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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Aug 01. 2020

#2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몸쓰는 북살롱 독서모임 북리뷰 

몸으로 직접 깨달은 삶에 대한 통찰. 자신에 대한 돌아봄. 이 모든 것들이 총망라된 단 한권의 책을 고르라면 

단언컨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를 꼽겠다. 


숱한 소설을 썼던 하루키이지만, 작가 (그리고 러너) 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묘비명에 남겨달라고 할 만큼, 매일 꾸준히 달리기를 이어왔던 그다. 그는 쓰기 위해 달리고, 살기 위해 달리고, 자유롭기 위해 달렸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라는 책을 꼼꼼히 읽으며, 와닿은 문장들을 정리해, 내 관점으로 코딩해보니, 4가지의 카테고리가 떠올랐다. 


 

p.120 인간의 정신은 육체의 특성에 의해 좌우될까, 또는 반대로 정신의 특성이 육체의 형성에도 작용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정신과 육체는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줄까 


달리기라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동을 매개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그에 따라 올라온 통찰을 삶의 이야기로 녹여내고 있다. 나는 그 통찰의 과정을  <자기 인식> <자기 관리> <외부 수용> <성장> 의 카테고리로 나눴다. 아마도 철저히 내 관점이리라. 

각 카테고리 별 인상적인 문장들을 몸쓰는 북살롱에 찾아오신 5분의 멤버들과 나눴다. 관점에 따라, 연령대에 따라 꽂힌 구절과 해석의 의미가 다르다라는 점이 독서모임의 묘미! 50대부터 20대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연령층 대표로 참여한 멤버들의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1. 자기 인식 


- 자기의 한계를 철저히 발견하고, 수용하는 것 


41쪽

누군가로부터 까닭 없이(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나는 언제나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기로 작정하고 있다. 

(중략) 

나 자신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가장 밑바닥 부분에서 몸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긴 거리를 달린 만큼,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의 육체를 아주 근소하게나마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 화가 나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분풀이를 하면 된다. 분한 일을 당하면 그만큼 자기 자신을 단련하면 된다. 


누군가에게 비난의 피드백을 받았을 때, 까닭이 없다면 굳이 골똘이 생각하지 않고, 조금 더 강해지는 방법을 선택한 하루키의 방식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하긴, 자기중심적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경험, 체험, 그로 인해 몸에 쌓이는 지식, 성찰, 통찰은 모두 개인적이다. 우리는 타인을 헤아리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 타인을 위한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일방적으로 상대를 대하게 될 뿐이다. 그럴 때, 철저히 내면으로 들어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짓고, 관계에 대한 해답은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스스로는 얼마나 단단해져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하고, 단단해지기 위한 구체적 행동을 즉시 실천으로 옮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실천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간은 위안이 된다. 그리고 그 얼마간의 위안이 쌓여 평정심이 된다. 


 - 자신을 인식하기 위한, 자신에 맞는 정도를 찾기 위한 자문자답 


126쪽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하루키가 몸을 인식하는 기저에 깔려 있는 전제는,  "몸은 실무적이다" 라는 것이다. '실무적' 이라는 표현을 나는 굳이 자주 쓰지 않지만, 이 표현을 낱낱이 뜯어보자면, 실체적인 작용을 하고 반응에 대한 결과가 드러나는 유기적 존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무언가가 아닌, 아주 미세하게라도, 1분 1초의 찰나마다 작용하는 몸의 반응을 놀랄 정도로 섬세하게 감지하고, 감지한 바를 삶의 통찰로 이어가는 능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키의 질문들은 그저 생각한다고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들이 아니다. 스스로 중심을 잘 잡기 위한 밸런스에 대한 통찰은 오로지 몸을 관통하는 경험이 체험으로 몸 속에 맺혀 있는, 옹골찬 결과다. 말 그대로 밸런스이기 때문에, 한번 얻어진 결과라고 늘 고정되어 있는 것만도 아니다. 나이에 따라, 경험치에 따라, 내면의 성숙도에 따라 밸런스의 '정도' 는 계속 바뀐다. 바뀌어야 하는 타이밍을 포착할 수 있는 것도, 오로지 자신뿐이다. 질문들을 하나씩 마음에 담아보면서, 멤버들과 어떤 질문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지, 그 질문이 와닿은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토의를 나눴던 것도 흥미로웠다. 50대는 휴양과 휴식에 대해, 20대는 능력과 의심에 대해, 30대는 내부의 집중에 대한 질문이 와닿았다고 했다. 나름대로의 삶에 고민이 닿은 지점. 질문에 대한 답을 하루키는 책 곳곳에 배치해두었다. 그러나 그 답은 오로지 하루키만의 답일 것이다. 우리 각자는 하루키의 질문 외에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 몸을 움직이며 사유해야 하는 숙제를 공유했다. 




