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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ul 19. 2024

고통을 주인공이 되도록 허용하지 않기

있는 그대로 느끼고 흘려보내는 알아차림의 코칭.

이 글은 2년 전 페이스북에 쓴 글인데, 다시 발견하고 좋아서 브런치 기록으로 가져왔다.


__________


#고통은나눌수있는가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 엄기호 님은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나눌 수 없으며, 그럼에도 고통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하는 이가 있기에 고통을 견뎌낼 힘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고통을 겪으며 이 고통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뭔가 배움이 있을 거라고 고통을 견디기 위한 동기부여를 하지만,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고통은 고통 자체이기에 끊임없이 반복될 것 같은 고통이 계속된다면 고통을 겪는 이는 고통에 무뎌지지 않고서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고통에 사로잡혀 고통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에게 아무리 말해도 고통을 나눌 수 없기에 악다구니를 지르게 되거나, 입을 함구하고 투명인간이 되어버리고 싶어 하는.


운동심리 코칭을 하다 보면, 극복을 위해 운동을 택하고 나아짐을 위해 상담을 선택했음에도 과거의 고통을 계속해 얘기하는 내담자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과거의 고통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존중을 바라는 마음 반, 그 같은 고통을 이겨낼 힘을 얻기 위해 코치에게 얼마간은 의존을 바라는 마음 반이 섞여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음을 알고 있다.


고통을 느끼게 한 맥락도, 그의 고통도 깊이 존중한다. 어떤 고통은 코칭을 마친 후에도 오래도록, 마음을 쓸 정도로 나를 속상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겉으로 깊은 지지와 응원 외에 동조하는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고통을 이겨내는 것 역시 전적으로 개인적인 경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코치님은 왜 내담자의 고통에 대한 관심이 없어요?”


엊그제 한 내담자가 물었다.


많이 놀랐고, 관심이 없지 않았기에 (오히려 깊이 공감했기에 그가 스스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운동으로 키워내기를 바랐다) 타격감이 있는 질문이었다.


<왜 그렇게 느끼셨어요?>


“제가 과거의 고통을 말할 때 코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에요>라고 말한 것이 제 고통을 일반화시킨 것 같아 기분이 나빴어요.”


과거의 고통을 깊이 존중하며, 그렇게 느끼게 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큰 고통임을 알기에 이 일을 하고 있다고. 그럼에도 스스로 극복을 위해 길을 찾고 있는 것은 강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도.


다만. 나는 고통을 상세히 듣고, ‘그런 고통을 겪고 있구나’에 대한 공감 다음의 더 중요한 단계, 즉

“고통을 작게 찌그러뜨리고, 혹은 잘게 쪼개서,

하나하나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임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고통이라는 놈은 그를 크고 무섭게 여기고 두려워할수록 더 날뛰는 법이니까. 오히려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느껴줘야 하는 감정이니까.


내게 주어진 덤벨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무게의 덤벨이라면, “그것 정말 무겁겠구나!” 하기보다 “그 덤벨, 분명 들어 올릴 수 있는 덤벨이니까, 작은 중량부터 한번 들어보며 근력을 키워보면 어떨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화를 충분히 나누고 나서 그는 감사하게도 뜻을 이해했고, 오히려 의중을 알고 나니 의미 있는 코칭을 받았다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 왔다. 나도 진심으로 고마운 시간이었다.


고통은 나눌 수 없기에, 고통을 겪고 있는 이는 힘겹다. 단지 고통을 이겨내고, 지나간 일로 보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진심을 쓴다. 고통은 나눌 수 없어도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을 보낼 수는 있다. “함께”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고통이 무겁다 해서 고통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삶의 이런저런 경험은 인생의 양념일 뿐이며, 그로 인해 성장하고, 변화하고, 더욱 커지는 것은 존재 자신이어야 한다. 그를 위해 존재를 발견해 주고, 비춰주는 거울이 되고, 응원하는 등불이 되는 일. 지혜롭게 상담하고 코칭하는 일. 참 중요하고 고마운 일.


#운동심리상담 #열림코치 #고통을있는그대로느끼고 #극복하는힘 #외상후성장 #운동코칭 #운동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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