치님이 열심히 가르쳐 주신 운동인데 잘 못하기도 하고, 체력도 좋지 않아서, 민망하고 죄송스러워서요.” 
 
 [아니, 회원에게 가르쳐 준 운동을 회원이 잘 못하면 못 가르친 코치가 다시 가르쳐 드릴 일이지, 왜 회원님이 죄송해하고 그러세요? 체력은 이제 운동을 시작하는 단계인데 부족한 것이 당연하고, 바른 자세는 힘이 들면 자연스럽게 무너지게 되어요. 물론 잊게 되기도 할 거고요. 그런 때 코치를 통해 리마인드 하라고, PT 비용을 지불하는 거예요. 왜 돈을 내고도, 운동을 하면서도 죄송스러워하세요?] 


 서툴고 잘하지 못하는 것들, 즉 결핍이 타인에게 죄송하고 민망할 일이라면 타인에게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죄송스럽고 민망할 요소를 갖고 살아갑니다. 즉, 당신의 민망함은 당신만의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결핍은 민망하고 죄송할 일이 더더욱 아닙니다. 운동에 결핍을 지닌 사람이 운동을 배우는 과정에서 운동 코치는 자신의 업에 의미를 찾고, 학습에 결핍을 지닌 사람이 지식과 통찰을 배우는 과정에서 교수나 선생님은 자신의 업에 의미를 찾습니다. 서툴든 능숙하든, 우리는 시도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역량이 꼭 수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시간과 노력, 혹은 도움이 필요할 뿐인데 지나치게 나의 부족함에 직면해 결핍을 느끼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 모두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기대고 덧대어 보완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운동 습관을 만들고자 하는 내담자들에게 처음 헬스장에 가면(헬스장뿐 아니라 수영장, 배드민턴 모임, 테니스 모임, 골프장 어디든 좋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부터 해 보라고 제안합니다. 안 그래도 낯설고 왠지 위축감이 드는 장소에서 자신감 있게 “저, 오늘 처음 왔는데 무엇부터 하면 될까요?” 하고 묻는 경험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나 스스로를 돌보면서 타인에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연결감을 만드는 경험입니다. 누구도 설명해 준 적 없는 당신의 역할을 소외당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찾고, 역할에 치우쳐 고갈되어 결국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느낌과 소외감에 지치는 패턴을 건강하게 멈추기 위해, 스스로를 돌보고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시도를 차츰 쌓아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성장의 경험입니다. 

때로는 부끄럽고 쑥스러울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따뜻하고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자기를 돌보면서 도움을 요청하기 
 
나에게 잘 맞는 운동 센터를 찾아봅니다. 

요즘은 요가원, 헬스장뿐 아니라 필라테스, 발레핏, 복싱, 주짓수, 테니스, 골프 등 지역기반의 운동센터가 많아졌습니다. 홈트레이닝도 좋지만, 운동 초보자라면 바른 자세와 강도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운동 습관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추천합니다.  


 “체력을 키우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체지방을 줄이기 위해 식단이나 운동을 세심하게 코칭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연성이 더 필요한 동작은 워밍업을 충분히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낯선 공간에서의 소외감을 당신 스스로 주인공으로 이끄는 도움 요청으로, 질문으로 바꿔본다면 결핍을 극복하는 것도, 안 해봤던 일들에 도전하는 것도 훨씬 쉬워질 거예요. 

운동을 선택할 때에는 나의 목적과 유형, 연령대 등을 감안해 선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두 바퀴와 함께, 자전거 타기> 


 자전거는 탈 줄 알기만 하면 달리기보다 체력에 대한 부담은 덜하고, 더 빠른 속도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힘들면서도 운동효과도 제법 있습니다. 요즘은 대여 자전거 서비스도 시행되고 있는 지역이 많아서 자전거를 소지하지 않았다 해도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많은데, 서울시의 경우 ‘따릉이’ 서비스를 월 정액으로 이용한다 해도 1개월에 7천 원 남짓의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어 부담이 적습니다.  자전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두 시간 만에 자전거 타는 법을 금방 배울 수 있으니 혹시라도 자전거를 탈 줄 모르더라도 이번 기회에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이 책에서는 혹시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분들을 위해 혼자 자전거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드리도록 할게요. 