2. 자기관리 


- 자유롭기 위해 절제한다


19쪽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루키는 끊임없이 달린다. 40여년을 빠짐없이 꾸준히 달리는 러너다. 그런 하루키조차 달리기 습관을 지속하는 데에는 말 그대로 '리듬' 을 설정하기 위해 의식적 노력을 기울인다. 일단, 시작. 그리고 시작한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풀려나가는 흐름을 만들 때까지의 리듬을 찾게 되기까지 의식적인 노력. 달리는 경험 속에서 나 역시 달리기 시작할 때의 몸이 초반, 가빠지는 숨, 심장 박동, 몸의 움직임에 적응하기 위한 고통을 느낀다. 몇 키로를 달리기로 결심했건, 초반 1키로정도는 그렇다. 그러나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호흡을 고르고, 걷다가 뛰게 되며 흔들린 몸의 밸런스를 평정으로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나만의 리듬을 찾게 되면, 그 때부터는 "아, 이제부터는 이 컨디션으로 끝없이 달릴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느낌이 든다. 약간의 쾌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안심도 되는 상태가 온다. 나는 이 상태가 소위 Zone 에 들어간 상태라고 생각한다. '러너스 하이' 는 격한 쾌감이라기보다는 이렇게 기분좋은 안도감이 줄곧 이어지는 상태다. 그런데 이 상태를 만나기 위해서는 고통이 리듬으로 바뀌기까지 얼마간의 의식적인 지속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통은 이 단계에서 많이 포기한다. 시작하는 에너지가 추진을 받지 못하고, 중간의 고통을 버티지 못하면 습관으로 이어가기 어렵다. 이 때, 고통을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 조금만 더 힘내면 금방 리듬이 찾아온다!" 

"지금 숨이 가쁘고 괴로운 건, 몸이 달리는 데 적응하고 있다는 뜻이야!" 


적응중인 몸에 찾아온 괴로움을 끝없는 괴로움으로 인식하면, 혹은 괴로움에 매몰되면, 고통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괴로움을 하나의 과정으로, 곧 기분좋은 적응이 찾아온다는 신호로 해석하면, 조금 더 힘내서 의식적 노력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막연한 상태에서 하기는 어렵고, 고통을 버텨내 즐거운 리듬을 만났던 체험을 양분으로 주어야 한다. 이 때는 "나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야" 라는 자기인식이 도움이 된다. 시작하고, 리듬을 찾기까지 버티는 시간은 그래서 자존감의 토대가 된다. 


-성장하기 위해 꾸준히 체력을 키운다 


149쪽

기초체력의 강화는 좀 더 큰 규모의 창조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일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은 해볼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적어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쪽이 훨씬 좋다), 라고 믿고 있다. 


