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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Oct 26. 2024

솔직해질 자유

새로운 친구를 만들 때, 건강한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낯선 상대와 친해질 때, 한때는 지나치게 맞추고 그들의 취향을 알아차리고, 또 비슷한 점을 찾고… 애쓰며 친해지고자 했었다. 그렇게 애쓰면 서로 부담이 되어 멀어진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적당히 솔직하면 적당히 편해진다. 


완전 솔직하면 완전 편해지거나 완전 어려워진다. 


완전 어려워진다 해도 미워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게 그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의 컨텍스트에건, ‘일리’ 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 아닌 누군가의 단편적 모습이 옳지 않게 느껴지더라도, 그 모든 컨텍스트를 이해하기 전에 속단하기는 어렵다. 


가까운 사람에게 그가 불편해하더라도 그의 취향에 맞추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자유,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어딘가에서만큼은 이러한 자유가 절실히 필요하고, 그러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또 때로는 필요한 처방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온전한 존중이 아닐까 싶다. 


의사는 병을 처방할 때 환자가 직면할 준비가 안되었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진단된 병과 양상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그에 대한 치유가 단지 치료방식 뿐 아니라, 마음과 영성에서도 시작된다. 그것이 생명에 대한 존중이다. 


계속해서 낯선 존재와의 만남이 이어질 것이고, 영어실력은 아직은 짧은데, 그때 낯선 문화에 맞추겠답시고 지레 나를 다듬거나 맞추기보다(사실 그런다고 상대 마음에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닐테니) 있는 그대로의 우릴 바라보고 수용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기분은 지나가는 것이며, 있는 그대로 솔직해도 안전하다는 걸 배우기 위해 이번 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_______


**The Freedom to Be Honest**


When getting to know someone unfamiliar, I used to try too hard to fit in, notice their preferences, and find similarities. Later, I realized that such efforts could create burdens and distance between us.


Being moderately honest makes things moderately comfortable. Being completely honest can make things either very comfortable or very challenging. But even if it becomes challenging, it doesn’t lead to hatred; it just leads to acceptance of the other person’s style. In any context, there’s always some “validity” to things. Therefore, even if someone’s fragmented behavior doesn’t seem right to me, it’s hard to judge before fully understanding all the contexts.


The freedom to present myself as I am, without adjusting to someone’s preferences, even if they’re uncomfortable, is not something that everyone is allowed. However, somewhere, we desperately need this kind of freedom, and being able to accept each other as we are, and sometimes offer the necessary remedies, feels like genuine respect.


When a doctor prescribes treatment, even if the patient isn’t ready to face the diagnosis, they must convey the illness and its symptoms as they are. Only when we acknowledge and respect each other’s true selves can healing begin not just in the treatment but also in the heart and spirit. That is respect for life.


Meeting unfamiliar people will continue, and my English skills are still limited. But instead of hastily adjusting myself to fit into unfamiliar cultures (which might not even align with others perfectly anyway), I’m practicing accepting ourselves as we are. Feelings are fleeting, and maybe this lifetime exists for us to learn that it’s safe to be honest as we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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