준비물: 넘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을 마음가짐, 보호장구(무릎보호대, 팔꿈치 보호대, 장갑), 자전거(안장 높낮이 조절 가능한 모델), 헬멧 


처음에 시작할 때는 안장을 최대한 내 몸에 편안하게 조절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숙련도가 높아짐에 따라 점차 안장 높이를 높이고 싶어 지겠지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할 때는 다리를 페달에서 내려놓고 양 발로 균형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세팅해 둡니다.


양 발을 페달에 올리지 않은 상태로 다리로 엉금엉금 걸어가며 자전거 바퀴를 굴리며 균형을 잡아봅니다.


균형을 잡는 것에 조금 적응이 되고 나면 발을 굴러 양 발을 땅에서 떼며 속도감을 익혀 봅니다. 균형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다리를 땅에 내리며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면 됩니다. 최대한 핸들을 틀며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다가 양다리는 최대한 늦게 바닥에 닿을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보세요.


너무 빠르진 않게, 하지만 자전거를 타는 느낌이 나도록 속도를 올리며 페달을 밟아봅니다. 넘어질 것 같으면 다리를 땅에 내리면 됩니다(중요). 언제든 나를 너무 몰아가며 무섭고 위태로운 느낌을 감당하려고      하지 마세요. 언제든지 무서우면 발을 내려 서면 됩니다.


 어느 정도 페달 밟기에 익숙해지면 핸들을 좌우로 꺾어서 방향을 틀어봅니다. 핸들링 감을 익히면서 기우뚱기우뚱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는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봅니다. 목적지를 바라보면서, 직선으로 갈 수도 있지만 중심을 잡기 위해 좌우로 기우뚱기우뚱 핸들을 꺾기도 하고 간혹 멈췄다 가야 할 일도 있을 겁니다. 가는 과정에 조금 흔들림이 있더라도, 끝까지 가보겠다고 마음먹으면 갈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이제 균형이 잡혔다 싶으면 브레이크를 잡는 연습을 합니다. 다리를 내려 자전거를 멈추기보다 천천히 오른쪽 왼쪽 브레이크를 잡아보세요. 어느 정도 속도가 나는 상태에서 천천히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속도를 줄여보기도 하고 멈춰보기도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가는 길의 속도 역시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몰랐을 뿐입니다.


이제 출발하는 법을 배워 봅시다. 여태는 양다리를 땅에 내려놓고 엉금엉금 걷다가 균형을 잡으며 발을 굴러봤겠지만, 한 다리를 페달 위에 올려 두고, 반대쪽 다리로 땅을 구르며 출발하는 겁니다. 처음엔 꽤나 어렵습니다. 몇 번 땅을 구른 발을 다시 바닥으로 내리고 어정쩡하게 바닥을 구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균형을 잘 잡는 것에 익숙해지면 출발도 더 멋지게 해낼 수 있습니다.


출처: 국민일보 일러스트


주의할 점: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이 혼자 두 바퀴 자전거 타기를 시도하는 것은 아무래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많이 불안할 수 있어요.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 함께 자전거 타기를 부탁해 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자전거가 없는 분들은 서울 지역에서는 따릉이 등 대여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경치 좋은 명소의 자전거 대여점을 이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무엇이든 처음은 서투릅니다. 자전거엔 바퀴가 두 개나 있는데도, 자전거 타기에 서툴면 두 개의 바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연거푸 넘어집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를 위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생각보다 편하고 즐겁게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꽤 많고, 내가 아는 방법을 넘어선 다른 방법을 접하는 기쁨도 꽤나 즐겁습니다. 당신은 역할 속에 파묻혀 지쳐버리기엔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외롭다고 느껴질 때, 스스로를 찾아 나서고, 원하는 것을 위해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의 손길을 내어볼 수 있다면 삶의 고질적 외로움이 완전히 해소되진 않더라도, 적어도 ‘함께’ 방법을 찾아볼 수는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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