그동안 해왔던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내 능력의 그릇을 더 크게 키워야 한다. 성장의 결과를 얻고싶은데, 당장 무엇을 해야할 지 알 수 없다면, 혹은 망설임이 발목을 잡고 있다면, 나는 실행력과 실천력이 약한 것이 아니라, 실행과 실천에 필요한 재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망설이는 자신을 자책하기보다, 이 일을 해내기 위해서 어떤 재료를 더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된다. 특히, 모든 종류의 도전에 필요한 가장 큰 재료 혹은 역량을 나는 기초체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집중해도, 갖고 있는 체력이 받쳐 주지 않으면, 그만큼의 결과를 낼 수 없다. 혹은 체력이 부족해 감정 기복을 잡기 어렵게 되고, 부정적인 에너지에 사로잡히게 되기도 한다. 하루키 역시 '좀 더 큰 규모의 창조" 를 위해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결심한 이유는 잘 쓰기 위해서다. 쓰는 일 역시 어마어마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일관성 있게 재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관성은 체력에서 기반한다. 우리는 정신작용을 몸을 움직이지 않는 머리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머리 역시 체력을 소모하는 신체 장기다. 




3. 외부수용 


- 어쩔 수 없는 것들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107쪽 

어떤 종류의 프로세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변경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와 어느 모로나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요한 반복에 의해 자신을 변형시키고(혹은 일그러뜨려서), 그 프로세스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의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 뿐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프로세스들은 어찌할 수 없는 상태로 우리 주변에 공존하고 있다. 그 때, 하루키는 이 프로세스를 인격의 일부로서 수용하는 방법을 택한다. 아마 달리면서 터득한 통찰일 것이다. 

 국내 마라톤 코스들에도 여러 특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춘천마라톤 코스는 아름답기로, 혹은 경사가 심해 기록을 내기 어려운 코스로 유명하다. 일단 달리기를 시작하면, 코스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무 경사가 진 곳에서 체력이 소진되면, 옆구리가 결리기도 하고, 숨이 턱에 차오르기도 한다. 경사도 바꿀 수 없고, 지쳐버린 몸도 어쩔 수 없다면 지친 몸이 조금 덜 힘들게 다양한 주법과 자세를 바꿔 본다. 어떻게든 끝까지 가야 한다. 그래야 레이스가 끝난다. 고통스러운 구간을 지나며 마음속으로 코스에 대한 욕을 해본들 소용이 없다. 괴로운 마음이 몸을 더 괴롭게 할 뿐이다. 하루키는 이런 상황에서 "내 몸은 기계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기계다." 라는 암시로 고통과 공존하며 한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다. 때로는 이런 버팀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왜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이런 때는 무의미한 고통에 시달리기보다 나를 위해 때려칠 결단을 내려야 하겠지만, 시작한 일이며 완주하고 싶다는 동기가 뚜렷한 일이라면, 어려운 환경이지만 받아들이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보는 수밖에는 없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경험은 내 안에서 반복되고 또 성숙해 나만의 인격이 된다. 더 어려운 일이 찾아왔을 때 든든하게 나를 받쳐주는 나만의 재산이 된다. 성숙이라는 재산은 빠져나가는 일 없이, 줄곧 쌓이고 또 쌓이는 고마운 재산이다. 


-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경험과 본능뿐이다


202쪽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경험과 본능뿐이다. 경험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뭔가를 더 생각해본들 소용없다. 이제는 당일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는 것이다. 본능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딱 한마디, ‘상상하라’ 라고 하는 것이다. 


삶의 수많은 문제들 앞에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경험과 본능뿐이다. 이 문장은 꽤나 직관적이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험의 우물속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모색해 보는 것이다. 경험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본능으로 접근한다. 경험과 본능이 결합된 직관이 때로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 앞에서 겁을 먹고 전전긍긍하는 마음에 사로잡히면, "만일 ~ 게 되면 어쩌지"  하는 수많은 망상에 빠져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무릎이 후들거리는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 어떤 문제든, 소모적인 걱정으로 무릎을 후들거리며 해결하게 되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 것은 영 안쓰럽다. 전전긍긍하는 상태에서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답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난 늘 최선을 다했다' 고 생각할 만큼의 방법을 신중하게 찾아서 시도해보고, 그 이상의 걱정은 내려놓는 것이다. 망상이 아닌 '상상' 은 최악이 아닌,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하지" 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최악을 생각하고 대비하려고 한다. 그러나 최악을 생각하기보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상상해 실천에 옮길 거리를 차곡 차곡 적어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적어보았던 것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실행해보고,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다는 기록이 몸에 쌓이면,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도전하고 노력했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토닥여줄 수 있다. 그러나 최악을 대비하며 걱정에 휩싸이는 감정은 시야를 좁게 하고, 최선을 다 하기 위한 방법 역시 찾을 수 없게 눈을 가린다. 우리가 무엇을 해내기 위해 갖고 있는 자원이라고는 경험과 본능 뿐. 그러나 경험과 본능은 힘이 세다. 오로지 경험과 본능에 집중해 이것들이 갖고 있는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다른 망상이나 걱정은 잊어버려야 한다. 




4. 성숙 


259쪽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 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일본 사람은 디테일에 강하다고 한다. 하루키가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성숙해나가는 과정에서 역시 이러한 섬세함은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무엇이 원인이었을까를 면밀히 관찰하고, 따져 보고, 분석해 본 후 다음 시도에서 적용할 개선점을 도출하고, 바로 적용한다. 적용하는 포인트 역시 아주 구체적이다. 몇 킬로미터 지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보고, 이전에 시도했던 것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분석해 다시 바꿔보고, 그 과정에서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은 제외하고, 유효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행동강령을 정해 적용한다. 반성의 반복은 자괴감을 낳는다. 무언가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을 때, 자책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자책과 자괴감에 빠져있는 것은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빠르게 자책감에서 벗어나고, 경험이 주고 간 실패나 기쁨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 나가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좋다. 막연하게 '잘못했다', 혹은 '잘했다' 를 생각하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그것이 잘못되는 동안 내가 놓친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나는 환경의 영향으로 놓친 것이었는지, 혹은 부주의로 놓친 것이었는지, 놓치지 않기 위해서, 또 놓치게 된다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하면 되는지를 면밀히 따져본다. 끈덕지게 나를 괴롭게 했던 경험을 생각하면서, 다음에 이러한 실패를 거듭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생각한다. 너무 괴로울 때는 몸을 움직이며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도 좋다. 나 역시 운동을 한 후 머리가 하얘진 상태에서 하나씩 하나씩 정리된 생각이 올라올 때가 (자주) 있다. 너무 복잡하고 머리가 아플 때는 차라리 잠시 덮고, 몸을 써본다. 몸을 쓰면서, 어떤 문제해결을 하는 과정에서도 한 걸음 한걸음 차곡차곡 해나가고 있었던 나를 발견한다. 그동안의 삶에서 해결해왔던 문제들을 떠올리면서 일관성있게 그동안 문제해결을 해왔던 나를 기억해내고, 그런 나를 믿는 신뢰가 리마인드된다. 나를 믿는 신뢰감이 내 안에 세팅되면, 그 다음의 구체적 실천 방안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것을 가벼운 마음으로 실천에 옮기며 교훈을 얻는다. 자책감 위에 세워진 교훈의 탑은 경험의 파도가 밀려왔을 때 모래섬처럼 부서져버린다. 나에 대한 신뢰로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경험의 파도가 밀려오더라도 그 안에 어떤 물고기가 함께 다가오는지 발견하면서 한 마리, 한 마리씩 잡아올린다. 삶이 풍요해지는 성장 습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하루키의 성장 공식이다. 


책 한권으로 한 사람의 성장하는 여정을 온전히 마음에 담았다. 하루키와 나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지만, 삶을 두 다리로 살아가고 있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아마 삶 살이를 하루하루 잇고 있는 모든 존재의 공통점일 것이다. 몸을 쓰며 통찰한 사유가 삶을 관통하고 있어서, 그 과정이 하루키 특유의 섬세하지만 완고한 언어로 적혀 있어서 즐겁게 읽었다. 

즐겁게 읽었던 시간이, 삶에 들어와 성장의 씨앗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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